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낭독테라피] 신춘문예 당선한 김지희 수필가의 '식리' 2021년 경주문학상 수상작. 설명란에 원문이 게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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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리(植履)


뒤축 닳은 시간들이 가지런하다. 오십 년은 족히 되었을 신발들이 늙은 병사들처럼 사열해 있다. 발목이 긴 군화도 있고 경찰단화도 여러 켤레다. 그 중에서도 신문지를 푸지게 먹고 배가 볼록한 검정구두가 제일 상석이다. 마지막 외출이 언제 적이었던가. 먼지에 거미줄까지 잔뜩 뒤집어쓰고 식리처럼 다락에 박제되어 있다. 
식리(植履)는 장례에 쓰는 장식용신발이다. 삼국시대 고분인 왕릉에서 주로 출토된다. 경주 대릉원 천마총은 신라시대 왕릉으로 추정되는 돌무지덧널무덤으로 금관, 금제관모, 금제과대 등 국보급 유물이 발굴되었다. 석담을 돌려 시신을 안치한 목관과 상면공간에 부장품인 껴묻거리가 진열되어있다. 생전에 쓰던 물건을 고인의 시신과 함께 수장했는데 그 중에는 금동판에 정교하게 무늬가 새겨진 식리가 있다. 살아 있던 동안 누렸던 지위를 사후에도 누리기를 바라고 시신과 함께 부장품으로 묻은 것이다.
 아버지는 물건을 버리지 못했다. 어떤 물품이든지 정하게 쓰는 것은 물론이고 고장이 나서 쓰지 못하게 된 것도 몇 해 동안 더 묵혔다가 온갖 잔소리를 듣고서야 겨우 내놓았다. 그렇다보니 작은방은 물론이고 안방이며 거실까지 오래된 물건들로 복작거렸다. 두꺼워 혼자서는 들기조차 힘든 베개만한 책이며 오래되어 색 바랜 편지들, 여기저기서 구해다 놓은 토기뿐만 아니라 모임의 인명부까지 버리지 않고 보관했다. 
 지난 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유품을 정리했다. 한평생 애지중지하던 물건이라 형제들은 누구 먼저 선뜻 나서려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언니와 둘이서 하기로 했다. 장롱과 문갑에는 올케들이 철마다 때마다 사다 준 아버지의 옷들이 상표가 붙은 채 걸려있었고 상자도 뜯지 않은 수 십 켤레의 양말이며 속옷, 우산들이 빈틈없이 빼곡하게 쟁여져 있었다. 그것들을 방바닥 가득 늘어놓았을 때 당신이 있는 동안은 그대로 두었으면 하는 어머니의 간곡한 말에 따로 보관하게 되었다. 
 서늘한 복도 끝 작은 문을 열면 가파른 계단이 부동자세로 서 있다. 화장실 천정과 지붕 사이에 반 평 남짓한 다락은 무릎을 꿇든지 허리를 수그려야만 들어가는 걸 허락한다. 가족들의 해묵은 기억과 함께 골동품들의 무덤이다. 곰팡내가 퀴퀴하다. 손바닥만 한 천창으로 게으른 동지햇살이 슬며시 머무른다. 한나절이 넘도록 술래처럼 들추어 찾아냈지만 잡살뱅이들은 오래전 추억을 껴안고 곳곳에 돌레돌레 숨어있다. 
 먼지를 더께더께 뒤집어 쓴 구두 한 켤레가 캥거루 그려진 검정구두약과 함께 동그맣게 놓여있었다. 아끼느라 몇 번 신지도 못하고 한결같이 닦아서 방에 들여놓던 앞이 뾰족한 아버지의 검정 구두였다. 엄마는 신을 방에 둔다며 살몃살몃 면박을 주기는 했지만 그다지 나무라지는 않았다. 어쩌다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제 먼저 현관 앞에 놓였다. 신을 땐 행여 뒤축이 구겨질까 구두숟가락이 거들었고 걸을 때에도 조심하는 품이 역력했다. 외출에서 돌아오자마자 아버지는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에 천을 감고 입김을 불어가며 닦아서 원래 자리에 올려두었다. 
 아버지는 자식 넷을 건사하느라 정작 당신을 위해서 새 구두 하나를 장만할 형편이 못 되었다. 늘 제복과 함께 나왔던 투박한 경찰단화를 신고 다녔다. 그나마도 새 것이 나오면 챙겨 두었다가 막내삼촌이며 사촌오빠들에게 주곤 했다. 정작 당신은 발에 익어 편하다며 후줄근해진 헌 구두를 고집했다. 아버지의 움츠러진 어깨는 굽이 닳아서 기운 신발 탓이었으리라. 
 첫 월급을 타서 당시 최신식이던 앞코가 날렵한 검정구두를 아버지께 사다 드렸다. 온 식구들이 말렸지만 한사코 머리맡 문갑위에 올려두었다. 한창일 때 구두는 대통령을 만나러 청와대를 다녀왔고, 참봉자격으로 신라임금의 제사에도 참석했다. 그리고 반질반질하게 때 빼고 제자리인양 안방을 차지하고 있던 아버지의 뾰족코 구두. 유행이 한참이나 지나고 나서 콧대만 높았던 내 하이힐과 발맞추어 결혼식 행진도 했다. 
 신발 뒤축이 한쪽으로 삐뚤어져 있다. 한편만 닳은 굽은 안짱걸음으로 조심성스레 살아온 고단했던 삶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뒷배가 되어주었던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자린고비도 울고 갈 돈고지기 할아버지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고 전투경찰이 되어야 했다. 청상과수가 된 큰어머니와 작은어머니, 당신들의 자식까지 짊어져야했던 등짐의 무게는 서른을 갓 넘긴 아버지가 감당하기엔 버거웠으리라. 일생을 돌아보며 사느라 아버지의 구두 굽이 유별스럽게 닳았던 건 아니었을까. 
 아버지가 정년퇴직을 한 다음 해부터 엄마는 병명도 알 수 없는 여러 증상들 때문에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엄마 간병에 살림까지 도맡아하느라 당신의 삶도 갈피를 잡을 수 없게 헝클어졌다. 바깥출입은 고사하고 응급실과 여기저기 병원을 쫓아다니기 바빴다. 아버지의 구두는 점차 풀기가 죽었고 안방이 더없이 민망했던지 급기야 무덤 같은 다락으로 옮겨져 박제품이 되었다. 봄꽃놀이를 꿈꾸던 당신은 종내, 엄마와 그토록 아끼던 신발은 남겨두고 버선을 종아리 아래까지 동여매고 먼 길을 떠났다. 
 신발장이 비좁다. 굽이 높은 신발, 목이 긴 부츠, 복슬복슬한 털신, 사다놓고 한 번도 신지 않은 운동화 등 어림잡아도 열 켤레가 넘는다. 하다못해 아버지 신발을 두세 켤레만 사드렸더라면. 한 켤레 구두를 삼십 년 넘게 아끼느라 장식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작은딸의 선물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라 이미 짐작했던 것일까. 구닥다리 물건을 버리지 않는다고 투덜거리기만 했지 정작 그 마음은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 새삼 후회가 된다.
 구두의 먼지를 털어냈다. 당신이 했던 것처럼 손가락에 천을 감고 구두약을 발라 입김을 더해 닦았다. 원래 주인의 솜씨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윤기가 생겼다. 생전 아버지의 소리 없이 웃는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져왔다. 구두 속에 잉크냄새 가시지 않은 신문을 눈물 버무려 꾸역꾸역 채워 넣고 상자에 도로 담았다. 
 천창 넘어 보름달이 떴다. 오슬오슬 한기가 든다. 아버지가 건너간 세월만큼의 먼지를 털어내고 노병들이 사라진 다락은 허기진 거미줄이 얼기설기하다. 구두상자를 머리에 받쳐 이고 사다리 같은 계단을 가재처럼 뒷걸음질로 내려선다.
  복고 열풍을 타고 앞이 날렵한 구두가 다시 유행이라고 한다. 내일은 선산에 있는 아버지 산집에 잘 닦은 신발을 가져다 놓아야겠다. 하얀 복건, 명주바지저고리에 도포자락 휘날리며 생전에 좋아했던 구두 신고 그곳에서 봄나들이 갈 수 있도록.

*김지희 수필가 약력

20 15년 '시에' 수필 등단

2017년 [영주일보 ] 수필 신춘문예 당선

2018년 수필과 비평 신인상 수상

2021년 경주문학상 수필부문 수상

경주문인협회 회원

수필과 비평 작가회 회원

김지희 수필가의 메일 주소입니다-E-mail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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