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 만해문학박물관_만해와 '조선독립의 서', ‘피고는 금후에도 조선의 독립운동을 할 것인가?’ By 문학관TV]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庚戌國恥)’
우리나라 역사상 국권을 상실한 치욕의 날이다. 일제의 조선 강점 이후 조선총독부는 무단정치 10년을 통하여 국민들의 눈과 귀와 입을 막아버리고 폭압적인 통치는 민중을 도탄에 빠뜨렸다.
1918년 12월 미국 윌슨 대통령의 “각 민족은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 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다른 민족에게 간섭 받을 수 없다.”는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하자 세계정세는 급격하게 변하고 약소민족은 자주독립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갔다. 이러한 분위기는 만해 선사의 끓는 가슴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다.
만해 한용운은 민족의 독립과 자존을 세계만방에 알리기로 마음먹고 1919년 1월, 최린 · 오세창 등과 조선독립을 숙의, 결의를 다졌고 천도교·기독교·불교계 등 종교계를 중심으로 독립만세 거사를 계획, 마침내 3.1만세 운동의 주도적 도화선이 되었다.
□ 3·1 독립만세 운동
남강 이승훈 선생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인 16명, 손병희 선생이 이끄는 천도교 15명, 만해 선사를 비롯한 불교계 2명 등 33인의 민족대표는 세계만방에 독립을 선포할 것을 결의하고 손병희 선생을 대표로 추대했다. 육당 최남선이 쓴 '기미독립선언서' 초고에 만해 한용운 선사가 가필하고 공약 3장을 추가했다. 최남선의 초고(礎稿)가 온건한 반면 공약 3장은 실천적이며 의지가 뚜렷하게 담겨 있었다. 특히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라’는 공약 3장 2항은 33인의 취조·재판 과정에서 내란죄 죄목이 되기도 했다.
기미년 3월1일. 서울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만세 시위운동이 전개됐다. 만해 한용운 선사를 비롯한 민족대표 33인은 종로 태화관에서 “이제 우리는 조선의 독립을 선언했으니 죽어도 한이 없다” 만해의 축사와 ‘대한독립만세’를 선창 후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마포경찰서에 수감되었다. 잡혀간 독립지사들은 심한 고초를 당해야 했는데 국가내란죄로 사형된다는 소문에 모두 마음이 약해졌다. 미결수로 있는 동안 겁에 질려 눈물을 흘리는 그들에게 만해는 똥통을 둘러엎으며 “나라 잃고 죽는 것이 서럽거든 당장에 취소하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1919년 3월11일 재판정에서 일본인 검사는 “피고는 금후에도 조선의 독립운동을 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그렇다. 계속해서 어디까지든지 할 것이다. 반드시 독립은 성취될 것이다”고 명쾌하게 대답했다. 이어 “만세운동으로 처벌될 줄 알았는가?” “내 나라를 세우는데 힘을 다할 것이니, 벌을 받을 리 없을 것이다” 한용운의 이 같은 의지는 흔들린 적이 없었다. 5월8일, 경성지방법원의 판사 또한 같은 질문을 했다. “피고는 금후도 조선 독립운동을 할 것인가?” 한용운은 “그렇다. 언제든지 그 마음을 고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몸이 없어진다면 정신만이라도 영세토록 가지고 있을 것이다”고 대답했다.
망설임과 거칠 것 없는 만해의 답변에 고압적인 일제 총독부의 재판관은 움찔했다. 만해는 법정에 설 때면 “자존심이 있는 민족은 남의 나라의 간섭을 절대로 받지 아니하오” “우리들의 행동은 너희들의 치안유지법에 비춰 보면 하나의 죄가 성립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조국과 민족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다”고 한 치도 물러나지 않았다. 만해 한용운은 당시 법정 최고형이었던 3년 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 치열하고 격조 있는 옥중투쟁
3년 간의 옥중생활에서 한용운은 의연했으며, 수감 중 ‘3대 투쟁원칙’을 세워놓고 실천에 옮겼다. 첫째, 변호사를 선임하지 말 것, 내 나라를 내가 찾는데 누구에게 변호를 부탁할 것이냐. 둘째, 사식을 받지 말 것, 온 천지가 다 감옥인데 호의호식하려고 독립운동 하지 않은 이상 사식을 먹지 말자는 것이다. 셋째는 보석을 요구하지 말 것, 만해는 이렇게 3대 원칙을 세워놓고 옥중에서도 철처하게 항거했다. 1919년 7월 서대문형무소에서 만해는 검사의 심문에 대해서 “나는 할 말이 많다. 서면으로 답변 할테니 종이와 펜을 달라”고 요구하여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라는 장문의 논설을 썼다.
"자유는 만유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다. 그러므로 자유가 없는 사람은 사해(死骸·송장)와 같고 평화가 없는 자는 다시없는 고통이다. 압박을 받는 자의 주위는 무덤과 다름없고 쟁분(爭奮)을 일삼는 자의 환경은 지옥이 되나니 우주의 이상적 가장 행복한 실재(實在)는 자유와 평화다. 그렇기에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생명을 홍모(鴻毛)처럼 가볍게 여기고 평화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희생을 감태(甘飴)처럼 맛보나 이는 인생의 권리인 동시에 또한 의무일지로다.“
무려 8천여 자(200자 원고지 60매 분량)의 장문의 글에서 만해는 민족 자결의 원칙은 정의이며, 인류가 누릴 행복의 근원이기 때문에 어떠한 무력도 감히 조선민족의 정치적 운명을 간섭할 수 없다. 평화를 지키고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회복하기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희생하는 것이 사람으로서 얼마나 가치 있고 고귀한 것인가를 역설했다.
한용운은 만기 출옥을 3개월 정도 남겨두고 1921년 12월 22일 최린, 오세창, 김창준 등과 함께 가출옥했다. 출옥 소감을 묻는 동아일보 기자에게 그는 “내가 옥중에서 느낀 것은 고통 속에서 쾌락을 얻고 지옥 속에서 천당을 구하라는 말”이라며 "경전으로는 여러 번 읽었으나 실상 몸으로 당하기는 처음인데 다른 사람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 속에서도 쾌락으로 지냈다”고 말했다.
만해는 일제의 극심한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비타협적인 독립사상을 견지하다가,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기 싫다며 북향으로 지은 성북동 집에서 일제가 주는 배급식량을 일체거부하고 냉골에서 생활하다 조국광복을 1년 남짓 남겨 놓고 6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시인 조지훈은 만해 한용운을 두고 “근대 한국이 낳은 고사(高士)요, 애국지사요, 문단(文壇)의 거벽(巨擘)”이라고 상찬했다. 또 위당 정인보는 “인도에는 간디가 있고 조선에는 만해가 있다”고 했으며, 벽초 홍명희는 “7천 승려를 합하여도 만해 한 사람을 당하지 못한다. 만해 한 사람을 아는 것이 다른 사람 만 명 아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
일생을 자유, 평등, 평화와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서 살다 가신 만해 한용운 선사는 우리 민족의 저울추로서 영원한 역사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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