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무장 흑치상지, 그는 배신자인가? (KBS_2009.06.15.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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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망산에 잠든 백제 무장 흑치상지.
조국을 등지고 당나라로 건너가 대륙을 누비며 무패의 신화를 만들어냈지만 결국 억울한 죽임을 당하는데...
1300년 전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흑치상지,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인가?

* 낯설고 특이한 성(姓), 흑치(黑齒)
흑치상지라는 이름은 이민족의 이름처럼 낯설게 다가온다. ‘검은 이’라는 의미의 성, 흑치. 흑치는 과연 무엇일까? 흑치상지의 묘지석은 흑치에 관한 정보를 알려준다. 흑치씨는 원래 백제의 왕족성인 부여씨와 같은 성씨인데, 흑치지역에 봉해지면서 흑치를 성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흑치지역은 어디일까?

* 백제부흥운동이 바꾼 흑치상지의 운명
대대로 달솔이라는 높은 관등을 역임한 백제의 지체 있는 가문에서 흑치상지는 전형적인 백제 귀족 젊은이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의 운명은 조국 백제와 함께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의자왕이 항복을 하자 나당연합군에게 모욕적인 일을 당하고, 백제인들의 고통을 보면서 그는 임존성으로 가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으로 삼았다. 그리고 곧 200여성을 회복하는 등의 혁혁한 성과를 거둠과 동시에 망국의 설움을 안은 백제인들에게 희망이 되었다.

* 흑치상지는 왜 부여융을 택했나?
흑치상지와 더불어 부흥운동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의자왕의 4촌 복신과 승려 도침이다. 부흥운동을 핵심적으로 이끌던 이들은 663년 권력쟁탈로 심각한 내분을 일으킨다. 이 무렵 흑치상지는 당에서 파견된 의자왕의 맏아들 부여융의 편에 서게 된다. 결국 당에 항복하며 임존성을 함락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하기까지 한다. 그는 정말 조국을 배신했던 것일까?

* 한 시대를 풍미한 무패의 장수 흑치상지
당으로 건너간 흑치상지의 궤적은 한 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668년경 무렵이 되면 당나라의 무장으로서 맹활약하는 흑치상지의 이름을 역사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흑치상지는 고선지와 더불어 당나라의 7대 장수로 손꼽히며, 당에 입당한 이 후 30년 동안 단 한차례의 전투에서 진적이 없다. 또한 흑치상지는 티베트와의 최전방 청해성 일대의 밭을 개간해 군사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데 힘쓰면서도 봉화대를 쌓아 방어에 만전을 기했다.

* 비참한 최후에서 북망산에 묻히기까지
북망산은 중국 제일의 명당으로 황제나 고관대작이 아니면 묻히기가 어려운 곳이다. 그런데 백제인이었던 흑치상지가 어떻게 이곳에 묻힐 수 있었던 것일까? 흑치상지는 당나라의 변경에서 당나라를 괴롭혔던 토번과 돌궐을 막아내며 당의 군부서열 12위안에 드는 우무위위대장군까지 올랐다. 이런 그를 경계한 측천무후에 의해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무고를 당해 죽음을 맞는다. 후에 누명을 쓰고 죽은 아버지의 억울함을 벗기고자 한 아들 흑치준의 신원의 노력으로 흑치상지는 북망산으로 이장된다.

#흑치상지 #무패장수 #백제부흥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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