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그리고 아크로폴리스의 꿈 _ 세계 문명의 출발과 역사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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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로폴리스

아크로폴리스는 아크론과 폴리스의 합성어로
'가장 높은 도시'라는 뜻입니다.

아크로폴리스는 해발 150m 높이에 위치한 고대 그리스의
도시로 아테네의 상징이자 랜드마크입니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기원은 기원전 5,000 ~ 4,000년의
신석기 중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기원전 6세기에 이르러 아테네의 수호 여신 아테나에게
바쳐졌습니다.

아크로폴리스는 페르시아 전쟁 이후 아크로폴리스를
요새화하기 시작했고 파르테논신전, 아테나 니케 신전,
에레크테이온 등 여러 신전이 앞서거니 만들어지고
성전 정문인 프로필라이어가 완성도를 높여가며
아크로폴리스가 완성되었습니다.

신들의 시대가 끝나고 아크로 폴리스는 많은 침략전쟁의
승패로 심하게 훼손되었다가 19세기 그리스 독립전쟁을
겪은 후,1830년 이후에야 아테네인들의 품에
들어왔습니다.

1) #파르테논_신전
아크로폴리스의 중심 건물로 기원전 5세기(페리클레스 시대)에
세워졌으며 그리스의 지혜, 수공예, 전쟁의 여신 아테나에게
바쳐진 화려한 신전입니다.

파르테논 신전 이름은 아테나 여신이 ‘처녀(그리스어로
파르테노스)’여서 그렇게 붙여졌습니다. 당시 파르테논 신전
안에는 10미터 높이의 금과 상아로 된 아테나 여신 조각상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장대하고 웅장함응 보여주는 기둥은 정면 8개, 측면 17개 이며.
높이 10.45 m 입니다.

1687년에는 베네치아공국이 오스만 제국이 점령한 이곳을
침략하여 공격한 포격이 당시 화약고로 사용된 파르테논 신전
을 크게 훼손시켰고 동시에 정문 프로필라이아와 기타 성채들도
심한 상처를 입었답니다.

파르테논 신전은 당시 아테네의 부와 권력, 고상한 문화를
상징하는 건축물이었습니다.
오늘날까지 파르테논 고대 그리스, 아테네 문화를 대표할 뿐더러
민주주의의 강력한 상징이자 중요한 문화 기념물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신전 주변에는 아테나 여신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여신에
이르는 과정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2) #에레크테이온_신전
고대 아테네의 신화적 영웅 에레크테우스 이름을 따라 명명된
신전으로 에레크 테우스 외에 아테나와 포세이돈을 모시고
있습니다. 즉 세 개의 신전이 하나의 건물에 통합되어 있습니다.

시기적으로는 프로필라이아의 건조 직후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내려오는 신화 내용에는 아테나와 포세이돈이 서로 아테네의
수호신이 되고자 다투게되자 제우스는 두 신에게
시민들에게 줄 선물을 마련하라 하면서 시민들이 스스로
선택하도록 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아크로폴리스
기슭에 삼지창을 꽃아 소금물이 솟아나게 했고, 아테나
여신은 그 자리에 올리브 나무가 자라게 했다.
시민들은 올리브 나무를 준 아테나를 선택하여 오늘에
이르렀고 그 상징인 올리브는 에레크테이온 신전 옆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남쪽 신전에 6개의 여상(女像)이 기둥이 되어 고정되어
있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그런데 이 여성 기둥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리스와 페르시아 전쟁 당시 그리스를
배신하고 페르시아 편에 섰던 스파르타 인근의 도시
카리아이 시민들에 대해 에서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
동맹군은 카리아이 남자들은 모두 죽이고 여자들은 무거운
짐을 이고 다니는 노예로 만들었다는 역사의 한 단면을
품고 있으니 바로 이 여인상 돌기둥은 배신에 대해
속죄하라는 의미가 됩니다.

현재 보이는 여섯 소녀상은 복제품이며, 5명의 진픔 소녀상은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있고 1명의 소녀상은 대영박물관에
있습니다.

3) #아테나_니케_신전
프로필라이아 입구 오른편에 날개 잃은 승리의 여신이라고
불리는 아테나 니케 신전이 있습니다.

아테나 니케 신전은 아테네 시민들이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세운 신전인데 전쟁에서 늘 승리를 바라던 아테네
시민들은 승리의 여신이 아무데도 가지 못하도록 승리의 여신
아테나의 날개를 잘라내고 이 신전에 (가두어) 모셨습니다.

4) #아그리파_기념비
아테나 니케신전과 마주한 위치에 있는 아그리파 기념비는
원래 BC 178년 페르가몬 왕국의 에우메네스 2세가 판아테나
제전의 전차 경기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것인데,
BC 27년 로마제국의 아우구스투스 사위인 아그리파에게
바치는 기념비로 바뀌었습니다.

5) #디오니소스_극장
BC 5세기에 이 극장은 소포클레스·에우리피데스·아이스킬루스,
그리고 디오니소스 극에서 발전한 아리스토파네스 연극의
경연장이었다. 그 당시 관람석은 언덕 비탈에 나무의자를
놓아 만든 것으로 여겨지며, 무대 또는 연극의 배경으로
쓰였던 구조물은 합창대석 맞은편에 있었다.

BC 4세기 중엽에는 1만 7,000명의 관람객을 수용할 수
있는 돌로 만든 계단식 좌석이 만들어졌으며 돌로 된 무대
뒤 구조물도 더욱 높아졌다. AD 61년경 로마의 네로 황제
때 무대를 높이는 등 극장구조를 크게 바꾸었다.
4세기를 지나면서 극장이 사용되지 않게 되어 퇴락했다.

1765년 다시 발견되었고 1800년대 후반 고고학자이자
그리스 건축 권위자 빌헬름 되르펠트의 감독하에 고고학적
복원이 이루어졌다.

6) #헤로데스_아티쿠스 _음악당
로마 시대인 161년, 대부호 헤로데스 아티쿠스가 죽은
아내를 기리며 만든 것이다.
당시에는 목제 지붕과 벽으로 둘러쌓인 6000석 규모의 실내
극장(음악당) 이었으며 전 객석이 대리석으로 될만큼
호화스러웠다고 합니다.

1950년대에 대대적인 복원 공사를 거쳐 지금까지 여름
축제 때마다 실제 공연이 열리고 있는 곳이다.

이 극장에서 공연한 현대 예술가로는 세계적인 지휘자
카라얀을 비롯하여 마리아 칼라스, 루치아노 파바로티,
프랑크 시나트라, 스팅, 엘튼 존 등 내로라하는 예술가
그리고 그리스 국민가수 나나무스쿠리가 있습니다.
2005년에는 우리나라 성악가 조수미가 호세 카레라스와
이곳에서 공연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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