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 보고드림] 몽골로 끌려간 여인이 겪게 되는 일들 feat 어느 고려 공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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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태어난다는 것은 곧 절망의 시작이었습니다.

거기다....

예쁘기까지 한다면 더욱 큰일입니다.

딸 가진 부모들은 자식을 숨기기 바빴고 추하게 치장을 하거나 심지어 남장을 하여 여자가 아닌척했습니다.

예쁘다는 말은 가장 심한 욕이었습니다.

누군가의 딸을 보고 예쁘다고 칭찬한다면 싸대기부터 날아올 일이었습니다.

이도 저도 안된다면 아무에게나 빨리 시집을 보내야 했습니다.

고려조정은 조혼(早婚)을 막기 위해 결혼도감을 설치하여 금혼령을 내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오늘은 고려의 공녀에 대하여 그리고 공녀가 된 한 여인의 삶을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려는 세계최강 원나라의 부마국(駙馬國사위의 나라)이 되었습니다.

격을 낮추고 원나라를 섬겨야 했습니다.

고려는 더 이상 황제의 나라가 아니었으므로 임금의 시호는 조(祖)나 종(宗)이 아닌 왕(王)이라 칭하였고 원나라에 충성한다는 뜻으로 충(忠)자가 붙었습니다. (25대~30대) 왕은 어려서부터 원에서 살아야 했고 원나라 공주와 결혼해야 했습니다. 왕이 되기 위해 귀국할 때는 몽골식 복장에 변발을 하여 돌아왔습니다. 왕의 재목들은 조기교육을 원나라에서 실시하여 아주 그냥 뼛속까지 원나라 사람을 만들어놓는 것이지요

궁중에서 사용되는 명칭도 한 단계씩 낮추어야 했습니다.

짐은 과인으로, 폐하는 전하로 태자는 세자로 말입니다.

귀족들 또한 앞다투어 원나라의 문화를 따랐습니다. 그 당시 원의 문화는 선진문물이었고, 고려의 문화는 촌스럽다 여겼습니다. 백성들은 몽골식 복장의 왕과 귀족들을 보며 처음에는 혀를 차며 욕했으나 나중에는 백성들도 서로 몽골사람처럼 되고싶어 했습니다. 그래야 자신도 있어보이고 촌스럽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아메리칸 스타일, 유럽 스타일이라 하면 왠지 있어 보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귀족들은 원나라에 알아서 기었습니다. 원나라에 잘 보여야 출세길도 열렸습니다.

그런 고려에 원나라는 갈수록 요구사항이 많아졌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공물을 요구하는 바람에 백성들은 피와 땀 눈물을 쥐어짜 그들이 요구하는 것들을 채워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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