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HD역사스페셜 – 강화천도, 작전인가 도피인가 / KBS 2006.2.10.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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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가 강화도를 수도로 선택한 이유는?
1231년 몽골의 침입 후 수도를 강화로 옮긴 고려!
고려 정부는 1270년 다시 개경으로 환도할 때까지 40여 년간의 수도를 강화도로 정했다. 그렇다면 당시 강화도가 수도로 선택된 이유는 무엇일까?
또한, 외성 외에 중성과 내성까지... 3중의 방어성이 구축됐던 당시 강화도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개경에 버금가는 궁궐과 3중 방어성을 갖춘 고려의 수도, 800년 전 강화도를 살펴본다.

- 30년 몽골전쟁, 강화도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몽골은 고려와의 30년 전쟁 동안 단 한번도 강화도 침공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강화도가 갖고 있는 지형적 조건 외에 유목민족인 몽골군이 수전에서는 능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몽골은 섬나라 일본 원정을 비롯하여 남송과의 전투 때도 수전을 시도, 승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정말 몽골군이 강화도를 침공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고려 영토 대부분이 초토화되는 수십 년간의 전쟁 동안, 강화도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 세계를 두려움에 떨게 한 몽골군
유라시아 문화의 집결지로 한때 중앙아시아의 심장이라 불렸던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 13세기 이 지역에는 당시 세계 문명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로 간주되던 호라즘 제국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1220년 몽골의 침략 후 이곳의 역사는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과연 당시 몽골군이 그처럼 순식간에 호라즘 왕국을 점령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인가? 서양에서 들여온 현대적 무기를 활용함은 물론, 몽골 군대의 무서움을 더욱 강하게 했던 것은 그들의 잔인함이었다. 호라즘 왕국 정벌 당시, 몽골군은 포로로 잡은 주민들을 동원해 화살받이로 이용하는 잔인한 작전을 사용했다. 중국대륙에 대한 정벌을 시작으로 이슬람과 러시아, 유럽 대륙에 이르기까지... 세계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넓은 영토를 정복했던 대제국 몽골 군대의 위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 최우정권이 반대에도 천도를 밀어붙인 이유는?
전 세계 수많은 강대국을 굴복시킨 몽골 군대가 마침내 고려를 침략했을 때, 집권층이었던 무신정권이 내놓은 항전 대책은 강화 천도였다. 하지만 천도 논의가 시작됐을 당시, 고려 조정에서는 반대하는 의견이 더 많았다는데...
게다가 고려사에는 ‘최우가 왕을 위협하여 강화로 도읍을 옮기게 했다’는 기록이 담겨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수많은 조정 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임금을 협박하면서까지 최우 정권이 강화 천도를 강행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중앙 정부와 군대의 지원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몽골의 거센 공격에 맞섰던 일반 백성들! 백성들은 무방비로 방치됐지만 지배층이 있던 강화도에는 당시 고려의 방어력이 총집중됐다. 게다가 무인정권의 무력기반이었던 삼별초는 철저히 강화정부와 무신정권을 지키는 데만 이용됐다.
800년 전, 고려 정부가 선택한 강화 천도는 과연 대몽항쟁을 위한 고도의 작전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한 도피에 불과했나?
강화 천도,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추적한다.

HD역사스페셜 36회– 강화천도, 작전인가 도피인가 (2006.2.10.방송)
http://histor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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