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대전보문고 산악회 427차 행복한 강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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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10월23일(수)재경대전보문고 427차 강화도 버스여행을 다녀왔습니다.
18세기 강화도 조선 해안수비진지인 광성보에 속한 광성돈대 손돌목돈대 용두돈대 신민양요 사건 기념비 및 전사한 조선군 신미의총 역사 탐방을 하였습니다.
강화 생선구이 숫불 맛집에서 점심 식사를 한 후 강화 역사박물관과 54톤을 돌을 올려 세운 고인돌 강화 부근리 지석묘을 보았습니다.
대룡재래어시장과 외포항 수산물 직판장 방문을 끝으로 강화 대교를 건너 김포 서울 한강변을 따라 당산역과 사당역에서 해산한 강화도 버스여행 일정입니다.
광성보에서 일어났던 신미양요(辛未洋擾)는 1871년 고종 8년 조선과 미국 사이에 벌어진 군사 충돌 사건입니다.
조선이 쇄국 정책을 유지하는 가운데 미국이 통상 요구를 강요하면서 발생한 분쟁입니다.
이 사건은 병인양요 1866년 프랑스의 침공 이후로 또 다른 서양 열강과의 충돌이었습니다.
1866년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을 따라 평양까지 올라가 통상을 요구했으나 조선 당국이 이를 거부하면서 충돌이 발생했고 결국 제너럴 셔먼호는 소각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은 조선에 책임을 물으며 보복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대응하지 못하고 시간이 흐른 후 1871년 미국은 군사적 행동을 통해 통상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1871년 6월 미국 해군의 아시아 함대 로저스 제독이 지휘로 강화도에 상륙하여 외교적 협상을 시도했으나 조선 정부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이후 미국 함대는 조선의 강화도 일대를 공격하여 초지진, 덕진진 등을 점령했습니다.
조선군은 어재연 장군을 중심으로 강력하게 저항했으나 화력과 병력에서 열세였던 조선군은 결국 패배하였습니다.
미국은 조선과의 협상에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철수했습니다.
이로써 신미양요는 미국의 요구가 실패로 끝났고 조선은 서양과의 통상을 거부하는 쇄국 정책을 더욱 강화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조선은 여러 국제적 상황으로 인해 개항을 피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으며 미국과의 통상을 시작하게 됩니다.
양요 사건은 신미양요와 병인양요를 포함한 일련의 서양 열강의 침략 사건들을 가리킵니다. 이 사건들은 조선이 쇄국 정책을 유지하는 가운데 서양의 압박과 맞서 싸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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