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인 노래 모음 - 1 신라의 달밤, 2 고향만리, 3 비 내리는 고모령, 4 굳세어라 금순아, 5 꿈이여 다시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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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과 더불어 가요계에 선풍을 일으킨 현인은
특유의 떠는 창법으로 인기를 끌었다.
당시에는 정말 획기적인 창법이었다.

현인은 도쿄 음악학교 (현 도쿄예술대학) 성악과 출신이다.

작곡가 박시춘이 그를 찾아와 자신의 곡을 불러달라고 했으나
"성악도가 유행가 따위를 부를 수는 없다"며 거절하였다.

그러나 박시춘의 거듭된 권유로 대중가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때 박시춘이 현인에게 준 곡이 바로 '신라의 달밤'이다.

'신라의 달밤'은
달빛이 일렁이는 산사(山寺)에서 고도(古都) 경주 일대를 내려다보며,
천년사직의 정취를 회고하는 풍류객의 노랫말이 인상 깊다.

게다가 이국적 멜로디에 현인의 구성진 바이브레이션이 더해져
묘한 매력까지 풍긴다

이 곡은 대중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독차지하였고
현인은 근대 가요계 1세대’의 대표주자로 등극하게 되었다.

1947년 국립극장에서 영화, '자유부인' 상영 전 행사로
현인이 '신라의 달밤'을 불렀는데,
관중의 앙코르 요청으로 무려 9번이나 연속 재창(再唱)했다고 한다.

이후 현인은 일제강점기 국민들의 실향의 아픈 기억을 되살린
'비 내리는 고모령', '고향만리' 등을 연달아 히트시켰다.

1951년 1·4후퇴 직후에 발표한 '굳세어라 금순아'는 흥남부두,
1·4후퇴, 국제시장, 영도다리 등 시대를 상징하는 단어들을 사용해
전쟁 때문에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낯선 타향에서 고통받아야 했던
서민들의 슬픔을 극명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원로가수 안다성씨는 당시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해방 이전에는 고음과 미성을 구사하던
남인수, 백년설, 고복수씨 등이 가요계를 주도했는데,
해방 후에는 현인씨가 새로운 창법을 들고나와
가요계 판도를 바꿔놓았습니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부산에서는 현인공원을 조성하였고,
2005년부터 ‘현인가요제’를 매년 송도해수욕장에서 개최하고 있으며,
영도다리 입구에는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비와 현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밖에 대구 망원공원에는 ‘비 내리는 고모령’ 노래비가,
경주 불국사 앞에도 ‘신라의 달밤’ 노래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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