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이 더 많은 가을 청계천 20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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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淸溪川)

청계천은 지방하천으로,한강 수계에 속하며 중랑천의 지류이다.
일제강점기에 전면 복개되어 타 용도로 전용되는등 사실상 하천의 기능을 상실.
현재는 서울 이곳저곳에서 취수한 물을 중류의 청계광장에서 하루 4만 세제곱미터씩 인공적으로 방류하는 형태로 하천을 유지하고있다

조선시대 자연하천이었던 청계천은 조선 태종때부터 한양을 서울로 한 조선시대 내내 개거,준설등 치수사업의 대상이었다. 개천(開川)이라는 말은 '내를 파내다'라는 의미로 자연상태의 하천을 정비하는 토목공사의 이름이었는데, 이때의 개천 공사를 계기로 지금의 청계천을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다.
세종은 청계천의 지천의 정비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종로의 시전행랑(市廛行廊) 뒤편에 도랑을 파서 물길을 하천 하류에 바로 연결시켰는데, 지천의 물이 한꺼번에 개천 상류로 몰려들어 넘쳐나는것을 방지함으로써 도심의 홍수를 예방할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때 도시의 근대화에 따라 사라졌고, 개천의 물 흐름에 관심이 있었던 영조는 1773년 백운동천과 삼청동천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오간수문 근처까지 석축을 쌓았다. 이를 통해 구불구불한 하천이던 개천을 영조가 호안공사를 통해 직선화시켰음을 알 수 있다.

현대에 들어 1950년대 중반의 청계천은 한국 전쟁 직후의 서울시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슬럼지역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진된 것이 청계천 복개사업이었다.
1990년대에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노후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다. 이에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 복원을 공약하였고, 32대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2003년 7월 1일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가 시작되었고,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에 이르는 약 5.84km의 구간을 복원하는 공사는 3,867억 3,900만원을 들여 2005년 9월 30일에 완료되었다.

1995년부터 2010년까지 서울 도심에서 시행된 주요 20개 사업 가운데 '청계천 복원'이 만족도와 기여도 평가에서 5점 만점에 4.02점을 받아 1위에 선정되었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청계천 복원의 최대 성과로 생태환경의 회복을 꼽았으며 서울의 랜드마크를 묻는 질문에 청계천은 4위에 올랐다.또한 서울시와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청계천 주변지역 상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청계천 복원 사업의 진행 상황에 대해 `잘 진행됐다'는 평가가 66.8%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복원 사업의 향후 전망에 대해서도 `잘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77.6%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긍정평가
청계천과 그 주변 환경의 개선을 든다. 복원된 청계천이 시민들의 도심속 휴식공간이 되었으며 여가공간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우선 대기질 개선과 소음 감소가 확인되었으며, 열섬현상이 약화되었고, 음이온 발생량이 일반 도심지역의 발생량보다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한 청계천에 서식하는 생물종이 복원 전(98종)의 6.4배에 이르는 626종(식물 308종, 어류 25종, 조류 36종)으로 증가하였는데, 특산종인 참갈겨니·참종개·얼룩동사리 등과 깝작도요·알락오리·도롱뇽 등의 서식이 확인되었다.서울시정개발연구원은 복원의 경제효과가 최대 23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였고 복원 이후 주변 개발이 이루어질 경우 31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했다

부정평가
경제학자 우석훈은 자신의 저서에서 복원된 청계천을 "인공호수"라며 호되게 비판하였다.또한 기존에 흐르는 물의 양이 적어 취수장에서 전기를 이용해 한강물과 지하수를 끌어다 청계광장에서 흘려보내는데, 이때 물을 끌어올리는 데 쓰이는 전기요금이 한해 평균 8억 가량으로 상당하며 녹조 또한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2007년부터 2009년까지 8,000만원을 녹조제거를 위해 쓰였다. 이 외에도 인건비, 청소·경비용역비, 토목·조경시설 유지관리비 등에 2011년에만 80억여원이 소모되었다. 이는 2005년 37억에서 2010년 77억원에 이은 것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2011년 6월 조선일보의 설문 조사에서 최악의 건축물 3위에 뽑혔는데, "청계천은 한국을 상징하는 공공 건축물인데 건축가도 없이 단기간에 불도저로 밀어붙이듯 만들었다"는 이유에서였다. 또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자신의 임기 안에 청계천 복원 사업을 무리하게 끝마치기 위하여 유적 복원을 날림으로 진행했다는 평가도 있는데, 실제로 석축·효령교·하랑교·오간수문은 복원되지 않고 중랑구 하수종말처리장에 보관되고 있다. 또한 1773년에 쌓은 현 무교동 사거리에서 시작되며 청계천을 따라 17.1m의 폭을 두고 양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청계천 석축은 발굴 후 복원되지 못했다.
(위키백과 발췌)
인터넷기사
인공하천인 서울 청계천에서 수중 포식자인 메기와 수변 포식자인 청둥오리, 황조롱이가 발견되는 등 청계천 생태환경이 자연하천처럼 건강한 먹이사슬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는 지난 3월부터 7월까지 한국환경복원기술학회에 의뢰, 청계천 전 구간의 생태계를 조사한 결과 동식물 463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11일 밝혔다.
시에 따르면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황조롱이가 발견됐고 맑고 깨끗한 물에서만 산다는 은어도 관찰됐다.
은어는 청계천 중간 지점인 황학교 인근에서 1개체가 발견돼 한강 본류에 많은 개체가 서식, 중랑천을 따라 거슬러 올라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어류 전문가 이학영 박사는 설명했다.
특히 청계천에는 수변 포식자인 황조롱이·청둥오리·메기들이 은어·모래무지, 피라미, 붕어 등 각종 민물어종의 생태공간에 찾아들어 원만한 먹이 사슬을 유지하고 있다.
어류는 이들 외에도 참갈겨니, 돌고기 등이 유속이 느린 곳이나 수풀 등지에서 쉽게 관찰됐다. 또 청계천 전 구간에서 각종 치어가 다수 발견됐다.
이 박사는 “이번 조사에서 관찰된 치어는 청계천에서 산란해 성공적으로 부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단 방류한 것으로 보이는 비단잉어, 금붕어 등 관상용 외래어종과 위해 종인 황소개구리도 발견돼 제거작업을 해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류는 2년 연속 발견된 황조롱이를 포함해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등 30종이다.
식물도 물억새, 각시붓꽃, 갓, 황매화, 콩제비꽃, 노랑꽃창포 등 291종이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다. 육상 곤충은 노린재목, 딱정벌레목 등 61종이 청계천 전역에 살고 있다.
서울시 송경섭 물관리국장은 “그동안 물고기 서식과 산란에 도움을 주기 위해 서식처를 만들고 모래를 청계천 곳곳에 살포했다”며 “청계천내 철새보호구역 지정과 함께 어류 피난처를 7곳 조성했다”고 말했다.
(어류전문가 이학영박사, 2010년 파이낸셜뉴스 김두일기자 발췌)
Cheonggyecheon Stream
Cheonggyecheon Stream is a local river, belongs to the Han River system, and is a tributary of Jungnangcheon Stream. Virtually losing the function of the river, such as being fully covered in Japanese colonial era and diverted for other purposes.
Currently, the river is maintained in the form of artificially discharging 40,000 cubic meters of water taken from various places in Seoul to Cheonggye Plaza in the middle stream
Cheonggyecheon Stream, which used to be a natural river during the Joseon Dynasty, has been the subject of the construction and dredging project throughout the Joseon Dynasty, with Hanyang as Seoul. 開 Stream was the name of a civil engineering project to repair rivers in their natural state, meaning "digging me out." With the construction of Gaecheon Stream at this time, it became the name referring to the current Cheonggyecheon Stream.
Sejong put a lot of effort into the maintenance of the Jicheon Stream in Cheonggye Stream and dug a ditch behind the city 廛 廊 in Jongno to connect the waterway directly to the lower stream. By preventing the water from Jicheon Stream from flooding upstream of Gaecheon at once, it was able to prevent flooding in the city center.
(Wikiback and Excer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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