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한국사전 – 춤을 사랑했던 왕세자, 효명 / KBS 2008.6.7.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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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대리청정 시작한 효명세자
효명세자. 그는 조선 제23대 왕 순조의 세자이다.
4살 되던 해 왕세자로 책봉된 그는 1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 순조를 대신하여 대리청정을 시작했다.
한국의 루이 14세로 비교되기도 하는 효명세자는 여느 국왕들과는 달리 예술을 사랑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예술을 현실 개혁의 수단으로 삼고자 한 왕이었다. 18세기 초는 김조순을 위시한 안동 김씨 계열을 비롯한 외척세력들이 국정을 장악하고 나라의 살림을 쥐락펴락하던 시기였다. 외척 세력들에 권력과 부가 집중됐고 삼정의 문란 등 각종 사회 병폐까지 만연했다.
설상가상으로 극심한 흉년이 찾아오자 급기야 순조 11년, 평안도 지역에서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기에 이른다. 이런 상황 앞에 무력한 순조는 총명한 아들 효명에게 실질적 국정 운영권을 주기로 결심한다.

날카로운 예악정치의 칼을 빼들다
옥새를 건네받은 19살의 어린 세자. 암담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카드는 예악정치였다. 효명세자는 수 차례의 성대한 연회를 통해 국정주관자로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국왕의 권위를 높이고자 했다. 국왕권의 강화는 곧 왕권 견제세력, 외척 세력의 약화를 의미했다. 화려한 잔치 뒤에는 그들을 향한 날카로운 칼날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박규수와의 운명적 만남
효명세자는 어느 날 자하동 부근을 지나치다가 박규수와 만나게 된다. 그는 열하일기의 저자인 박지원의 손자로 할아버지 박지원의 북학사상을 받아들인 개혁 실학자였다.
대리청정을 시작한 후 효명세자는 박규수와 함께 새로운 조선을 꿈꾸어갔다. 효명세자는 예술을 사랑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예술을 현실 개혁의 수단으로 삼고자 했다.

조선의 문화를 꽃피우다
조선조 말까지 전해지는 궁중무용 "정재" 총 53수 중 무려 26수가 효명세자의 손을 거쳤다. 조선 정재 사상 최초의
독무 ‘춘앵전’, 당나라 시인 이백이 고구려 춤을 보고 읊은 시를 형상화한 ‘고구려무’, 신라 화랑들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은 ‘사선무’ 등 당시 궁중무용으로선 파격적인 정재를 완성했다.

3년 3개월의 짧은 대리청정, 그리고 급작스런 죽음
대리청정 3년이 되던 1830년, 효명세자는 창덕궁 희정당에서 22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아버지 순조를 대신하여 국정쇄신에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효명. 어린 나이에 놀랍게도 빠른 속도로 외척세력을 견제해나가며 새롭게 나라를 꾸려갔지만 갑작스러운 병을 얻어 병을 얻은 지 십여 일 만에 끝내 목숨을 다하고 만다.

한국사전 44회– 춤을 사랑했던 왕세자 효명 (2008.6.7.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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