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A문화연구소 curatorsim의 박물관답사 - 양주 회암사지 박물관

Описание к видео A&A문화연구소 curatorsim의 박물관답사 - 양주 회암사지 박물관

회암사지 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회암사지라는 좋은 컨텐츠와 풍부한 예산, 최신기술이 접목되어서 인지 꽤나 만족스러운 박물관입니다.
조선전기까지도 가장 큰 사찰이었다던 회암사에서는 학계가 주목할만한 유물들이 풍부하게 출토되었고 회암사에서 확인된 건축물의 배치와 온돌 등의 시설은 건축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회암사지를 둘러보기 전에 먼저 박물관에 가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다음은 문화재청 문화재정보의 '회암사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파주 혜음원지와 여주 고달사지 등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 좋을 듯 합니다.

고려 충숙왕 15년(1328) 원나라를 통해 들어온 인도의 승려 지공이 처음 지었다는 회암사가 있던 자리이다. 그러나 회암사가 지어지기 이전에도 이 곳에는 이미 절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 전기 이색이 지은『천보산회암사수조기』에 의하면, 고려 우왕 2년(1376) 지공의 제자 나옹이 "이곳에 절을 지으면 불법이 크게 번성한다"는 말을 믿고 절을 크게 짓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조선 전기까지도 전국에서 가장 큰 절이었다고 하는데, 태조 이성계는 나옹의 제자이면서 자신의 스승인 무학대사를 이 절에 머무르게 하였고, 왕위를 물려준 뒤에는 이곳에서 수도생활을 하기도 했다. 성종 때는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의 명에 따라 절을 크게 넓히는데 13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그 후 명종 때 문정왕후의 도움으로 전국 제일의 사찰이 되었다가, 문정왕후가 죽은 뒤에 억불정책으로 인하여 절이 불태워졌다.

이 절이 있던 자리에서 500m 정도 올라가면 지금의 회암사가 있는데, 그 부근에는 중요 문화재들이 남아있다.

고려시대에 세운 나옹의 행적을 새긴 회암사지선각왕사비(보물 제387호)를 비롯하여, 지공의 부도 및 석등(경기도유형문화재 제49호)·회암사지부도(보물 제388호)·나옹의 부도 및 석등(경기도유형문화재 제50호)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쌍사자석등(보물 제389호)·무학대사비(경기도유형문화재 제51호)·회암사지부도탑(경기도유형문화재 제52호)·어사대비(경기도유형문화재 제82호)·맷돌(경기도민속자료 제1호)과 당간지주, 건물의 초석들이 남아있다.

이 사찰은 평지가 아닌 산간지방에 위치하면서도 평지에 있는 절에서 볼수있는 남회랑을 만든 점에서 고려시대의 궁궐이나 사찰 배치형식을 보이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Комментарии

Информация по комментариям в разработк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