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옷자락 만지며 - 나무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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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목사님의 묵상 "사랑" 중에서

"사랑의 말이 있다 해도, 그것이 사랑을 대치할 수는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의 초반부에서 이러한 것들이 있으면 사랑은 저절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편견을 깨뜨리려 합니다. 그런데 그때 가장 먼저 거룬한 것이 바로 '말'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 말하는 것과 사랑 자체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아니 거의 상관이 없을 정도로 심각한 격차가 있습니다. 사랑에 관해 말하는 데는 희생이 들지 않지만, 사랑을 하는 데는 막대한 희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은 사랑을 달짝지근한 연애감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진정한 사랑을 아는 사람은 사랑이 살을 에고 뼈를 깎는 것 같은 희생임을 압니다.

무엇에 대해서 많이 말하면 그것에 익숙해지기 쉽고, 익숙해지면 그것이 단지 말하고 있는 것인지 우리가 참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인지 혼동하기 쉽습니다. 이것은 무협소설을 읽고 친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열을 내어 해주노라면, 마치 자기가 입에 칼을 물고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혼동해서 그랬건 일부러 그랬건, 어쨌거나 사도 바울은 사랑의 말로써 사랑의 삶을 대치하려 하는 사람을 많이 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너희가사랑에 대해서 많이 말하느냐? 너희가 사랑에 대해 아무리 많이 말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희를 사랑의 사람이라고 말해 주는 것은 아니다" 라고 단언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사도로 불리었던 사도 요한도 동일한 위험을 지적했습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로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8)라고 촉구하였던 것입니다. 말과 혀로만 하는 사랑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꾸 말과 혀로만 사항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말과 혀로만 하는 사랑은 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희생을 아끼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바ㅣ기에 아까운 것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만약 있다면, 그것은 그가 사랑하는 대상은 사실 그 아까워하는 거것인데, 자신이 애써 그것을 모른 척하고 있는 것을 뿐입니다. 사랑의 말로는 사랑을 대치할 수 없습니다. 제 아무리 아름답고 유창한 말일지라도.......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고전 13:1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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