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lmido Island (월미도), also known as Wŏlmi-do, is an island one kilometer off the coast of South Korea near Incheon. It was connected to the mainland by a highway in 1989, and was later connected by a monorail which opened in late 2019. It is a weekend destination and tourist area, with restaurants, the theme park Play Hill and the areas Meeting Square, Arts Square, Performance Square, and Good Harvest Square.The Korean Traditional Garden at Wolmi Park (월미공원) was established in 2001 after the relocation of the Army base which had been located there for 50 years.On September 10, 1950, the U.S. Army began five days of bombing Wolmido Island, which contained North Korean Army soldiers. Several hundred civilians were killed in the dropping of 93 napalm bombs. The battle was inspiration for the North Korean Propaganda Film Wolmi Island produced in 1982.An Army base was established at the site of what became Wolmi Park (월미공원) after the base's relocation. The site was turned into a garden and opened to the public in 2001.
월미도(月尾島, 영어: Wolmido, Wolmi Island, Wolmido Island, Roze Island)는 월미산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긴 삼각형 모양을 이루었으나 지금은 간척되어 육지가 된 인천 앞바다의 육계도이다.
월미도는 면적이 0.7 km2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섬이었지만 제물포(지금의 인천항)가 항구 역할을 제대로 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월미도가 제물포 앞에 딱 버티고 서서, 파도와 바람으로부터 제물포에 정박한 배들을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병자호란 때 몽골 기마병이 바람처럼 달려와 강화도로 피난하는 길을 막아버려 남한산성으로 피신해야만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조선이 1656년(효종 7)에 제 2의 피난길을 개척할 때 기착지로서 월미도에 월미행궁이 지어지기도 했다.월미도를 지나지 않고서는 인천항을 통해 서울로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월미도는 개화기부터 한국전쟁 때까지, 외국 군대에게 점령되어 군사 요충지로 쓰이는 운명을 맞아야만 했다.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요호 사건 때는 한양으로 들어가는 뱃길을 찾으러 인천에 접근한 이양선들이 입항 전 한 차례 머무르는 섬이었으며,일·청·러가 조차 경쟁을 벌일 때는 조정의 허락도 없이 일제 해군의 석탄 창고가 설치되는 수모를 겪었다. 러일 전쟁의 첫 포성이 울린 제물포 해전은 월미도 앞바다(월미해협)에서 벌어졌고, 일제가 승리하고 나서는 병참기지화되었다. 1920년대 후반-1930년대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가 소위 '조선 제일의 유원지'라는 명목으로 월미조탕을 비롯한 유원지, 숙박시설을 지어 부유한 자들에게만 호화로운 인공낙원을 제공하였다.한국전쟁의 판도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 당시에는 미군에게서 네이팜탄 폭격을 당하고 인천으로 가는 길을 터 주게 되었다. 이 폭격으로 약 120가구 600여 명이 살던 마을이 불바다가 되고 월미도민 100여 명과 월미도에 파견된 육지의 노무자 상당수가 죽었다.[2]:220-245 전쟁이 끝나고 피란에서 돌아온 월미도민들은 월미도로 귀향하여 사라진 마을을 재건하려 하였으나, 휴전 후에 미군부대가 계속 주둔해서, 미군 부대가 물러가자마자 바로 한국군이 들어와 해군 기지를 세워서, 국방부와 인천시가 도민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월미도를 사고팔아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도민들은 '귀향대책위원회'를 꾸려 배상과 귀향을 요구하였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는 국가가 월미도민들에게 배상을 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1989년 7월 문화의 거리가 조성된 이래 인천 바닷가의 유명 관광지 중 하나로 떠올랐다. 썰물 때도 갯벌이 드러나지 않아 언제나 바닷물을 볼 수 있다. 월미산에 둘레길이 조성되고, 한국전통정원, 전통문화체험관, 한국이민사박물관 등이 설립된 데다가, 다양한 놀이동산까지 들어서면서, 월미도는 인천 명소의 위상을 되찾고 있다.
月尾島(ウォルミド、월미도)は、大韓民国仁川広域市中区にある。かつては島だったが、埋め立てにより陸地と地続きとなっている。島の形状が半月の尾ひれのようだということから名付けられた。遊覧船乗り場や遊園地があり仁川の代表的な観光地となっている大韓帝国時代には、日本海軍基地やロシア石炭倉庫などが相次いで建てられ、列強らによる激しい勢力争いが行われた。1886年の丙寅洋擾時に、仁川近海に停泊したフランス艦隊の隊長の名を取って、外国地図にローズ島として紹介されたりもした。1891年、日韓間で月尾島地所借入約書 (租借月尾島地基約単)が結ばれた1923年に1キロメートルの堤防が築かれ、陸地と連結された時から、遊園地として開発され始めた。そして潮湯(海水を暖めて入浴する施設)、別荘、海水プール場などの遊興施設が整備された1950年9月15日、朝鮮戦争において国連軍反撃の契機となった仁川上陸作戦が開始。月尾島には国連軍による爆撃が加えられ、死亡もしくは離郷を余儀なくされる者が発生した[3]。そのため、この島の原住民が仁川市、韓国国防部、米国および国連に対して、仁川上陸作戦の賠償金を要求する訴訟を起こしたことがある2009年には、仁川駅から月尾島を結ぶ観光モノレール「月尾銀河レール」が完工した。しかし、安全性の問題が指摘されたために開業延期を繰り返し、2011年1月21日には仁川交通公社が事業放棄を決定するなどしたが、2019年10月8日に仁川交通公社が運営する「月尾海列車」として開業した
月尾島是韓國第二大港口城市,因為是個半月尾形狀的島嶼故而得名,座落在韓國西海岸,雖然韓國外海擁有許多大大小小的島嶼,但其中以月尾島最受歡迎,景色也最為漂亮,而日落時間就是月尾島最美的瞬間,月尾島原本是距離仁川西面1千米處的海上,面積約0.66平方千米,於1920年初因為道路修建,將陸地連接起來,並設置海關檢查站、氣象台、無線電台…等等設立於島上,因此於1920年~1930年之間,可稱是月尾遊樂園的全盛時期,當時不管是朝鮮或是日本人,幾乎是無人不知無人不曉,最近幾年更是韓綜與韓劇 「無法律師」、「嫉妒的化身」、「超人回來了」….等等的取景地,讓不少韓迷來到韓國也要來走訪打卡一下。1989年中建構文化大街,其實有點像台灣淡水的漁人碼頭的氛圍,現在這1200公尺的文化街上不只擁有餐廳,可以看海、看夕陽、餵海鷗,也能吃到新鮮的海產料理,更是各種文花藝術公演與慶典所親睞的表演場地,定期的文化演出、街頭表演或各種慶典活動,讓月尾島成為仁川不能錯過的景點之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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