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순례길 코스
둘레길은 이제 어느 지역에서나 흔한 풍경이 되었다. 제주도에서 성공한 '길' 사업이 인기를 끌며, 전국의 지자체마다 너도나도 만들어서 흔하디 흔하게 되어버렸다. 이번 여름에는 제주에서 한 달 살기를 했고, 그 한 달 내내 걷고 또 걸었다. 중간중간 아들이 놀러 오기도 했고, 처가 가족들도 잠시 다녀갔다. 그런 여름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최근 머릿속이 복잡한 일들이 많았다. 얽히고 설킨 문제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그런데 걷다 보니, 머릿속이 정리되고 있다는 걸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그전에는 침대 속에서, 책상 앞에서, 혹은 운전하면서 계속해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곤 했는데, 마음에 얽힌 것들은 좋은 것을 보며, 걸으며 풀어야 한다는 걸 제주에서 알게 되었다. 머리로만은 절대 풀리지 않더라.
제주에서의 한 달 동안, 잠시 나에게 놀러온 사람들을 보며 나의 템포가 그들보다 한참 느리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마치 거울 속의 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나도 저렇게 살았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그리도 바빴던 걸까? 하나라도 더 보고, 더 먹으려는 모습이, 나도 한때 저랬나 싶었다.
울산으로 돌아와서 제주도 같은 곳을 찾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수소문해 보니 비슷하면서도 더 좋은 곳을 발견했다. 바로 울산 솔마루길이다. 이름의 유래는 찾아보지 않아도 소나무가 많아서 그렇게 붙었음을 걷다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5월에 시작해서 지금이 10월이니, 이 길을 100회 정도는 걸었던 것 같다. 한여름 내내 거의 매일 점심을 먹고 나면 걸었다. 시간이 없을 때는 뛰어서 1시간이라도 걸었고, 여유가 있을 때는 7시간 동안도 걸었다. 중간중간 화장실도 있고, 음용 가능한 물도 제공되니 김밥 한 줄과 물통만 있으면 아침부터 걸어 저녁에 이르는 일도 흔했다
제주도는 산의 느낌과 울창한 숲, 잘 꾸며진 공간이 돋보이는 반면, 울산 솔마루길은 내 마음 때문인지 순례길처럼 느껴진다. 울산 도심을 힐끗힐끗 보며 그 가장자리로 걷는 이 코스는 자연과 도심의 경계에서 편안해지려는 나의 삶과 치열한 삶을 저울질하는 공간이 되었다.
포행과 묵상, 이 코스를 다닐 때는 이어폰으로 현자의 이야기나 책 내용을 들으며 걷는다. 귀는 듣고 눈은 내 앞을 지나는 사람들을 본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스쳐 지나갈 때마다 상상을 하게 된다. '어디가 아프신가?' '많이 마르셨네.' '어제도 뵀던 분인데, 저 나이에도 부부 손을 꼭 잡고 다니시네.' '뛰는데... 여성분이신데도 근육이 정말 탄탄하시네.' '딸과 함께 오셨구나.' '댕댕이는 더워서 힘들어하네.' '맨발로 걷는 사람은 왜 이렇게 많지?' 이런저런 생각에서 상상의 날개가 펼쳐진다.
집에서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면 이런 생각들을 할 수 있었을까? 아마 없었을 것이다. 5월부터 시작한 이 순례의 길이 이제 며칠만 있으면 11월이 된다. 날씨가 추워질 것을 생각하니 살짝 걱정이 된다. 그래도 겨울에도 계속 걷고 싶어서 오늘 경량 패딩 하나를 질렀다.
걷다 보면 무거웠던 마음은 가벼워지고, 가벼워진 발걸음은 더 멀리 이어진다. 솔마루길은 나에게 그런 힘을 주는 길이다. 울산의 순례길을 걸으며 자연과 도시의 경계를 오가는 그 순간순간들이, 나를 조금 더 단단하고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가을에 덮인 낙엽의 풍경을 보면서도 떠오른 것은 걷는 것에 대한 나의 생각이었다. 잘 정돈된 둘레길을 걸어 올라가는 모습은 마치 내 삶의 여러 순간들을 떠올리게 했다. 힘들게 오르막을 오를 때도 있었고, 때로는 눈 속에 발이 빠져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걸음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있는 곳까지 왔다.
이 길에서, 나는 걷기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겼다. 수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은 마치 내게 '걸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겨울이 다가오는 이 길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에 몸이 얼어붙을 것 같지만, 그 바람 속에서도 묵묵히 걷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겨울 동안 솔마루길을 걸을 용기를 얻었다.
걷다 보면 자연 속에서 나를 찾게 되고, 도심의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마다 조금씩 더 자유로워진다. 울산 솔마루길의 겨울 산행을 보며 느꼈던 것처럼, 울산의 순례길도 나에게는 그런 자유로움을 선사하는 공간이다.
Ulsan Pilgrimage Course
Trails have become a common sight in almost every region. The success of the 'trail' project in Jeju has led municipalities across the country to jump on the bandwagon, making trails quite ubiquitous. This summer, I spent a month living in Jeju, walking day after day. My son came to visit occasionally, and my in-laws also dropped by for a short while. The memories of that summer come back vividly.
Recently, my mind has been filled with tangled, complicated thoughts. Problems seemed to be piling up endlessly. But as I walked, I realized that my mind was slowly becoming clearer. Previously, whether lying in bed, sitting at my desk, or driving, my thoughts would endlessly chase one another. It was in Jeju that I learned that the knots in my heart can only be untangled by seeing something beautiful and walking—never by thinking alone.
During that month in Jeju, watching the people who came to visit me, I realized that my tempo was far slower than theirs. They seemed like reflections of my past self. I found myself wondering, "Did I used to live like that too?" What was I so busy for? Trying to see more, eat more—was that me as well?
Back in Ulsan, I started looking for a place similar to Jeju. After some searching, I found somewhere even better—Ulsan's Solmaru Trail. Even without knowing the origin of the name, it's easy to guess why it's called Solmaru, as the abundance of pine trees becomes apparent as you walk. I started in May, and now it's October, so I must have walked this trail about a hundred times. Nearly every day in the height of summer, I'd take a walk after lunch. On days when I was short on time, I would jog for at least an hour; when I had time to spare, I could walk for up to seven hours. There are restrooms along the way, and potable water is available, so with just a roll of kimbap and a water bottle, it wasn't unusual to walk from morning till evening.
Jeju offers the sensation of mountains, lush forests, and well-maintained spaces, while Ulsan's Solmaru Trail feels more like a pilgrimage path—perhaps because of my state of mind. Walking along the edge of Ulsan, glimpsing the city while surrounded by nature, I found this course to be a space where I could weigh my serene life against the pressures of urban living.
As I walk, I find myself in nature, and each time I cross the boundary of the city, I feel a bit freer. Just as I felt during the winter hike on Solmaru Trail, Ulsan's pilgrimage trail is also a space that grants me that sense of free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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