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홍 목사-예수 이름의 비밀-새로운교회-성령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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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 "예수 이름의 비밀"(규장, 2021)
배안호 선교사(파라과이)의 서평 중 일부

1. 예수: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 할 자’
예수님의 이름의 뜻은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월 할 자”(마1:21)이다. 예수님의 이름 안에 이미 예수님의 핵심 사명이 내포되어있다. 모든 인생은 근본적인 죄(Sin)와 실제적인 죄들(sins)가운데서 태어나서 죄에 노예되어 일생 죄덩어리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채 살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죄’ 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불편해 한다. 그래서 자꾸 , 다른 표현을 쓴다. 실수, 상처, 성경 차이, 취향의 차이, 문화적 편견 같은 말들을 더 선호한다. 특히 현대인들이 죄 대신 잘 쓰는 말은 ‘정신적으로 병을 앓고 있다’는 표현이다” (p.18)
“성도들이 ‘죄’라는 말을 싫어하니까 자연스럽게 교회들이 회개를 강조하지 않는다. 미국의 많은 교회가 ‘죄 문제’를 정확히 다루며 회개하기보다는 적극적인 사고방식, 자기 계발, 치유와 상담 쪽으로 설교하거나 목회 방향을 잡는다” (p.19)
“하나님은 죄를 죄로 보신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도 죄를 죄로 봐야 한다. 상처니, 취향이니, 정신병이니 하는 말로 죄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의 이름이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인데, 죄를 죄로 보지 않는 사람에게 예수의 이름이 무슨 능력이 있겠는가?” (pp.19, 20)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우리를 위해 흘려주신 주님의 고귀한 십자가 사랑을 생각하라! 그 사랑을 결코 헛되이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라! 그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 앞에 모든 어둠의 권세가 물러간다는 사실을 믿어라! 예수의 이름은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가득하다!” (p.22)
“예수의 이름이 귀중한 만큼, 예수의 이름처럼 함부로 남용되는 것도 없다. 특히 크리스챤들이 너무나 쉽게 예수의 이름을 남발하는 것 같다. 모든 기도 끝에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말을 붙이는 습관이 배어있고, 많은 목사님이 강단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질병은 치유될지어다”라고 선포하면 성도들은 열화같이 “아멘!” 하면서 반응한다. 그러면 예수 이름의 능력과 은혜를 다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p. 24)
 참으로 그렇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라는 말을 너무 남발, 남용하고 있다. 나는 6년전 파라과이에 처음 정착할때, 시내뻐스 앞에도, 큰 트럭에도 붉은 글씨로 크게 ‘Jesus’가 쓰인 것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 두근거리며 감사하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Jesus는 파라과이 사람들에게 마리아와 같은 종교적인 이름임 뿐임을 나중에사 알게 되었다.
“거룩은 생명이다. 살고 싶으면 영적으로 정결해져야 한다. ‘죄’라는 바이러스에 오염되면 영혼이 병들고, 죽을 수도 있다. (‘죽는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목숨을 걸고 싸워서 죄를 몰아내야 한다. 그러나 죄는 인간의 노력으로 퇴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가능하다. 예수의 이름은 그 이름에 담긴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를 정결케 한다” (p.26)
지상의 모든 참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다. 신자와 교회의 능력은 거룩에서 나온다.
“거룩은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우리를 데려다주는 통로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틈을 만들었다. 태양으로 부터 멀리 떨어질수록 춥고 어둡듯이, 하나님으로 부터 떨어질수록 우리 인생이 비참해 진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가 그 틈을 메워준었다” (p. 27)
“죄가 바이러스라면 죄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면역력은 바로 예수의 이름이다. 그 이름에 담긴 십자가 보혈의 은혜다. 우리가 항상 그 은혜에 잠기어 살아야 한다. 그것이 가장 안전해 지는 길이고, 그것이 가장 강해지는 길이다” (p. 28) 정말 그렇다. 예수의 이름의 은혜에 잠기어 살아야 한다.

2. 그리스도: 메시야, 기음부으심 받은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16:16)
“성경에서 밝힌 대로 ‘그리스도’는 히브리어 ‘메시아’(messiah)의 헬라어 번역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란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메시야’라는 말을 이해하면 된다. 한 마디로 ‘기름부으심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즉 ‘그리스도 = 메시아 = 기름부으심을 받은자’이다.” (p. 32)
“그리스도, 기름부으심을 받은 받은 메시야가 오시면 영적 희년이 선포되는 것이다. 희년은 승리와 안식, 영원한 기쁨을 상징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기쁨과 찬양이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면 주님의 기쁨이 넘치게 된다. 아직 눈에 보이는 상황은 하나도 개선된 것이 없지만, 설명할 수 없는 하늘에 기쁨과 평안이 우리 안에 가득하게 된다.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샘솟는 기쁨이 내게서 솟아난다.” (p.49)
 따라서 그리스도인과 성경의 기름부으심은 분리되어 생각할 수 없다. 내 심령에 그리스도로, 성령으로 충만한 기름부으심을 날마다 사모해야 한다. 기름부으심은 자기 자신이 먼저 알게 된다. 그 표지는 큰 평안과 기쁨이다. 나는 이 기븜과 평안을 지금 누리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란 이름을 사용할때마다 물어야 한다. 나는 기름부으심으로 충만한가?

3. 주: 주인님(Lord)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롬10:9)
저자 한홍 목사는 이미 그의 책, "기독교 에센스"에서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한다는 의미를 과거형 구원(Salvation Past), 현재형 구원(Salvation Present), 미래형 구원(Salvation Future) 설명하였다. 곧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에 우리의 모든 과거의 죄가 주님의 보혈로 용서받고 의롭게 여기주시는 구원을 받게 된다. 아울러서 우리의 옛사람이 죽고 성령의 새사람으로 이땅에서 성화(Sanctification)를 경험하게 되며, 아울러서 장차 천국에서 그날 완성될 구원의 영광으로 들어가는 영화(Glorification)가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p.55)
사람들 앞에서 ‘주여’ 고백한다는 뜻: 절대 순종의 헌신 – ‘지연된 순종은 순종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라고 고백한다는 것은 절대순종의 헌신을 말하는 것이다. 주기도문은 문자 그대로 ‘주님의 기도문’(The Lord’s Prayer)이다. 주님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신 기도문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기도문이다” (p. 62)
주인의 무슨 “말 떨어지면 전부 순종해야지 부분적으로만 순종하는 것도 불순종이다. 성경의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에서 ‘주’는 바로 이 맥락에서 이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절대로 함께 쓸수 없는 두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주님’과 ‘아니오’(N0)이다. 만약 우리가 그분께 “노!”라고 한다면 그분은 우리의 주님이 아니시다. 만약 그분이 우리의 주인이시라면 우리의 대답은 항상 “예스”(Yes)여야 한다” (p. 62)
 참으로 그러하다. 그래서 매일 말씀을 읽으며 묵상할때 하나님이 그날 나에게 주시는 말씀은 그날 즉각순종’해야 한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무슨 말씀이 떨어지든지 우직하게 ‘즉각순종’을 모토로 삼고 순종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였다. ‘나중에 순종하겠다’는 말은 ‘순종 안하겠다’는 뜻의 다른 말임을 지난 50년간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4. 임마누엘: 우리가 경험하고 다가갈 수 있는 하나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1:23)
 필자에게 예수님의 여러 이름 중에 가장 감동.감격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겠다’(God with me)는 은혜보다 더 큰 은혜가 없기 때문이다. 2,000년 전 예수님이 친히 이 땅에 인간의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크리스마스 사건으로 오시기 전의 구약의 하나님이 나타나실때는 언제나 천둥과 지진 혹은 빽빽한 구름가운데서 나타나셨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현현을 크게 두려워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타내실 때에는 늘 습관처럼 하시는 말씀이 있다. “두려워하지 마라. 무서워하지 마라.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라는 말씀이다. 그래도 목소리는 천둥소리 같고, 큰 폭포소리 같았으며, 그 주위에는 불기둥이 솓고 번개가 빛나서 사람들은 두려워 했다. (p.76)
“임마누엘은 어둡고 힘든시대를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위로의 이름, 소망의 이름이다. 우리 인생의 가장 어둡고 힘든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우리 곁에 함께 계심을 확인해 주는 이름이다” (p. 79)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 불을 치워주시지 않으시고 그 불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신다. 그러나 그 불속을 함께 가주심으써 우리가 불꽃에 타지 않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 물을 치워주시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 물속으로 함께 들러가주시므로 물이 우리를 침몰시키지 못하게 하신다” (p.86)
“성경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 수 없이 많이 나오는데,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특히 “두려워 말라”는 말 바로 옆에 항상 붙어 나오는 말이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즉 임마누엘의 하나님의 약속이다. 두려움을 이기는 결정적인 해법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확신하는 것이다” (p.89, 90)
 참으로 저자 한홍 목사의 놀라운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신.구약 성경 어디를 읽어 보아도 ‘두려워 하지 말라’/’놀라지 말라’는 말씀과 함께 등장하는 말씀은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친히 우리와 함깨 하시겠다는 약속이 아닌가? 역으로 가장 두렵고 떨리는 그 때가 임무누엘의 은혜를 절절이 체험하게 되는 때가 아니겠는가?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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