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증인]나는 '빨치산의 딸'입니다 - R (201105목/뉴스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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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김승옥 등 한국 문학계에 큰 획을 그은 작가들 중에는 연좌제로 사회 진출이 가로막혀 문학을 택한 이들이 많았는데요.

25살에 '빨치산의 딸'로 문단에 데뷔한 구례 출신 정지아 작가도 그 중 하나입니다.

특별기획 증인, 오늘은 빨치산 핵심 간부였던 부모님을 둔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조희원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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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
"지나간 역사를 정확하게 바로 보지 않으면 그 민족에게 진보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역사를 사실대로 기록하는 일. 해석은 차후의 문제고요. 이런 것은 좀 해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죠."

1990년, 25살의 나이로 '빨치산의 딸'을 발표해
문단에 반향을 일으켰던 정지아 작가.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빨갱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던 그날의 충격을
생생하게 떠올립니다.

◀INT▶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랑 말싸움을 하다가 걔가 화가 났나보죠? 저한테. 그래서 빨갱이의 딸 주제에. 이렇게 말을 해서 알게 됐고요. 집에 돌아가는 길이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농협 벽에 '멸공', '방첩' 이렇게 빨간 글씨로 크게 쓰여 있었어요. 그래서 제 아버지가 국가에서 때려잡자고 하는 그 빨갱이라고 하는 것을 처음 알게 됐고요."

전남도당 조직 부부장을 지낸 작가의 아버지와
이현상 부대 정치지도원이었던 어머니는
남로당의 주요 간부였습니다.

하지만 혹시 외동딸에게 해가 될까,
작가의 부모님은 자신들의 젊은 날을
기억 저편에 묻어둔 채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빨갱이 집안이라는 수근거림까지
막을 수는 없었고, 작가는 혼란스러운
유년기를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INT▶
"나는 국가를 선택하면 부모를 배신하는 것이고, 부모를 선택하면 국가를 배신하는 것인데.. 이런 딜레마가 아마 제 성장과정 내내 대학 가기 전까지는 있었던 것 같고요."

작가가 '빨갱이의 딸'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게 된 건,
대학에 간 이후였습니다.

1987년 민주 항쟁 이후 하나둘씩 밝혀진
한국현대사의 그늘을 직시하며
여순10.19의 아픔을 깨닫게 됐고,

◀INT▶
"다 데모하는 시절에 (구례에는) 운동하는 친구들도 잘 없었어요. 그게 그 시절에 만들어진 학습 효과인 거죠. 너네는 절대로 나서지 마라. 좌든 우든. 정치 쪽과는 담을 쌓고 살아라."

부모님의 인생을 받아들이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습니다.

◀INT▶
"그 기록은 제 부모님의 삶을 정리하는 책이었다고 보고, 그것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정리한 책이라고 생각을 하면 될 것 같아요."

부모님의 기억 조각을 모아 탄생한 책은
출판 한 달 만에 10만 부가 넘게 팔리며
문단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소설보다는 '기록'에 가까운 이 책은,
대중에게 여순과 빨치산을 알리는 데에도
주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어머니의 인생을 소재로 한 소설에 이어,
지금도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그의 인생을 반추하는 수기를 쓰고 있는
정지아 작가.

'기록자'의 한 사람으로서,
세상에 나오지 못한 채
속절없이 사라지는 증언을 보고 있으면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뿐입니다.

◀INT▶
"요즘 사람들이 대중적으로 이런 지나간 역사에 관심이 없고, 넌덜머리를 내는 것 같아요. 빨치산 활동을 하셨던 분들 중에는 기록을 남기시는 분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어르신들이 그런 것을 써도 내주겠다는 출판사도 없고요. 어떤 날, 이런 것들이 역사적 사료로 가치가 있을 건데 이런 것은 조금 아깝죠."

MBC NEWS 조희원입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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