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역사추적 – 흑산도 주민 김이수 어떻게 정조 임금을 움직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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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1년 1월18일, 정조 임금의 행차
친위대의 삼엄한 경호 속에 놓여 있는 정조 임금.
그러나 임금의 행차를 멈추게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흑산도에서 온 주민 김이수, 이름난 학자도, 높은 관직 생활을 한 정치인도 아니었는데...
평범한 섬 마을 주민인 김이수는 어떻게 한양에서 임금의 행차를 멈춘 것일까?

200년 전 흑산도 ‘민원해결사’ 김이수는 누구인가?
목포에서 2시간 정도 배를 달려야 만날 수 있는 흑산도.
김이수는 조선 시대 흑산도 본섬에서 3.2㎞ 떨어진 대둔도의 주민이었다. 흑산도 주민의 민원을 해결하고자 한양까지 가서 정조 임금을 만났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공으로 김이수는 주민들에게 섬을 통째로 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김이수가 임금을 만나면서까지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는 무엇일까?
그리고 김이수는 어떻게 정조를 만났을까?

김이수는 언제 어디서 정조를 만났나?
조선 임금 중 가장 많은 능행을 다닌 것으로 알려진 정조.
그는 즉위하자마자 임금의 행차길에서 격쟁이라는 특별한 제도를 허용한다. 신문고를 대신해서 생겨난 백성들의 소원제도였던 격쟁(擊錚). 정조 이전에는 궁궐 내의 지정된 장소에서만 가능했지만 정조 즉위 후, 행차길에서도 격쟁을 허용한 것이다. 1791년 1월, 현륭원 참배를 마친 정조는 궁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과연 김이수는 언제 어디서 정조의 행차에 뛰어든 것일까?

김이수의 끈질긴 투쟁
당시, 김이수는 탄원서를 통해 흑산도에 부당하게 부과된 세금들의 혁파와 감면을 호소해 왔다. 그중에서 닥나무 세금은 나무가 거의 사라져버렸는데도 남아있었고, 그 부담이 커서 섬을 버리고 도망가는 주민이 생겨날 정도였다.
가장 가까운 관청인 흑산진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김이수는 흑산도를 관할하는 나주목사를 시작으로 전라감영까지 쫓아다니며 사정을 호소하는데.. 그렇다면 김이수는 어떻게 격쟁제도를 알고 한양까지 가게 된 것일까?

최고 지도자를 움직인 흑산도 주민
1791년 1월 18일, 현륭원 참배를 마친 정조는 궁으로 돌아간다.
그때 주변에 모인 백성들 중, 꽹과리를 치며 김이수가 행렬에 뛰어든다. 부당한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험난한 여정에 오른 김이수와 최고 지도자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5월22일, 정조는 흑산도의 종이세를 혁파하라고 지시하는데...
절해고도(絶海孤島)인 흑산도 주민의 민원마저 해결하려 했던 정조의 리더십이 빛나던 순간, 민중과 최고통치자가 소통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역사추적 22회 – 흑산도 주민 김이수, 어떻게 정조임금을 움직였나 (2009.5.4.방송)
http://histor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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