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역사스페셜 – 북벌, 조선의 운명을 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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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의 10년 북벌계획
1637년 1월, 인조는 조선을 침략한 청 태종 앞에 엎드려 땅에 머리를 아홉 번 찧는다. 강화도에서 끌려와 인조 옆에 엎드려 있던 봉림대군(후에 효종)의 가슴 속에는 복수와 북벌의 의지가 꿈틀거렸다.
심양에서 볼모 생활을 마친 후 돌아와 즉위한 효종은 북벌계획을 착착 진행한다. 그러나 병자호란 이후 황폐해진 국토와 흉흉한 민심 때문에 북벌의 꿈은 그의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

실질적 북벌론자, 윤휴의 죽음
효종 승하 후 주춤하던 북벌 논의는 숙종 때 다시 부활한다.
특히 윤휴는 전차와 화차를 제작하고, 중국 내 반청세력인 오삼계와 연합하여 청을 정벌하자는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한다.
그러나 윤휴는 노론계열의 공격을 받고 사문난적으로 몰려 사약을 받는다. 북벌은 양날의 칼이었던 것이다. 북벌은 청이란 주적을 상정하여 민심을 수습할 수 있는 전략이었지만, 실제로 수행할 경우 서인정권의 안녕을 위협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였다.
북벌은 실질적 대청복수 대신 정신적 대명의리로 탈바꿈할 수밖에 없었다.

호운불백년(胡運不百年)과 영고탑회귀설
대명의리론으로 탈바꿈한 북벌은 조선말까지 맥을 이어간다.
그런데 그 이면에 재미있는 논리가 존재한다. 거란의 요, 여진의 금, 몽골의 원이 100년 이상 가지 못했던 것처럼 오랑캐의 나라인 청 또한 100년을 가지 못한다는 호운불백년(胡運不百年)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쇠락한 청이 그들의 발상지인 영고탑(지금의 흑룡강성 연안)으로 복귀하여, 조선에 침입할 것이라는 설이 파다하게 퍼진다.
이 명백한 경험론적 오류는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 민생을 구제하지 못한 서인정권이 자신을 방어하는 힘이 되었다.

극단적 명분론의 병폐
당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청을 정벌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집권 노론층은 북벌을 이념화해 정권유지와 사회통제의 수단으로 삼았다. 지나치게 명분론에 치우진 조선 후기의 성리학적 이념은 조선을 고립시켜 청나라의 실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였고, 근대화로 치닫는 세계사의 흐름에서 조선을 완전히 이탈하게 만들었다.

신역사스페셜 17회 – 북벌, 조선의 운명을 가르다 (2009.11.7 방송)
http://histor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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