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궁중비사] 명나라에 공녀로 간 한확의 여동생, 한씨의 순장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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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궁중비사
명나라에 공녀로 간 한확의 여동생
한씨의 순장 잔혹사

명나라는 초기 주원장 시절에 비교적 강한 국력을 배경으로 조선에 많은 위협을 가했지만 조선은 북과 남으로부터 받은 외환의 형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명이라는 동맹국이 필요했습니다.
‘황제’의 과분한 요구에도 ‘마음과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원칙에 입각하여 최대한 명나라의 요구를 만족시키고자 노력했지만 명나라 5대 황제 선종 이후, 점차 약화되어 조선에도 사신을 파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황제가 독단과 독선을 행하던 권위 역시 쇠퇴의 기세를 보이는 동시에, 황제의 개인적인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공녀를 요구하는 환관을 파견하는 일도 다시는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라가 청나라의 침입을 받아 망해가는데 여자를 요구할 수 있는 여유가 없어 조선에서도 ‘상국’의 요구에 따라 처녀와 내시, 기타 특산물을 진상하던 일이 선종이 사망하자 갑자기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와 동시에 장기간 중국에 머물러 있던 조선인들을 명나라 황국에서 조선으로 귀국시킴으로써 명나라 왕궁 내부의 수많은 스캔들도 함께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선덕 10년인 1435년 정월, 선종명5대 황제 선덕제 주첨기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3월에 조선의 여성 김흑 등 53명이 명나라에서 풀려나 조선으로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호송하는 환관 역시 모두 조선 사람으로 이충은 영락 6년에 권씨를 따라 중국 조정에 입조했으며, 두 김씨는 영락 원년에 입조한 사람이었습니다.
김흑은 입조한 처녀 한씨의 유모였는데 한씨는 1417년에 중국에 왔으며, 오빠 한확은 당시 조선의 부사정직을 맡고 있었습니다.
영락제는 한씨의 미모를 보자마자 마음에 꽃이 피었고, 조선의 사신을 접견할 때에는 말도 꺼내지 못하며 ‘함박웃음만 짓다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귀국 국왕의 이런 극진한 정성을 받아, 아름답고 영리한 한씨 집안의 따님을 보내주셨으니 돌아가서는 국왕에게 이 경위를 전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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