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사에선 단순하고 소박함을 갖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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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인생사에선 단순하고 소박함을 갖기가 쉽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 복잡해지고 난해해지고 특히 자신의 내면을 감추고 겉치레의 삶을 살아가는 경우엔 더 그렇다. 한국처럼 급격하게 변하는 것을 보면 경악을 금할 수 없는게 사실이다. 가끔 서울을 나가면 내가 알던 망원동, 마포, 광화문이 아니다. 인천도 그렇다. 이처럼 시간이 지나면 제도도 문화도 환경도 변하는건 어쩔수 없다.

신자의 삶에서 단순함이나 소박함은 나름 소중하다.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한다는 대 명제에서도 그렇고 사실상 진리는 단순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걸 설명하자면 미사여구가 붙고 역사적 신학적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복잡해 진다.

결국 본질적 측면에서 보면 단순한 통찰력만으로도 충분하단 생각이 든다. 역설적 이게도 이 단순함도 결코 단순하지 않으니 참 오묘한 것이긴 하다.
초대교회 사도시대만 해도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모였다. 그리고 주님을 찬양하며 예배로 변화되었고 그 그기쁨으로 전도하며 복음이 확장되었다. 급기야 이방인들까지 전파되면서 교회화 되었다.

그 중에 주님의 부활 사건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자니 물리적 영적 혼돈이 온 것이 사실이고 더 나아가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신성과 삼위일체 등등 성경을 기반으로 정리가 된게 교리이고 역사 과정에 따라 점점 정교화된게 신학이다.

그리고 중세시대에는 이 교리화의 추앙이 극에 달해 쓸데없는 논쟁을 위한 논쟁 예를 들면 점잖은 "보편논쟁"부터 "바늘에 천사가 얼마나 앉을 수 있냐?" 까지 .. 그래 오캄의 면도날로 불필요한 것들을 다 제거하려 했다.

이런 논쟁화 뿐만 아니라 주님께 헌신하기 위해서는 돈과 정성을 바쳐야 한다는 행위 구원에 까지 이르니 겉은 종교적 형태를 띠었지만 내심으로는 의무감과 의구심 그리고 공허감으로 종교적 형식만 남는 구약의 율법주의화의 재탕이 되고 말았다.

이에 종교개혁가들은 오직 성경과 믿음 그리고 은혜라는 3대 정신을 추구하며 카톨릭의 전행을 비판하며 신앙의 순수성을 주창했다. 우리가 아는 "오직 성경"은 성경외의 종교문서들이나 인간행위의 불완전성에 대한 비판으로 오직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의 역사로 믿어야 한다는 것이고 '오직 믿음'은 인간의 선행이나 종교행위 등에 대한 비판으로 "오직 은혜"는 하나님께로 부터 오는 것만이 인간을 자유케 하는 영적인 선물의 충만함을 밝힌 것이다.

어찌보면 이 3가지중 하나 만으로 모든 것이 완전 무결하지만 3개를 빗대어 중복한 것은 그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성경,믿음,은혜 라는 것을 응축하면 신앙의 단순함이다. 역사적 사실에 나타난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영생의 실재성을 은혜로 믿어지는 그 단순한 신앙 말이다. 후대에 기독교의 역사성을 논쟁화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이런 논쟁 자체가 예수님의 실체성에 대한 의문과 부정에 기인한 것이다.

진리는 단순한 것이다. 말이 길어지는 것은 명확하지 않은 것이다. 예를 들면 불교의 생노병사에서 시작된 것이 후대의 문무관의 고행까지 이어지는 설명을 위한 연속적 설명이 나론선 이해하기 힘들다. 신천지의 비유풀이를 위한 비유풀이식 논리적 전개는 논점을 흐리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차라리 우파니샤트의 범아일여의 신인 합입과 그 수행으로써 숨고르기의 불의 제사 .. 이 정도면 그래도 양호한 편이라 하겠다.

물론 성경도 성삼위 하나님의 완전하신 사역을 설명하려면 지금의 기독교서적 만큼 있을 정도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신자란 성경의 말씀을 읽고 마음에 새기며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믿음의 분량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의 자세, 신앙의 단순함이 중요하겠다. 물론 신앙의 성숙도에 따라 성령의 인도하심이나 타인의 권면 혹은 자발적 신앙 행위로 승화되는 것이어야 한다.

.. 음..인천 송도역 남인천 농협앞, 베짜마 카페에서 이종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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