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륜당 스캔들

Описание к видео 명륜당 스캔들

장순군에 초등학생들과 함께 연극과 동작, 노래와 춤으로 향교와 효성 정경손을 소개하는 뮤지컬이 만들어 졌습니다. 코로나19로 공연이 자유롭지 못하지만 유튜브를 통해서 먼저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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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충복 정경손 : 향교의 충복
교생 : 향교의 생도
동재(진덕재): 양반 자제들이 머물던 숙소
서재(경성재): 평민 출신의 교생들이 공부하던 곳
사마재; 생원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할 자격을 부여받은 교생들이 공부하는 곳

장수 향교를 지킨 노복 정경손에 대한 이야기.

1597년(선조 30) 일본이 다시 침입했을 때 일어난 일이다. 왜군은 1592년에 침입했을 때 전라도를 점령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겼는데, 정유재란 때는 드디어 전라도까지 진격하여 점령하였다. 왜군은 약탈과 방화, 양민 학살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는데, 특히 유교를 숭앙하고 충효를 배양하는 도량인 향교를 보면 모두 불태워버렸다.

왜군이 장수로 몰려오자 장수 향교의 유림이나 교직은 모두 도망쳐 버렸다. 그러나 향교의 노복인 정경손 만이 뜻한 바 있어 홀로 남아 도망치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는 향교 정문의 계단에 전복(殿服)으로 정장하고 단정히 앉아서 왜군을 기다렸다. 마침내 왜군이 향교 가까이로 진입했다. 그들이 다가와 무자비하게 향교로 들어가려고 하자 정경손은 “여기는 성전이니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꼭 들어가려거든 나를 죽이고 들어가라!” 라며 우렁차게 호령하였다. 그의 호령에는 조금의 두려움이나 망설임이 없었고, 눈빛은 하나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았다. 왜군들은 정경손의 곧은 기개에 기세가 눌리면서도 화를 내며 진격하려 하였다.

하지만 왜군 장수는 정경손의 대담한 품성과 홀로 목숨을 내걸고 성역을 지키겠다는 모습을 보자 투철한 책임감에 감동하여 더 이상 향교로 진군하지 않았다. 대신 정경손을 위하여 “이 성역에는 들어가지 마라.” 라고 적힌 종이를 건네주었다. 정경손은 이 글을 장수 향교 문 앞에 붙여놓았는데, 이후에는 왜군이 와도 이 글을 보고 향교를 범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지역의 향교가 파괴, 소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장수 향교만이 온전하게 남아 있게 되었다.

노복의 신분으로 목숨을 걸고 끝까지 향교를 지킨 정경손의 용기와 투철한 책임감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지금 향교 앞에는 정경손의 충의를 기념하는 정충복비가 세워져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일본군도 감복한 충복 정경손 [-鄭敬孫]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한민족 전투), 2002., 한국콘텐츠진흥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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