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명 :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자료시리즈 3 황해도 민요
음반번호 : KICP-006 ~ 008 (CD 3 매)
제작/기획사 : 국립문화재연구소
제작시기 : 1972
발매시기 : 1998
서도입창
초목이, 놀량사거리, 앞산타령, 뒷산타령, 경발림
노래
초목이 : 김학실, 김명운, 양소운, 김정숙
놀량사거리 : 김학실, 김명운, 양소운, 김용익, 지관용, 최경명, 김정숙, 박치선
앞산타령 : 김학실, 김명운, 양소운, 김용익, 지관용, 최경명, 김정숙, 박치선
뒷산타령 : 김학실, 김명운, 양소운, 김용익, 지관용, 최경명, 김정숙, 박치선
경발림 : 김학실, 김명운, 양소운, 김용익, 지관용, 최경명, 김정숙, 박치선
글 : 이보형(문화재전문위원)
황해도 민요는 그간 국토 분단으로 인해 전승 현장에 대한 조사가 불가능하였고, 따라서 이에 대한 연구도 많은 부분이 미흡한 상태로 남겨져 있었다. 그나마 서도입창이나 좌창과 몇몇 통속화된 민요들은 전문적인 소리꾼들이 배워 서울․경기지역에 정착, 현재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그 전승의 길이 열려 있지만, 기타 서도지역의 민간 생활에서 불렸던 민요는 거의 들을 수가 없었다.
그간 서도민요를 수록한 음반은 한국브리태니커에서 펴낸 팔도소리 가운데 황해도와 평안도 편이 있고, LG에서 콜럼비아 유성기판을 복각시킨 최순경의 서도소리 가운데 배따라기 外 서너 곡이 있다. 또 서울음반에서 빅터 유성기 음반을 복각시킨 것 중에서 표연월․신해중월․이영산홍 등이 부른 개성난봉가 외 몇 곡이 있고, 김종조․김주호․백운선 등이 부른 음반이 복각되어 있다. 근래에 와서는 중요무형문화재 서도소리로 지정됐던 오복녀, 김정연의 소리가 일부 녹음자료로 남아 있고, 이 외에도 이은관 등의 소리가 일부 음반으로 전한다. 그런데 이런 음반들에 남아있는 소리는 대개가 좌창이나 전문적인 소리꾼들이 부르는 통속화된 민요가 많고, 생활 현장에서 불려진 소리들은 거의 없었다.
이번에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출반되는 황해도 민요는 여러 가지 점에서 매우 가치가 있는 것으로 서도민요에 해당되는 황해도 민요에 대한 음반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서도민요에 관심있는 많은 이들에게 또 하나의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것은 양소운․윤옥․김선봉․장용수․김실자․김정순 등 녹음자들이 모두 현재 봉산탈춤․은율탈춤․강령탈춤 등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이면서도 전문적인 소리꾼의 실력을 갖춘 서도 지역 출신이라는 점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이 부른 소리를 이은관, 오복녀, 김정연 등의 소리와 비교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가치는 서도입창과 좌창 외에 감내기, 용두레소리, 논김매기, 연평도노래, 지정닦는 소리 등 황해도 지역의 노동요가 많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음반의 녹음은 양소운, 김실자, 김정순, 김선봉, 장용수, 윤옥 등 강령탈춤, 봉산탈춤, 은율탈춤의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들과 이들의 전수자, 이수자들이 한 것이다. 녹음은 1972년 4월 16일 국립극장에서 황해도민속예술보존협회의 무형문화재조사연구 종합발표공연으로 이루어진 황해도민요로, 선소리와 좌창은 다소 음질이 떨어지지만 나머지 곡들은 대체로 양호하다.
이근성(李根成, 1895~1978), 김용익(金龍益, 1902~1979), 최경명(崔景明, 1912~1985), 김선봉(金先峰, 1922~1997), 양소운(梁蘇云, 1924~ )과 윤옥(尹玉, 1925~ )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7호 봉산탈춤 전(前)․현(現)보유자이고, 김지옥(金知玉, 1922~1984), 지관용(池觀龍, 1909~1986), 박동신(朴東信, 1909~1991), 김실자(金實子, 1928~ ), 김정순(金正順,1932~ )은 중요무형문화재 제34호 강령탈춤 전(前)․현(現)보유자이며, 김정숙(金貞淑, 1935~ )은 보유자 후보이다. 그리고 장용수(莊龍秀, 1903~1997)는 중요무형문화재 제61호 은율탈춤 전(前)보유자이다. 지관용은 해주 삼현을 치던 사람으로 황해도 연백 출신으로 본래는 소리를 하였으나, 해주의 삼현잽이로 피리, 해금, 장구, 소리에 능했던 김형선(金淳善)에게서 배웠고 또 박동신에게서 피리를 배웠다. 이외에 박치선, 오연화, 김명운, 김학실, 양금주 등 서도소리와 탈춤 전수자, 이수자들이 참가하였다.
[황해도 민요 해설]
서도입창은 서도지방에서 불려지던 선소리이다. 선소리라 함은 장고를 든 한사람[모갑(某甲)이]이 소리를 메기면 여러 소고(小鼓)잽이들이 선채로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면서 소리를 받아 부른다고하여 선소리 또는 입창(立唱)이라고 한다. 방안에 앉아서 부르는 소리를 좌창(座唱)이라 부르는데 반해 마당에 서서 부르는 소리를 선소리 또는 입창이라 하며, 가사 내용이 산천경개(山川景槪)를 노래한다 하여 산타령이라고도 한다. 서도입창은 평안도, 황해도 등 서도지역에서 전승되던 것이다.
흔히 서도지방의 선소리는 조선시대 평양의 소리꾼 허덕선(許德善)이 서울의 선소리꾼인 의택이와 종대에게 배워서 서도 선소리 산타령을 만들었고, 이것이 김방울에게 전해져 오늘에 이른 것이라 한다. 하지만 20세기 초에는 서도입창이 경기입창보다 많이 사랑받았는데, 이는 유성기 음반에 서도입창이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서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서도입창의 유행은 여러 가지 면에서 경기입창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되므로, 오늘날 양자의 선후문제를 음악적으로 따지는 건 쉽지않다.
서도의 산타령은 놀량, 앞산타령, 뒷산타령, 경발림으로 구성되어 있고, 경기 산타령에서 여흥으로 불리는 민요들은 부르지 않는다. 서도의 놀량은 예전의 판염불에서 “진국명산이”로 시작하는 불가어(佛家語) 부분이 생략되고, 또 경기입창 놀량의 시작부분인 “산천초목이” 부분을 생략하고 “녹양 뻗은 길로”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특별히 “산천초목이” 대목을 부를 때에는 이를 ‘초목이’라 하여 따로 다루고 있다. 모갑이가 “에라뒤여” 하고 입타령으로 내드름을 내고 경기 산타령식으로 소리꾼들이 받는다. 처음에는 장단의 박이 불규칙하게 불리다가 “어린 양자”부터 도드리 장단으로 일관하다가 끝에 “삼월이라” 부터는 자진타령으로 빨라지며 흥을 돋군다. 경기 놀량에 비해 템포가 빠르고, 리듬이 비교적 규칙적이기 때문에 경쾌한 맛이 있다.
두 번째 곡은 서도의 앞산타령으로, 일명 사거리라 부른다. 가사의 내용은 경기 앞산타령과 비슷하지만 장단이 빠르고, 또 서도지방 특유의 발성법을 쓰는 것이 다를 뿐 대동소이하다. 씩씩하고 경쾌한 소리이다. 뒷산타령은 서도 선소리 산타령의 세 번째 곡이다. 일명 중거리라 부른다. 서도의 뒷산타령은 경기 뒷산타령에 비해 템포도 두배나 빠르고, 장단도 자진타령으로 박아서 치며, 가사도 북한지역 경치를 노래하는 경우가 많고, 처음부터 대뜸 빠르게 불러나가는 것이 다르다. 앞산타령의 흥을 더욱 고조시키는 흥겨운 소리이다.
서도 선소리 산타령의 제일 마지막 곡인 경발림은 이 소리가 끝날 때쯤 창자가 발림을 추며 경치를 노래한 데서 유래한 명칭이고, 일명 ‘경사거리’라고도 한다. 경기 자진산타령에 해당하는 소리로, 사설중에서 관서지방 경치를 노래하는 점이 경기 자진타령과 다르다. 선소리의 판을 막아 몰아가는 소리로 한층 빠르고 경쾌하다.
경기 산타령에서는 뒤에 민요를 이어 부르는 경우가 많으나 서도 선소리에서는 경발림으로 끝낸다. 서도의 산타령은 경기의 산타령에 비해 속도가 빨라서 경쾌하며, 리듬도 경기 산타령에 비해 비교적 규칙적이고, 억양은 경기보다 억세고 서도 특유의 발성법을 사용한다. 경기와 서도산타령 모두 특정한 장단이 없이 선율의 리듬에 맞추어 반주를 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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