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창조한 신, 그러나 개입은하지 않는 신"- 이신론(Deism)에 대한 흄의 비판 [물고기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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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3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유신론자, 신이 없다고 믿는 무신론자, 그리고 신의 존재에 대해 알 수 없다고 보는 불가지론자가 있지요. 신의 존재를 믿거나 믿지 않거나 알 수 없다고 하는 각자의 입장에는 다들 자신만의 근거가 있습니다. 유신론자들은 기적적인 경험을 통해 신의 존재를 주장하기도 하고, 무신론자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악이 신의 부재를 말해준다고 보기도 합니다. 불가지론자는 인간의 능력으로 신의 존재를 인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거나 아니면 신의 존재유무는 관심없다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요. 기독교 신앙에서는 성경을 통한 계시가 신의 존재와 동일시되지만 이와 다르게 신의 존재는 인정하면서도 기적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에게 세상은 잘 만들어진 시계와 같아서 시계를 제작한 시계공의 존재는 있지만, 완성된 시계는 더 이상 시계공의 간섭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보았지요. 그 대표적인 움직임이 ‘이신론(Deism)’입니다.

이신론
자연종교(Natural Religion)라고도 불리는 이신론은 신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신의 섭리나 경륜 등 세상에서의 신의 활동은 부정합니다. 일반적인 유신론이 신의 존재와 함께 신이 초자연적인 섭리와 기적을 통해 세상에 개입하신다고 보는 견해인데 이신론은 여기서 신의 세상을 향한 개입을 인정하지 않지요.
이신론은 사변 속에서 등장한 이론이 아닙니다.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 이후 자연을 바라보는 세상의 관점이 달라졌는데요. 세상에는 경험으로 관찰가능한 법칙이 내재해 있고 이는 수학적으로 공식화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신적인 활동으로 여겨졌던 것들은 모두 자연의 내적인 활동으로 해석이 되었습니다. 즉 계몽주의의 시대가 열린 것이지요. 세상이 완벽한 법칙에 따라 운영된다면 그 법칙을 깨뜨리는 ‘기적’과 같은 활동은 비상식적으로 이해됩니다. 그래서 당시 지식인들, 그 가운데 종교인들은 이신론을 또 다른 형태의 종교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종교의 탄생이었지요. 심지어 성직자를 비롯한 종교 기득권에 의해 조작되기 이전의 순수한 자연종교였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신론의 내용
이신론에도 여러 계파가 있지만,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사실만 요약하자면, 첫째 하나의 신 존재를 믿습니다. 이는 사실 복수인지 단수인지와 같은 수학적 개념이라기보다 질적인 부분으로 궁극성을 의미합니다. 신을 궁극적 존재로 이해한 셈이지요. 둘째, 그 신은 인간의 예배를 받기에 합당한 가치가 있으신 존재라는 것을 믿습니다. 이는 궁극적인 존재인 신이 실재로도 그러한 가치가 있으시다는 겁니다. 만약 그런 가치가 없다면 그 신은 우상숭배에 불과하거나 인간의 착각이나 환상에 불과하겠지요. 신으로의 가치가 없음에도 예배를 받기 때문입니다. 셋째, 덕의 실천은 그 신을 향한 인간의 중요한 예배 요소로 이해됩니다. 이신론의 도덕적인 특성이 잘 나타나는데요. 이성에 부합하는 상식적인 공리적인 특성을 잘 보여줍니다. 넷째는 인간은 악을 혐오하고 스스로 죄를 회개해야 마땅하다는 것인데, 이는 다섯 째 명제와도 연결됩니다. 죽음 이후에는 덕에 대한 보상과 악덕에 대한 처벌이 있다는 것인데, 이는 모두 이신론을 도덕적 종교로 기능하게 하는 주된 요소가 됩니다.

이신론의 등장배경
지금도 유럽은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민감한 사적인 내용으로 생각합니다. 오랜 세월 종교전쟁을 통한 갈등을 겪은 역사가 있기 때문이지요. 사변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교리로 인해 서로 죽고 죽이는 갈등을 겪은 사회를 자양분 삼아, 이성에 부합하는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종교라 불리는 이신론이 태동합니다. 인간의 이성이 이러한 갈등과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거라 믿었던 겁니다. 오늘날 정교분리 개념이나 종교적 관용 등과 같은 개념은 모두 이신론의 영향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편견에 가득찬 고집스러운 올드맨이 아니고 나이스하고 상식적인 종교인의 탄생이었지요.

데이비드 흄의 이신론 비판
사실 이신론은 신의 존재만을 다루는 존재론적 명제입니다. 신의 존재유무만 다룰 뿐 그 신이 어떤 속성을 지녔는지 등은 이성을 통해 보충되지요. 쉽게 말해서 인간 이성에 부합하는, 칸트의 표현대로 이성의 한계 안에 있는 종교인 셈입니다. 이러한 칸트를 ‘독단의 잠’에서 깨운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여러 가지로 이신론에 대해 회의론적 견해를 전개합니다.
먼저는 세상을 시계로 보고, 신을 시계공으로 보는 ‘설계자 논증’, 소위 목적론적 논증인데요. 중세 가톨릭 신학을 집대성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5가지의 논증’ 가운데 마지막 논증이기도 합니다. 데이비드 흄은 이 논증의 논리전개를 탓하지는 않습니다. 흄이 문제삼는 부분은 그 논증의 근거가 되는 증거, 즉 증거능력에 대한 회의였습니다. 흄이 볼 때 목적론적 논증 최대 결함은 증거능력이 없는, 증거로서 보증할 수 없는 부분까지 증명을 시도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목적론적 논증은 일종의 유비거든요. 우리는 각자 차고 있는 시계를 보고 세상을 시계와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정교한 시계를 보고 정교하게 이 세상을 창조하신 신의 존재를 추론한 겁니다. 시계에 대한 작은 관찰이 세상으로 확장된 셈인데요. 흄은 시계와 세상의 유사성은 미미할뿐 아니라 유비적으로도 정확하지 않다고 비판합니다. 그리고 시계를 통해 시계공을 떠올리는 형식의 추론이라면 시계는 손목시계, 스마트워치, 자명종 등 종류도 다양하고 시계의 엔진이라 할 수 있는 무브먼트도 스위스산, 국내산 등 다양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단 하나뿐이지요.
또 시계를 만드는 시계공도 실수를 해서 불량을 만들기도 합니다. 또 시계공이 전세계에 한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이 존재하기에 신도 하나의 존재를 담보해주지 못합니다. 심지어 이 세상의 여러 불완전한 모습들 특히 악의 문제들은 미숙한 시계공이 만든 불량 시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됩니다.
흄의 주장은 세계 안에 존재하는 증거로부터는 신의 완전성이나 전능함, 선함을 증명해낼 수 없다는 겁니다. 이 논증에서 최대한 이끌어 낼 수 있는 결론은 존재하는 세상은 어떤 원인이 있었다는 정도일 뿐이지요. 이 어떤 원인과 종교적인 의미의 신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또 도덕을 종교의 특성으로 본 이신론자들을 향해 종교가 꼭 도덕적이지만은 않음을 여러 역사적 사건들을 들며 반박합니다. 심지어 정통 기독교 신앙도 회의적으로 보는데, 그에게 기적은 그저 자연의 질서가 흐트러지는 것 정도로 이해되었습니다. 흄에게 초자연적인 기적은 개념부터 다르게 이해되는데요. 그는 기적이 가능한가라고 묻지 않고, 특정한 조건에서 기적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라고 묻습니다. 즉 증거능력에 따라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흄의 입장이었지요.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을 보았다는 베드로의 주장은 사람이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가능성과 이를 증언한 베드로의 신뢰도를 비교해야 합니다. 흄에 따르면 베드로가 틀릴 확률이 더 낮아야지만 베드로의 증언은 믿을 수 있게 됩니다.

결론
이신론은 계몽주의 시대 종교에 회의를 느끼던 시대에 태동했습니다. 종교, 교리라는 이름의 독단적인 도그마가 가져오는 갈등과 다툼, 그리고 인간에 대한 존중과 기대 속에 이신론은 발전했습니다. 비신앙인이 볼 때 이신론자들은 철저히 상식적인 사람들입니다. 무모한 신념이나 문화적 편견이나 종교적 고정관념도 없이 자유롭고 유연한 사람들이었지요. 상식적으로 존재하는 세상을 보니 세상을 만든 어떤 원인은 있을거라는 추론이 가능하고 이를 모두에게 유익이 되는 구조로 환원시켜 도덕적인 종교를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정말 세상은 이신론의 기대와 같이 진행되었나요? 과학이 발전하고 지적 수준이 높아지면 세상은 유토피아에 가까워질까요? 이신론이 세상과 인간을 해석하는 하나의 세계관이라는 측면에서 이신론의 시도는 실패한 것으로 보입니다. 세상의 악과 인간의 본성은 이성의 능력과 비례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지금까지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