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치유의 숲에서 힐링하고 인현왕후 길을 걷노라면 용추폭포와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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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치유의 숲에서 힐링하고 인현왕후 길을 걷노라면 용추폭포와 만날 수 있습니다.
#김천치유의숲 #인현왕후길 #용추폭포 #힐링센터 #국유림

동행 _화요길과여행
일시:2024.8.27

코스 :국립김천치유의 숲 -자작나무숲 - 힐링센터 -인현왕후길 - 용추폭포-출렁다리


수도리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청량한 바람이 나를 반기니 기분이 상쾌하구나
인현왕후가 반갑게 맞이한다
코스모스도 우리를 반기는 반긴다

국립김천치유의 숲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사과 밭에 사과가 주렁주렁 달렸는데
이사과는 벌써부터 인기사과다

오늘 동행은 화요길과 여행이다
아름다운 수도산에 위치한 국립김천 치유의 숲길은 4가지 숲길이 있다
관찰의 숲길
성장의 숲길
자아의 숲길
아름다운 모티길
그 중에 우리는 자아의 숲길 4.8km 거리 100분 정도 걸리는 숲길을 돌아 본다

둥근 지붕을 가진 이집은 숲속의 집이라고 한다

이곳은 물소리 쉼터라고 하고
팔각정과 그네 그리고 바로 옆에는 우렁찬 소리를 내는 계곡이 흐른다
징검다리에서 기념사진 한컷
마사토가 곱게 깔린 길에서 바로 맨발걷기를 한다
시와 음악의 길에 들어선다

詩.달(月)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萬物)을
다 비추니
밤 중에 광명(光明)이
너 만한 이
또 있느냐
보고도 말 아니 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詩. 소나무(松)

더우면 꽃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느냐
구천(九泉)에
뿌리 곧은 줄을
그로 하여 아노라

詩.물(水)

구름
빛이 좋다 하나 검기를 자로 한다
바람
소리 맑다 하나 그칠 적이 하노매라
좋고도
그칠 뉘 없기는 물 뿐이가 하노라


詩.서사

내 벗이 몇이나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東山)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고야

다섯 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詩.바위 (石)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쉬이 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르는 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 않을 손
바위 뿐인가 하노라

수백산맥의 명산 중 수도산은 대가천과 무흘구곡등 주변 계곡이 아름답고 청암사와 수도암으로 대표되는 이름난 고찰을 품은 곳이다
국립김천 치유의 숲은 향기 , 경관, 음이온 등 산림의 치유적 요소를 활용한 산림으로 활용되고 있는 곳이다
시와 음악의 길
팔각정 전망대
한반도 습지
전나무 쉼터

산림치유활동공간으로 자작나무숲, 잣나무데크로드, 힐링센터, 숲속의 집 등이 마련되어 있다
이곳의 전체면적은 52ha 라고 한다

울창한 치유의 숲길을 걸어 힐링센터에 도착하였다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오니 시원하다
점심식사를 여기서 하고 간다

자작나무 숲을 보기 위해 다시 숲으로 간다
숲속 명상을 하는 이길은 성장의 숲길이다
숲속 교실을 지나 습지원이다
이곳은 세심지 마음을 씻는 곳이란다
울창한자작나무 숲에 왔다
하얀껍질의 자작나무 숲
자작나무는 나무를 태울때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고 해서 자작나무라고 부른다

이곳은 대한민국 국유림 수도산 치유의 숲이다
치유의 숲을 돌고 나오니 힐링이 된다


지금 부터는 인현왕후 길로 간다
구름이 몰려 왔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숲에 안개와 함께 소낙비가 내린다
인현왕후길은 잘 닦여 져 있다

인현왕후는
조선의 제19대 왕 숙종의 두번째 왕비이다
숙종의 첫번째 왕후 인경왕후가 19세 나이에 갑자기 승하하면서 그 뒤를 이어 숙종의 계비로 책봉되었다

숙종은 현모 인현왕후보다 경국지색의 나인 장옥정에게 마음을 빼앗겨 관심과 애정을 쏟으며 총애 하였다.
1688년 장옥정이 왕자를 출산하게 되자 이듬해 1월 왕자 윤(昀)을 원자로 책봉하고 세자의 어머니 장옥정을 희빈(禧嬪)으로 책봉했다

이후 1689년 숙종15년에 폐위 되었다
(폐출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탄일문안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대왕대비이자 숙종의 증조할머니인 장렬왕후의 국상기간이라 " 중전 인현왕후의 탄일문안을 생략하라"고 어명을 내렸는데도, 인현왕후가 문안을 받은 사건으로 당시 숙종에게 "진실로 나의 죄이다.어찌 할 것인가? 폐출시키려거든 폐출시키라" 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
("국상"이라는 명분을 들었지만 , 애시당초 숙종이 인현왕후를 정치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노론, 소론은 물론 남인들조차 대다수 반대했지만 숙종혼자 독단적으로 결정하여 결국 인현왕후는 폐비가 되어 안국동에 있는 사가로 내쳐진다. )

인현왕후는 명성대비의 3년상까지 숙종과 함께 지내온 왕후임에도 불구하고 기사환국으로 인해 숙청된 서인들과 함께 폐위되어 궁에서 쫓겨나게 된 비련의 왕후가 되었다. 숙종은 인현왕후의 남겨진 물건들을 모두 불태워 버리도록 명하고, 또한 인현왕후를 구하려는 자 모두를 역적으로 다스리겠다고 선언하였다.

5년 만에 다시 왕비로 복위되었다.
1694년 인현왕후를 서궁으로 이전해도 좋다는 명을 내리고, 이후 서궁으로 입거한 인현왕후를 왕비로 복위시켰다. 인현왕후는 복위후 청암사에 '큰스님 기도의 영험으로 복권되었다'라는 서찰과 함께 수도산일대를 보호림으로 지정하고 전답을 하사하였다고 전해진다

복위된 이후로도 아이는 낳지 못했으며 희빈 장씨의 아들인 왕세자 경종이 인현왕후의 아래로 입적된다.
인현왕후전에는 인현왕후는 원수의 자식인 왕세자를 친자식처럼 귀여워했으며, 왕세자도 적모인 인현왕후를 매우 따랐다고 한다.

생전에 복위한 유일한 왕비로 정적인 희빈 장씨와 더불어 드라마틱한 생애를 보냈다

인현왕후는
1701년 숙종27년 8월 14일 새벽2시경 오랜동안 지병이 있었고 그로 인해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다가 결국 승하하였다고 한다

인현왕후의 무덤은 고양시 서오릉에 있다

숙종은 인현왕후 곁에 묻히길 희망하여 명릉을 조성하였으며 실제로 승하한 후 그 곁에 묻혔다.

(산수국은 이제야 필 준비를 한다
가을 단풍철에 단풍이 물든길은 어떤 모습일까)

인현왕후 길은 곳곳에 안내판이 잘 설치되어 있다

수도리 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왜 이렇게 좁은 거지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길이다
인현왕후길은 넓은데 비해 이곳이 좁은 것은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는 다는 뜻인데
하얀 나비 한마리가 날아 다닌다

다리 아래로 계곡물이 흐른다
용추폭포로 올라가는 길이다

용추폭포 가까이 오니 데크길이 나타나고 폭포소리가 들린다


무흘구곡 아홉번째 용추폭포이다 폭포가 웅장하고 우렁차게 쏟아진다


청암사는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가 서인으로 강등되었을때 3년간 머물려 복위를 기우너한 사찰로 청암사에 은거하는 동안 왕래하던 길을 옛 문헌을 찾아 복원한 옛길이 인현왕후길이라고 한다.
길이 약 9km 고도 500m~800m사이의 가파르지 않은 산길이 끝없이 이어져 있어 자연스럽고 품격있는 숲길을 경함할 수 있다

주말산행과 평일산행
아름다운 산과 산사, 둘레길과 마을길 계곡과 바닷길등 자연과 도시를 다니며 역사가 있는 스토리를 담고 아름다움을 담고 추억을 남기기 위해 영상작업을 합니다
영상의 출연자는 주인공이 되고 , 기록을 되고 , 다른사람과 나눌 수 있는 만남의 이야기가 되기도 합니다.
시간은 변하고 차방넷에서 있었던 많은 이야기가 고스란히 영상과 사진에 남게 됩니다.
자연과 더불어 산에 오르고 , 계곡을 담고 , 바람을 담고 , 파도를 담아 두었습니다
언제나 다시 열면 그대로 전해주는 스토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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