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lvation┃(inst.)

거친 바람이 불어오는 산맥의 자락, 꽃이 가득한 고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고성에는 엘레나라는 이름의 소녀가 살고 있었다. 엘레나는 귀족 가문의 딸이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늘 검소하고 겸손했다. 성대한 연회보다 작은 꽃밭에서 시간을 보내기를 좋아했고, 화려한 옷보다 소박한 드레스를 즐겨 입었다.

엘레나는 귀족이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도시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함께 울며 함께 웃었다. 고성의 정원에서 자라는 장미들을 가꾸는 동안에도, 그녀는 도시 실바니스를 위해 기도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에테르의 붕괴로 인해 도시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는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몇몇 사람들만이 병에 걸렸지만, 곧 전염병은 실바니스 전역을 휩쓸었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집안에 숨어 지냈고, 절망의 그림자가 도시를 뒤덮었다.

엘레나는 매일 밤 기도했다. 도시를 구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결심한 그녀는, 오래된 서고에서 희귀한 문서를 발견했다. 문서에는 전염병을 물리칠 수 있는 고대의 의식에 대한 기록이 있었다. 의식을 치르기 위해서는 순수한 영혼을 가진 자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엘레나는 망설였다. 그녀가 생명을 바쳐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서, 실바니스를 구해야 한다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그녀는 결심을 굳히고, 이 사실을 알리지 않기로 했다.

엘레나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친구이자 동반자인 산양 알테르와 함께 의식을 준비했다. 알테르는 눈부신 하얀 털과 빛나는 뿔을 가진, 마치 전설 속의 존재처럼 고귀한 산양이었다. 엘레나는 알테르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했고, 알테르는 그녀의 결심을 이해하며 곁을 지켰다.

의식을 치르기 위한 장소는 고성의 꼭대기, 하늘과 맞닿은 작은 성소였다. 엘레나는 성소로 향하는 길에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알테르와 함께 올라갔다.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그 빛들은 마치 엘레나의 결심을 축복하는 듯했다.

엘레나는 성소에 도착해 의식을 시작했다. 그녀는 알테르의 도움을 받아 제단 위에 섰고, 마음 속으로 도시의 모든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녀의 희생이 그들을 구할 수 있다면, 그녀는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의식이 끝나고, 엘레나는 조용히 제단 옆에 앉아 알테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알테르의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알테르, 이제 내가 잠들 시간인 것 같아. 도시가 다시 평화를 찾을 수 있도록."

알테르는 조용히 엘레나의 옆에 몸을 맡겼다. 엘레나는 알테르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눈을 감았다. 그 순간, 강렬한 황금빛이 엘레나의 주위를 가득 채웠다. 빛은 실바니스 전체로 퍼져나가, 전염병을 물리쳤다. 모든 사람에게 엘레나의 뜻이 전해졌고, 사람들은 기적을 경험하며, 병에서 회복되기 시작했다.

엘레나가 잠든 자리는 한번 더 빛으로 가득 찼고, 땅에서 하나의 작은 새싹이 솟아났다. 그 새싹은 빠르게 자라나더니, 이내 거대한 세계수가 되었다. 이 나무는 도시를 감싸 안으며, 그곳에 영원한 생명과 평화를 약속하는 듯했다.

사람들은 그녀를 '프레이야'라 불렀고, 그녀의 용기와 사랑을 영원히 기렸다. 알테르는 엘레나가 남긴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며, 세계수 아래에서 그녀를 지켰다. 그는 도시를 내려다보며, 엘레나의 희생과 그로 인해 생겨난 세계수를 지키며 살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