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플러스에 실린 이금란 한라대학교 교수의 칼럼입니다.
무전공제도에서의 교수설계-학습내용의 선정
이금란 교수(교육학 박사, 한라대학교 운곡 교양교육원 & 교수학습지원센터)
서론
2025 시행될 무전공 제도는 학문 간 융합을 통한 창의적이고 실용적인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한다. 이 제도는 전공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학생 스스로 학습 경로를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교육 혁신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렇듯 달라진 무전공 제도하에서 학습내용을 어떻게 선정할 것인가의 문제는 교수자의 전문성이 드러나는 매우 핵심적인 영역이다. 무전공 제도는 기존의 전공 중심 교육과 달리, 다학문적·간학문적 관점과 융합적 사고를 요구하는 새로운 시도이기 때문이다. 이에, 교수자들은 전통적인 수업에서의 학습내용과 달리, 보다 확장된 개념의 내용을 새롭게 선정하고 조직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본 칼럼에서는 무전공 제도의 특성을 반영하여 학습내용을 선정하고 학습자들의 학습 경험을 조직하는 데 필요한 주요 원칙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학습 내용 선정을 위한 일반적 원칙
일반적으로 무엇을 가르칠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교수자의 고유한 특권이다. 효과적인 학습 내용을 구성하기 위해서 교수자는 자신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학문적 깊이와 폭, 논리적 흐름과 난이도, 주제 간의 연계성과 계열성을 조화롭게 고려해야 한다. 학습내용은 학습 목표와 균형 있게 연계 및 조정되어야 하며, 핵심 개념을 중심으로 필요한 범위를 초과하지 않도록 구성해야 한다. 이때, 지나치게 세부적인 내용에 치우치면 학습자가 편향된 시각을 가질 위험이 있고, 반대로 넓은 범위의 내용을 얕게 다루면 학습자가 주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따라서 교수자는 이러한 과정에서 자신의 전문성과 통찰력을 발휘하여 숙련된 역량으로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것인가를 결정하여야 한다.
다학문적 융합 및 실생활 연계
교육내용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교수자는 무전공 제도의 특성을 고려해야 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무전공 제도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교수자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학문적 관점을 접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따라서 학습내용 선정 시 단일 학문에 국한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다학문적 혹은 융합적 사고를 촉진할 수 있는 내용을 선정해야 한다. 다시 말해, 수업에서 어떤 주제를 다루게 된다면 환경 과학, 경제학, 정책학, 윤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관점을 통합하여 접근할 수 있도록 구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교수자는 학문 간 연결성을 고려하고, 이와 관련된 실제 문제 해결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교육내용 선정에 있어 심사숙고해야 한다.
이처럼 다학문적이고 융합적 사고를 촉진하는 교육 내용을 선정하려면, 학생들이 실제 사회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여러 학문의 지식과 관점을 통합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내용을 다루어 줄 필요가 있다. 즉, 학습자들이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통합적으로 연결하고, 이를 실제 문제 해결에 적용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점이다. 무전공 제도에서의 교육내용 선정은 급변하는 미래 사회에 요구되는 역량을 함양할 수 있도록 미래지향적으로 설계되어야 하며,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교수자는 교육 내용의 목표와 맥락을 면밀히 분석하여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사례를 통한 개인화 및 주체적 선택
무전공 제도의 목표는 학생이 자신의 학습 경로를 스스로 설계하도록 돕는 데까지 이르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교수자는 교육 내용을 선정할 때 학생들 개개인이 자신의 관심사와 진로 목표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하고 조합할 수 있는 형태로 구성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하나의 교과목 내에서 학습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이의 대표적인 사례로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를 들 수 있다. IB는 학생들에게 학습 주제와 탐구 방향을 선택할 자유를 주어 각자의 개성과 흥미를 학습 과정에 반영하도록 장려한다. 특히 IB의 핵심 구성 요소인 탐구 프로젝트(Extended Essay)와 탐구 기반 학습(Inquiry-Based Learning)은 학생들이 스스로 선택한 주제에 대해 심층적으로 연구하도록 독려하며, 이러한 방식을 매우 성공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IB는 학문적 균형을 유지하는 동시에 각 학문 내에서 학생들에게 자율권을 부여하여 학습 방향을 스스로 설정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러한 개인화된 선택이 가능한 이유는 학습자의 주체성을 중심으로 한 교육 철학, 유연한 교수설계, 그리고 다양한 학습지원 체계 덕분이다.
이는 전통적인 접근방식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이처럼 대학에서도 기존의 고정된 수업내용 선정 방식을 전환하여, 학생들의 다양한 배경, 관심사, 진로 목표를 반영하는 개인화 및 학습자의 주체적 선택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학습자 개인의 수준과 목표에 맞게 탄력적인 교육내용의 선정과 학습자 주도의 학습내용 조정이 가능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교육내용의 주제별/수준별 세분화(모듈형, 적응형 설계)
학습 내용을 유연하게 조정하고 학습자의 요구를 반영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방식은 우리 교육계가 직면한 도전 과제이다. 이를 현실적으로 구체화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모듈형 학습 설계와 적응형 학습 설계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모듈형 학습 설계는 교육 내용을 주제별로 세분화하여 학습자들이 자신의 필요와 관심에 따라 선택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방식이다. 교수자는 하나의 큰 주제를 여러 소주제로 나누어 학생들에게 제공함으로써, 학습자들이 주체적으로 학습 과정을 설계하고 자신의 학습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러한 방식은 학습자에게 유연성과 선택의 자유를 부여하며, 동시에 교수자가 제공하는 교육내용의 구조적 완성도를 요구한다.
또한, 적응형 학습 설계를 고려하는 것도 교육내용 구성에 있어 유연성을 높이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적응형 학습은 학습 내용을 초급, 중급, 고급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제공하여, 학습자들이 자신의 학습 수준과 속도에 맞는 경로를 선택하도록 지원한다. 초급 학습자는 기초 개념과 원리를 중심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하고, 고급 학습자는 더 심화된 문제 해결과 응용에 중점을 두는 방식으로 설계된다. 이를 통해 학습자는 자신의 능력과 목표에 적합한 학습 경로를 선택할 수 있으며, 점진적으로 난이도를 높여가며 학습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
교육내용을 재구성하는 교수자의 창의적 통찰
앞서 언급된 교육내용의 선정 방식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교수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교수자는 교육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학습 내용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단계적으로 조직화해야 하며, 이를 위해 고도의 전문 지식과 통찰력이 요구된다. 또한, 교수자는 전통적인 교육내용 구성 방식을 넘어 학습자의 성향, 목표, 필요를 반영하는 창의적인 교육내용을 재구성하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특히, 교육내용을 재구성할 때는 학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 개념과 주제를 학문적 범주나 실질적 문제를 기반으로 선정하고, 이를 학습자의 수준에 따라 난이도를 조정하여 초급, 중급, 고급 학습자 모두에게 효과적인 학습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이처럼, 교수자가 학습 내용을 융통성 있고 유연하게 설계하는 방식은 학습자 개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각자의 필요와 목표에 부합하는 학습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교수자는 학습 내용을 조직하고 난이도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새롭고 창의적인 접근을 시도해야 하며, 학습자가 스스로 학습 과정을 주도적으로 설계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이와 같은 교수자의 재구성 역량과 노력이 뒷받침된다면, 무전공 제도에서 지향하는 교육 목표의 실현이 가능해질 것으로 사료된다.
결론
무전공 제도에서 교육내용을 선정하는 것은 단순히 가르칠 내용을 정하는 것을 넘어, 학습자의 미래를 설계하는 핵심적인 과정이다. 이를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원칙과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무전공 제도는 교수자에게 학습자 중심의 교육 설계와 미래 지향적인 학습 환경을 창조할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를 제공한다. 낯설고 미지의 영역인 무전공 제도에서 교수자는 학문적 통찰과 융합적 사고를 바탕으로 교육내용을 선정해야 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다.
다이아몬드는 석탄과 동일한 탄소에서 만들어지지만, 오랜 시간 동안 높은 압력과 열을 견뎌야 다이아몬드로 거듭나게 된다. 교육내용의 선정은 무겁고 막중한 일이기에, 교수자가 충분히 고민하고 다듬어야만 가치 있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무전공 제도는 기존의 전공 중심 교육과는 다른 길을 요구하므로, 교수자는 전문성과 창의성을 발휘하여 교육내용을 선정할 때, 신중하게 압축하고 이를 조정하여야만 한다. 익숙한 틀을 벗어난 무전공 제도에서 교수자는 학습자의 미래를 설계하는 창의적 선구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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