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 손자병법 손무(세계사 레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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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 손자병법 손무

안녕하세요. 오늘은 시공을 초월한 병법의 성서 "손자병법"의 저자이자 수많은 명장들에게 영감을 줬던 "손무"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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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무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출신으로 오나라에서 활약했던 전설의 병법가.
그 유명한 손자병법 13편(82편중에)의 저자로
손자병법의 손자는 "손무"와 그의 후손 "손빈"의 통칭.

1. 오나라의 군사가 되다.
젊었을때 부터 손무는 병법에 큰 관심을 보였고 검술도 잘 했다.
제나라 사람이였으나 정치적 문제 때문에 손무는 가족과 함께 오나라로 이주했다.


이후 춘추전국시대 2백여 년 동안 계속된 전쟁의 경험과 교훈을 연구하고 그것에 기초하여 『손자병법』 82편을 저술하였다.
현재 전해지는건 삼국지의 조조가 주석을 단 13편 뿐이다.(조조 : 손자병법만이 심오할 뿐이다.)


이후 오자서의 추천으로 오나라 왕 합려의 초빙을 받아 오나라의 군사가 되었다.
오왕 합려는 손무에게 자신의 역량을 증명할 것을 요청한다.

손무는 흔쾌히 이 제안을 수락하고 180명의 궁녀를 즉석에서 조련해보인다.

2개의 부대에게 명령을 내렸으나 궁녀들은 처음 이 명령을 따르지 않고 웃기만 한다.

이에 손무는 "명령이 철처하지 못하고 신호를 똑바로 하지 못한 장수인 나에게 책임이 있다"라고 하며
다시금 명령체계와 신호를 확실히 한 뒤 또 한 번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다시금 궁녀들은 명령에 따르지 않았고 이에 손무는 "명령과 신호가 올발랐음에도 실행되지 않은 것은 부대장의 죄이다"라며
부대장 둘의 처형을 명령했다.


"장수가 군대를 이끌 때에는 아무리 군주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일 수 없는게 군법입니다"
라며 뿌리치고 궁녀 둘을 처형했고 다시 명령을 내리자 궁녀들은 한치에 오차도 없이 따랐다고 한다.


2. 손무 천하를 진동시키다.
기원전 512년 오나라는 숙적 초나라와의 전쟁을 재개했다.

손무는 단계적 교란작전을 통해 초나라 국력을 갉아먹고 정예병 단, 3만 명을 직접 이끌고 기습침공한다
적의 수도 코앞까지 진격했다가 집결된 초나라의 20만 명의 적 병력을 보자,
상대 병력을 분산시킬 목적으로 다시 후퇴하여 적을 유인하는 계략을 사용했다.

오자서와 함께(전설의 조합..) 초나라를 정벌한 손무는 승세를 몰아 초의 난공불락의 수도 영도를 수공으로 순식간에 함락시켜버린다.

그 결과 오왕 합려는 명실상부 수많은 나라중에 대륙의 패자로 위세를 크게 떨쳤다.

손무와 오자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합려는 월나라를 공격하였으나 패배하고, 부상의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손무와 오자서는 합려의 후계자 부차를 보좌하여 국력을 키운 뒤 월나라를 공격하여 월왕 구천을 포로로 잡고 크게 승리하였다.

이후,관직에서 은퇴하여 여생을 군사학 연구와 저술에 전념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영화리뷰나 영화소개는 아니지만 영화같은 삶을 살다간 전설적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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