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video2dn
  • Сохранить видео с ютуба
  • Категории
    • Музыка
    • Кино и Анимация
    • Автомобили
    • Животные
    • Спорт
    • Путешествия
    • Игры
    • Люди и Блоги
    • Юмор
    • Развлечения
    • Новости и Политика
    • Howto и Стиль
    • Diy своими руками
    • Образование
    • Наука и Технологии
    • Некоммерческие Организации
  • О сайте

Скачать или смотреть 자금성은 대한민국이 건설 奉天門봉천문, 文淵閣문연각

  • 너와단둘이서
  • 2025-07-05
  • 315
자금성은 대한민국이 건설 奉天門봉천문, 文淵閣문연각
  • ok logo

Скачать 자금성은 대한민국이 건설 奉天門봉천문, 文淵閣문연각 бесплатно в качестве 4к (2к / 1080p)

У нас вы можете скачать бесплатно 자금성은 대한민국이 건설 奉天門봉천문, 文淵閣문연각 или посмотреть видео с ютуба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Для скачивания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 Информация по загрузке:

Cкачать музыку 자금성은 대한민국이 건설 奉天門봉천문, 文淵閣문연각 бесплатно в формате MP3:

Если иконки загрузки не отобразились, ПОЖАЛУЙСТА, НАЖМИТЕ ЗДЕСЬ или обновите страницу
Если у вас возникли трудности с загрузкой, пожалуйста, свяжитесь с нами по контактам, указанным в нижней части страницы.
Спасибо за использование сервиса video2dn.com

Описание к видео 자금성은 대한민국이 건설 奉天門봉천문, 文淵閣문연각

영상에서는 奉天門(봉천문), 文淵閣(문연각)이 자금성이라고 설명하는데. 실제는 난징궁입니다. 영락제 이방원이 난징궁의 건축 양식과 이름을 이용해 자금성을 지었기때문에 같은 이름이 등장합니다. 날짜를 보면 아는데 영락제가 자금성을 처음 지은 년대는 1406년 명나라 영락제가 베이징으로 천도하면서 건설한 황궁으로, 명~청 시대 24명의 황제가 살았던 궁전이다라고 위키백과에 설명하기 때문에 알 수 있습니다. 실록은 1401년의 기록으로 5년 정도 더 빠르니 양자강 현재는 장강이라 불리는 난징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의 수도가 난징과 베이징 자금성 입니다. 태종 이방원이 자신의 형 정종 이방과가 풍병(風病) 걸려 몸이 안좋아 권서국사(임시 나라를 다스리는 분)로 임명해 달라고 건문제에게 사신을 보내 임명장을 북경 베이징에서 받는 내용인데 고명(誥命) 1통[道], 사각에 전문으로 새긴 조선 국왕 금인(옥새(朝鮮國王金印)) 1개[顆]와 금인지(金印池) 1개를 북경 베이징에 보낸다는 내용입니다.

태조실록6권, 태조 3년 11월 19일 을묘 2번째기사 1394년 명 홍무(洪武) 27년
태종이 명나라 황제의 우대를 받고 돌아오다
https://sillok.history.go.kr/id/kaa_1...
我殿下回自京師, 南在、趙胖隨至。 殿下至京, 帝引見再三, 殿下敷奏詳明, 帝優禮遣還。 初殿下之行也, 贊成事成石璘, 作詩以送殿下曰: "知子知臣睿鑑明, 畏天誠意爲生成。 皆言萬世朝鮮慶, 在此炎霖跋涉行。" 上國士人見殿下, 皆稱朝鮮世子, 甚敬之。 殿下過燕府, 燕王 【卽太宗皇帝。】 親見之, 旁無衛士, 唯一人侍立。 溫言禮接甚厚, 因使侍立者饋酒食, 極豐潔。 殿下離燕在道上, 燕王乘安轝朝京師, 驅馬疾行, 殿下下馬見於路側, 燕王停駕, 亟手開轝帷, 溫言良久乃過行。 後殿下見欽差內官黃儼, 問: "昔見帝于燕府之日, 侍立者爲誰?" 儼曰: "慶大人, 溫良人也。 帝最親信者, 今已亡矣。"

이 원문의 번역 내용.
전하(이방원)께서 경사(京師)에 이르시니, 남재와 조반이 함께 수행하였다. 황제(이성계)가 여러 차례 인견하시고, 전하께서는 조목조목 상세히 아뢰었다. 황제(이성계)는 예우를 다하여 전하를 돌려보냈다.
처음 전하께서 떠나실 때, 찬성사 성석린이 시를 지어 전송하였다.
자식을 알고 신하를 아는 임금의 예감은 밝고, 하늘을 두려워하는 진심은 백성을 살리기 위한 것이다. 모두가 말하기를, 조선의 영원한 경사는 이 더위와 장마 속에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 이 길에 있다 하더라.
상국의 선비들이 전하를 보고 모두 “조선의 세자”라 부르며 매우 존경하였다.

전하께서 연부(燕府, 당시의 연왕은 훗날 태종 황제)【즉 이방원 본인】를 지나실 때, 친히 맞이하였다. 곁에는 시위하는 병사가 없고, 단지 한 사람만이 곁에서 모시고 서 있었다. 온화한 말과 예절로 매우 후하게 대접하였고, 곁에 있던 사람에게 술과 음식을 내오게 하였는데, 매우 풍성하고 깨끗하였다.

연왕이 편안한 가마를 타고 경사로 향하며 말을 몰아 매우 빠르게 달려갔다. 곁에 있던 사람이 말에서 내려 길가에서 절하니, 연왕은 수레를 멈추고 급히 손으로 가마의 휘장을 걷고, 온화한 말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눈 뒤에야 떠났다.

훗날 연왕이 황제가 된 후, 내관 황엄에게 물었다. “예전에 내가 연부에서 있었을 때, 곁에 모시고 서 있던 사람은 누구였는가?” 황엄이 대답하였다. “경 대인입니다. 온화하고 어진 사람으로, 황제께서 가장 신임하던 인물이었으나 지금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태종실록1권, 태종 1년 6월 12일 기사 2번째기사 1401년 명 건문(建文) 3년
이직·윤곤 등이 가져온 명나라 예부의 자문
https://sillok.history.go.kr/id/kca_1...

인조실록18권, 인조 6년 1월 27일 己丑 3번째기사 1628년 명 천계(天啓) 8년
명에 간 사신이 돌아와 중국의 사정을 보고하다
https://sillok.history.go.kr/id/wpa_1...

Комментарии

Информация по комментариям в разработке

Похожие видео

  • О нас
  • Контакты
  • Отказ от ответственности - Disclaimer
  • Условия использования сайта - TOS
  • Политика конфиденциальности

video2dn Copyright © 2023 - 2025

Контакты для правообладателей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