다말의 인생에 담긴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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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말의 인생에 담긴 십자가



(창 38:12-19)
오늘 본문 말씀에는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간 다말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말은 창녀로 변신해서 시아버지 유다를 유혹해서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분명 이 사건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면으로 본다면 너무 수치스럽고 불경스러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창녀로 변신한 다말은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말의 행위를 비도덕적이라고만 보고 넘기기에는 조금 꺼림칙한 부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상식적이고 일반적으로 볼 때에 다말 자신이 그렇게 함으로써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이것이 절대로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아버지가 술 먹고 취해서 잠자고 있는데 마침 그 옆에 여자가 있어서 술 취한 김에 잠자리를 하고 났더니 며느리였다는 것이 아니라, 치밀한 계획과 계산 아래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다말은 의도적으로 창녀로 변장해서 시아버지와 잠자리를 해서 아이를 갖게 될 것을 목적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의 목적이 이루어질 경우 그러한 패륜적인 사건으로 인하여 다말은 화형에 처해질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셀라가 장성하면 다말에게 주겠다고 했는데 안 주었으니, 그 시대 계대 결혼의 풍습 제도를 범한 시아버지 유다의 잘못이기에 다말은 이것을 기회 삼아서 새 출발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고대시대에는 계대결혼 수혼 법이라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에 형이 자손을 낳지 못하고 죽으면 반드시 동생이 형수와 결혼을 하여 형의 대를 이어주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풍습이었는데 나중에는 이스라엘에 율법으로까지 주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무언가를 교훈하시기 위해 그것을 율법으로까지 규정을 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창세기 3장 15절의 원시 복음에 나오는 여인의 후손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은 그들을 구원할 여인의 후손이 오실 때까지 반드시 대를 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대를 잇는다는 개념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언약과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하나님 언약의 필연적 성취에 대한 집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대결혼이라는 제도까지 동원하여 대를 잇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유다는 계대결혼 풍습을 어겼기에, 다말의 이혼과 재혼을 나무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허물은 유다에게 가게 되어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말은 왜 새 출발을 하지 않고 시아버지를 끌어들여서 계획적이고 의도적으로 임신을 해버린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말이 이런 행동을 자행한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다말이 아브라함 선민의 집안에 머물러 있기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다 걸었기 떄문입니다. 이방인들이 아브라함 집안에 머물기 위해서 남자라면 할례를 받으면 되겠지만 여자는 그럴 수가 없으니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는데, 아브라함 자손에 속한 사람들의 씨를 받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가 셋째 아들을 자신에게 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다말은 자신이 여자로서의 자존감, 수치, 자신만의 인생의 목적을 다 버리고 창녀로 변신을 해서 시아버지의 씨를 받는다는 것은 죽기를 각오한 사투를 벌인 것입니다. 과부가 임신을 하면 화형에 처하는 것이 그 당시에 통용되는 처벌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도 목숨을 걸은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여호와의 목전에 있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다말의 행위만을 본다면 얼마나 비윤리적입니까? 그러나 성경이 말하려고 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행동을 해도 괜찮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게 된 다말의 마음의 동기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목전에 있기 위해서 똑같이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이 말은 여호와의 목전에 있기 위해서, 주님의 얼굴을 구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목숨을 건 사투를 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분 목전에 있을 때에, 그분과 동행할 때에, 그분 안에서만 내 인생은 가치가 있다는 믿고 다말과 같이 사투를 건 그러한 간절함이 우리 성도 안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말은 자기 인생 전체를 다 포기하고, 여자로서의 자존감을 다 포기하고, 이제 남자라는 것은 자기 인생에서 없어져 버렸습니다. 젊은 나이에 여자로서의 인생이 끝나고 어머니로서의 인생만 남은 것입니다. 그래서 다말의 삶은 죄인들을 구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함과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살아가는 성도의 신앙의 본질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말이 오늘 자신의 인생을 다 걸고 시아버지의 씨를 받은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나의 모든 자존감, 존재감의 죽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의지하여 여호와의 목전에 있기 위해서,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기 위해서 주님의 십자가에 연합하여 하나님 아닌 다른 대상들로 구축된 나라고 하는 모든 존재감과 자존감이 주와 함께 죽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진정한 자존감으로 믿음의 삶을 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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