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영산강 처녀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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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이야기

가수의 인생은 노랫말을 따라간다는 말이 있지요. 송춘희 선생님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다가 '수덕사의 여승'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뒤 불교에 귀의하게 됩니다. 무대와 방송에서 숱하게 들었던 질문 중 하나가 "수덕사에는 가보셨느냐?" 하는 것이었는데 수덕사가 어디에 있는 절인지도 몰랐던 송춘희 선생님은 결국 우연히 방문한 절에서 감동을 받고 개종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1939년 평안북도에서 출생한 송춘희 선생님은 어릴 때부터 노래부르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인천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며 학예회가 열리는 날이면 늘 반을 대표해 노래자랑에 나갔다고 하지요. 수원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성악과에 진학할 꿈을 꾸지만, 가세가 기울고 부친이 음악하는 것을 반대했던 탓에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악극단에 지원하기로 합니다.

8남매 중 첫째로, 실질적인 소녀가장이 되어 여러 가족들을 챙겨야 했던 송춘희 선생님은 전쟁이 끝난 뒤 1956년부터 악극단에서 노래를 시작하게 됩니다. 지방을 돌아다니며 공연하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지만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만으로 즐겁고 행복했다고 합니다.

긴 무명의 시기를 거쳐 1967년 발표한 '수덕사의 여승'은 그녀를 스타덤에 올려주었고 명실공히 최고의 가수로서 1967년부터 5년 연속으로 '10대 가수'에 선정되기도 했지요. 하루 출연료가 3천원에서 만원으로 무려 3배이상 올랐다고 하는데, 1968년 공무원의 한달 급여가 1만원 정도라는 것을 비교해보면 가히 폭발적인 인기였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듬해인 1968년 발표된 '영산강 처녀'는 송춘희 선생님의 대표곡 중 하나로 역시 큰 히트를 기록하며 지금까지 많은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 되었습니다. 자료를 유심히 찾아보지 않으면 원곡을 부른 가수가 누구인지 헷갈릴 정도로 많이 불린 노래이지요.

"영산강 구비 도는 푸른 물결 다시 오건만
똑딱선 서울 간 님 똑딱선 서울 간 님
기다리는 영산강 처녀
못 믿을 세월 속에 안타까운 청춘만 가네
길이 멀어 못오시나 오기 싫어 아니 오시나
아 푸른 물결 너는 알지 말을 해다오

유달산 산마루에 보름달을 등불을 삼아
오작교 다리 놓고 오작교 다리 놓고
기다리는 영산강 처녀
밤이슬 맞아가며 우리 낭군 얼굴 그리네
서울 색시 고운 얼굴 정이 깊어 아니 오시나
아 구곡간장 쌓인 눈물 한이 서린다"

'목포의 눈물', '목포는 항구다' 등 목포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노래가 참 많지요. 사실 영산강은 담양군에서 시작해 광주광역시, 나주시, 영암군, 함평군, 무안군을 지나 목포를 통해 서해로 흘러드는 강이기에 이 노래의 구체적인 배경이 아닌 듯 보일 수도 있지만, 2절의 가사 처음에 등장하는 유달산은 목포항을 바로 앞에서 바라보고 있는 목포시의 상징과도 같은 산입니다.

전남 무안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어촌 마을은 1897년 개항한 이후부터 꾸준한 성장을 보이며 1932년에 이르러서는 인구 6만의 조선 6대 도시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일본이 대륙 진출을 위해 교두보로서 최적의 위치에 있었기에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한이 맺힌 슬픔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노랫말 속 영산강 처녀는 똑딱선을 타고 서울러 떠난 님을 그리워 하고 있네요. 우리는 지금 세계 어느 나라든 하루만에 갈 수 있는 지구촌 시대에 살고 있지만 1960년대만 하더라도 시골을 떠나 서울로 상경한다는 것이 참 막연하고 멀게만 느껴졌나 봅니다. 오매불망 떠난 님을 그리며 다른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 다시 돌아오지는 않을 것만 같은 슬픔의 탄식으로 노래는 마무리됩니다.

2000년 10월 17일 광주광역시 동구 선교동에 위치한 너릿재공원에 '영산강 처녀'의 노래비가 세워졌습니다. 이 곡은 노랫말의 슬픈 가사와는 달리 밝은 룸바 리듬의 편곡으로 발표되었는데요. 원곡의 느낌을 담아 신나는 '영산강 처녀'를 여러분과 함께 불러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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