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모] 백제 역사의 재조명-조영희 한강역사해설사회장/한뿌리사랑 세계모임 제32차 역사포럼_2017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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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방송 박찬남 기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 민족사학자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1880-1936)의 말이다. 역사는 물론 과거의 사실이다. 이렇게 역사를 단순한 과거로만 여기면 그 여사는 ‘박제된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 ‘죽은 역사’가 된다. 그 역사를 오늘에 연결 지을 때 비로소 역사는 살아서 꿈틀댄다. 그래서 영국의 역사학자 E.H.카(1892-1982)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민족은 역사를 단순하게 과거와 현재가 부단하게 대화하는 것에 국한하지 않았다. ‘과거의 사실’이 오늘에 되살아나 미래로 연결될 대 비로소 역사는 제 기능을 다하는 것으로 우리 선조는 보았다. ‘과거의 사실’ 역사를 통해 우리 민족은 이 민족의 미래를 찾았고 젊은이들에게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일깨워 준 것이다.

민족사학자들은 역사는 민족의 혼(魂)과 얼을 담아 민족의 미래를 밝혀야 한다고 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인 백암(白巖) 박은식(朴殷植 1859-19250은 역사는 ‘국혼’(國魂)으로, 신채호는 ‘낭가사상’(郎家思想)으로, 문일평은 ‘조선심’(朝鮮沈)으로,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 1893-1950)는 ‘민족의 얼’로 각각 강조하며 조선인들의 민족적 자존심을 고취했다. 그 혼이나 얼을 잃은 역사는 ‘죽은 역사’라고 했다.

“누구나 어릿어릿하는 사람을 보면 ‘얼’ 빠졌다고 하고 ‘멍’하니 앉은 사람을 보면 ‘얼’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사람의 고도리는 ‘얼’이다 ‘얼’이 빠져 버렸을진대 그 사람은 꺼풀사람이다.” 정인보는 ‘얼’은 인간 존재의 핵심이며 역사의 원동력이라고 했다. 그는 “역사의 줄기를 찾는 것은 역사의 밑바닥에서 천추만대를 이리관하는 ‘얼’을 찾는 작업이며, 역사가는 낱낱의 역사적 사실을 탐구하여 궁극적으로는 역사의 뼈대인 ‘얼’의 큰 줄기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제의 역사에 백제인들이 혼이 과연 있는가? 백제역사가 가슴에는 백제의 얼이 살아 숨 쉬고 있는가? ‘백제’하면 흔히 충청·전라도를 떠올린다. 서울의 나이를 600년으로 계산해 서울과 백제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으로 여긴 것이다. 백제는 한반도 서남부지역에 자리한 삼국(고구려 신라 백제) 중 가장 작은 나라로 생각했다. 국력도 문화도 그 삼국 중 꼴찌로 취급하였다.

‘의자왕’ ‘삼천궁녀’ ‘계백장군’ ‘개로왕’ 백제하면 쉽게 떠올리는 단어이다. 패배와 슬픔을 상징하는 단어이다. 백제는 작은 영토에서 국력이 약해 늘 외세에 눌려 패배하고 아픔을 겪어야 하는 슬픈 나라로 상상하였다. 일본인과 중국인들은 백제의 역사에서 ‘백제의 혼’을 철저히 지워버렸다. 그 ‘죽은 역사’를 조선인들에게 부단히 세뇌시켰다. 백제역사의 참 모습은 거의 사라진 것이다.

백제가 고구려 평양까지 공격해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살해하고 중국 요서지방에 ‘대륙백제’의 영토를 두었다는 사실이 여러 사서(史書)에 나오고 이를 뒷받침하는 중국인들의 증언이 계속 나오면서 백제역사의 속살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여기 저기 조각처럼 흩어져 있는 그 백제역사의 토막을 하나씩 찾아내 백제 그 나라의 참모습을 그려보았다. 백제는 한반도의 서남부지역에 묶여있는 그렇게 작은 나라는 아니었다. 동남아시아 지역까지 화발하게 진출해 넓은 세계를 누비고 다녔던 해양 국가였다.

그 백제는 중국의 요서지방에 진출해서 대륙을 경영하였던 최대강역을 자랑한 대국(大國)이었고 일본이 큰 나라로 섬기는 백제였다. 또 문화와 역사 경제력에서도 대단히 강력한 대국(大國) 백제 그 참모습을 한국과 중국 일본 등지의 문화유산을 짚어가며 그려보았다.-조영희 한강역사해설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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