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인비는 세계 3대 문명의 교차로(Crossroad of Civilization)로 첫 번째, 지금의 팔레스틴 지방이고, 두 번째는 실크로드(silk road)가 지나는 중앙아시아의 아랄해 지역, 그리고 세 번째 문명의 교차로를 우리의 조국 한반도로 꼽았습니다. 우리의 조국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문명의 교차로이기 때문에 그만큼 전쟁이 빈발했습니다. 지금도 우리의 조국 한반도는 외세에 의해 남과 북이 갈라져 있고, 여전히 전쟁의 위협 속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지정학적 위험성을 안고 반만년을 살아왔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대인과 한국인이 우수하다는 평가는 수 없는 도전이 빚어낸 결과입니다. K-pop, K-드라마의 탁월함은 생물학적 우수성이 아니라 끊임없는 외세의 도전 가운데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도 은근과 끈기를 가지고 성공적인 응전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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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널드 조지프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1889년 4월 14일~1975년 10월 22일)는 영국의 역사가로1889년 4월 14일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윈체스터 칼리지를 거쳐 옥스퍼드 대학교의 베일리얼 칼리지(Balliol College)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고대사를 전공하며 1911년 졸업했습니다. 1918년 킹스 칼리지 런던 대학교에서 동로마 비잔틴 역사학 및 현대 그리스어 교수로 임명되었고, 동년 파리평화강화회의 전문위원으로 활약했습니다. 1919년부터 1922년까지 벌어진 터키 독립전쟁 당시 ‘가디언’지의 특파원으로 파견되었고, 전쟁이 끝난 뒤 그리스 정부를 비난하여 그리스인들의 반발을 샀습니다. 그 결과 1924년에 킹스 칼리지 런던 대학의 교수직에서 사임해야 했습니다. 1925년엔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의 국제역사학 교수와 왕립 국제 문제 연구소의 연구이사를 역임했습니다. 1929년에는 태평양문제 조사위원으로 일본을 방문했습니다. 1934년에 ‘역사의 연구’ ( #StudyofHistory )를 저술하기 시작하여 27년에 거쳐 12편을 완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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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인비 는 문명은 도전(challenge )에 대해 성공적으로 응전(response)해야 탄생과 성장이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이 원리에 따라 문명은 탄생 · 성장 · 쇠퇴 · 붕괴의 4단계 사이클(cycle, 주기)을 겪는다는 이른바 문명순환론을 주장했습니다. 즉 문명을 움직이는 원동력을 고차원 문명과 저차원 문명 간의 ‘도전과 응전’, ‘내적 프롤레타리아트와 외적 프롤레타리아트’, ‘창조적 소수와 대중의 모방’ 등으로 분석했습니다. 토인비는 이러한 이론을 토대로 인류가 창조한 문명을 유형화했습니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인류역사에 알려진 문명은 모두 30개인데, 그중 정상적인 순환과정, 즉 탄생 · 성장 · 쇠퇴 · 붕괴의 4단계를 거친 이른바 성장문명은 21개입니다. 그리고 자연재해나 전쟁 같은 불의의 요인으로 인해 이 과정을 제대로 다 거치지 않고 일부만 거친 정체(停滯)문명은 5개이며, 탄생 요인을 잉태했다가 태어나지 못한 유산(流産)문명은 4개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성장문명 21개 중에서도 이미 사라진 사(死)문명이 14개이며, 아직 살아 있는 생존문명이 7개(인도 · 이슬람 · 극동 · 비잔틴 · 동남유럽 · 그리스정교 · 서구 문명)라고 분석하였습니다. 이러한 초유의 문명유형화는 대체적으로 사실에 부합되는 것으로 지금도 문명사 연구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문명의 탄생 요건에 관해 종래의 통념은 자연환경적으로 인간 생활에 유리한 곳에서 탄생이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토인비는 이와 반대로 오히려 자연환경이 불리한 것이 문명 탄생의 필요조건이라고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불리한 환경은 일종의 도전이므로, 이러한 도전에 응전해 극복할 때만이 문명은 탄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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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는 고대 4대 문명을 탄생시킨 4대강 유역은 모두가 범람의 위험이 크고, 기후가 건조하거나 고온인 악조건 지역이어서, 인간이 고도의 지혜를 발휘해 그러한 도전을 성공적으로 극복하는 과정에서 고대 4대 문명이 비로소 탄생하게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성공적인 응전을 가능케 하는 요인은 인간의 창의력이라고 하면서, 창의력이 있는 인간만이 도전을 이겨내고 문명을 탄생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토인비는 탄생한 문명의 성장도 도전에 대한 응전이 성공해야 가능하며, 그러한 성장은 단순한 영토의 확장이나 경제적 및 기술적 발전만은 아니고 더 중요한 것은 정신적 승화(etherealization)라고 보았습니다. 문명의 붕괴는 결국 문명의 최종 단계인 해체로 마무리되는데, 때로는 붕괴가 중지되어 해체가 아닌 장기적인 화석기(化石期)가 도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토인비는 이집트와 동양문명이 바로 이런 경우라고 여겼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창조성은 자포자기나 자기억제로, ‘흉내’는 보이콧이나 순교로 변해 결국 영혼의 분열도 일어나게 됩니다. 이 단계에서는 적대국가나 적대사상 간에 전쟁이 발발하게 마련인데, 그 전쟁에 기진맥진한 대중은 세계국가나 평화를 갈구하게 됩니다. 문명의 해체기나 화석기가 지나서 새로운 문명이 탄생하기까지는 상당히 긴 ‘밤’을 보내게 되는데, 토인비는 이 기간을 ‘공위시대’(空位時代, interregnum)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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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인비는 자신의 역사이론인 ‘도전과 응전’의 법칙을 비유적으로 설명하기에 안성맞춤인 청어(靑魚)를 소재로 사용했습니다. 청어는 영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고급 어종입니다. 하지만 청어가 잡히는 곳은 북해나 베링해협 같은 먼 바다였기에 싱싱한 청어를 먹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배에 싣고 오는 동안에 대부분 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살아있는 청어가 런던 수산시장에 대량으로 공급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비결은 청어를 운반해오는 수조에 청어의 천적인 물메기 몇 마리를 함께 넣는 것이었습니다. 청어가 물메기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힘껏 도망 다니다 보니, 그런 긴장이 청어를 살아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토인비가 청어 이야기를 자주 인용했던 것은 가혹한 환경이 문명을 낳고 인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었다는 자신의 역사이론을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토인비는 문명이 만나는 도전을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습니다. ①척박한 땅이 주는 자극, ②새로운 땅이 주는 자극, ③갑작스런 외부의 공격, ④외부의 계속적인 압박, ⑤그리고 사회 내부 집단에 대한 압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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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도전이 없으면 폴리네시아, 에스키모, 유목민 사회처럼 문명이 성장을 멈추고 맙니다. 도전이 가혹할수록 응전하는 힘도 커지지만 지나치게 가혹하면 문명 자체를 말하기 때문에 지나치지 않은 수준의 도전이 문명의 성장에 큰 자극을 줍니다. 역사를 봐도 그러합니다. 자연조건이 지나치게 좋은 환경에서는 문명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토인비는 문명을 일으킨 자연환경은 안락한 환경이 아니라 대부분 가혹한 환경이었다고 말합니다. 역사적으로 자연환경이 좋은 나라는 늘 발전에서 뒤처졌다는 지적입니다. 고대문명과 세계 종교의 발상지가 모두 척박한 땅이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이집트 문명을 예로 들어보면 이집트 문명을 일으킨 민족은 원래 아프리카 북부지역에서 수렵 생활을 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5,000~6,000년 전 아프리카 북부를 걸치고 있던 강우 전선이 북유럽 쪽으로 이동해 가자 아프리카 북부와 남아시아 지역은 빠르게 건조, 사막지대로 변해갔습니다. 이들에게는 이론상 세 가지 선택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 남아 기존의 수렵 생활을 영위하면서 연명하거나, 그 자리에 남아있으되 수렵 생활 대신 유목이나 농경 생활로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거나, 거주지역과 생활방식을 모두 바꾸는 것, 이 셋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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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응전 중 어느 것을 택했느냐에 따라 이들의 운명이 갈렸습니다. 그 자리에 남아 조상들의 방식대로 수렵 생활을 계속했던 부족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고, 생활방식을 바꾼 부족은 아프리카 초원 지역의 유목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독사가 우글거리는 나일강 변 밀림 지역으로 옮겨 가 농경과 목축을 선택한 부족들은 마침내 찬란한 이집트 문명과 수메르 문명을 일구었습니다. 문명의 교차로(Crossroad of Civilization)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길목인 전쟁터를 말합니다. 토인비가 세계 3대 문명의 교차로를 말할 때 그 첫 번째는 지금의 팔레스틴 지방이고, 두 번째는 실크로드(silk road)가 지나가는 중앙아시아의 아랄해 지역, 그리고 세 번째 문명의 교차로를 우리의 조국 한반도로 꼽았습니다. 우리의 조국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문명의 교차로이기 때문에 그만큼 전쟁이 빈발했다는 뜻입니다. 반만년 역사 속에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으로부터 크고 작은 도전과 전쟁들이 수없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우리의 조국은 외세에 의해 남과 북이 갈라져 있고, 여전히 전쟁의 위협 속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지정학적 위험성을 안고 반만년을 살아왔습니다.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적으로 유대인과 한국인이 우수하다는 평가는 수 없는 도전이 빚어낸 결과입니다. 이러한 탁월함은 생물학적 우수성이 아니라 끊임없는 외세의 도전 가운데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도 은근과 끈기를 가지고 성공적인 응전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무엇이며, 누가 역사를 쓰는 것일까? 모든 인간은 모두 역사의 주인공인가? 인류의 역사는 계속 진보하는 것인가? 한 국가나 집단이 제대로 역사를 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역사를 움직이는 힘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대한 답이 바로 이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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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muelleedr
忍齋 黃薔 李相遠님 - 노란장미의 사는 이야기 그리고 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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