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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말씀은 2015년 2월 6일에 박한수 목사님께서 사도행전 13장 9-21절을 본문으로 "성령충만, 그 놀라운 능력"이란 제목으로 설교하신 내용입니다. 아래는 텍스트로 핵심적인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설교를 통해서 많은 받으시고 성령 충만함을 힘입어 승리하시길 기원합니다!!
[내용 정리]
본문을 통해 우리는 성령 충만의 놀라운 비밀과 그로 인해 나타나는 영권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사울이 바울로 변화된 후, 그는 복음을 전하다가 마술사 바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바울은 성령의 힘을 입어 바예수를 저주했고, 즉시 바예수는 맹인이 되었습니다. 이는 말한 대로 되는 영적인 권세, 즉 영권이 바울에게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영권입니다. 물질 만능주의, 도덕적 타락 등 여러 문제가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영권의 부재입니다. 영권이 있다면 돈, 건강, 자녀 문제 등 세상적인 걱정들은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믿는 자들을 함부로 대하는 것도 영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권을 가진다면 세상은 "예수 믿는 사람은 건들면 안 돼"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박보영 목사님의 일화처럼, 영권은 상상하기 어려운 기적을 현실로 만들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하는 이유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권능 있는 신앙생활을 위함:
사도행전 1장 8절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오직'은 성령 외에는 권능의 원천이 없음을 강조합니다. 바울이 학문의 최고점에 있을 때는 하나님을 대적했지만, 성령이 충만하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권능은 학습이 아닙니다. 성령 충만은 무기력한 자를 강하게 하고, 평생 끊지 못했던 죄를 한순간에 이기게 합니다. 담배, 술 등 끊지 못하는 죄의 습관도 성령이 임하시면 단절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 이름의 권세를 가졌지만, **능력(파워)**이 없을 수 있습니다. 능력 없는 권세는 마귀의 조롱거리가 됩니다. 마태복음 12장 28절처럼 귀신은 성령의 능력으로만 쫓겨납니다. 우리는 성령의 힘을 입어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확신 있는 신앙생활을 위함:
성령이 충만할 때 우리는 확신을 얻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령 충만함으로 인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목숨을 던지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재산, 직장까지도 포기하며 주님을 따랐습니다.
엘리사가 소명을 받았을 때 12겨리의 소를 잡고 쟁기를 불살라 버린 것처럼, 성령이 주는 확신은 배수진의 신앙을 가능하게 합니다. 다시는 세상의 방법으로 살지 않겠다는 확신입니다.
마가복음 16장 20절은 제자들이 나아가 전파할 때 주께서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성령이 함께할 때 구원의 확신과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이 견고해집니다.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제를 위함:
성령 충만할 때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제가 가능해집니다. 2천 년 전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과 우리가 상관이 있는 이유는 오직 성령님 때문입니다.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주님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성령 충만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주의 뜻대로 살 수 있게 됩니다.
성령 충만의 증거
성령 충만의 증거는 다음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담대함:
성령 충만하면 죽음도 피해 가는 담대함이 생깁니다. 두려움은 마귀가 심어주는 것이며, 두려워하는 자에게 마귀는 강력히 역사합니다.
사도행전 4장 31절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위협 속에서 기도했을 때 땅이 진동하고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말씀을 전했습니다. 마귀는 허상이며, 우리가 담대히 맞서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거룩함:
성령은 거룩한 영이므로, 성령이 임하시면 죄가 단절되고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고 신앙생활을 했어도 성령이 없다면 무의미합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죄를 끊을 수 없고 변화될 수 없습니다. 성령이 임하실 때 비로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양과 염소: 종말의 심판
마태복음 24장과 25장은 예수님의 재림과 종말에 대한 비유를 다룹니다. 25장에 나오는 열 처녀 비유, 달란트 비유, 그리고 양과 염소 비유는 모두 주인을 오해한 비극을 공통점으로 가집니다.
특히 양과 염소 비유(마태복음 25:31-46)는 주님 다시 오실 때 모든 민족을 구분하는 심판을 묘사합니다. 오른편의 양과 왼편의 염소로 나뉘는데, 히브리적 사고에서 오른편은 하나님 편, 왼편은 사단을 의미합니다.
백보좌 심판 (요한계시록 20:11-15): 이 심판은 천년왕국 말미에 일어납니다.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모두 다시 살아나 흰 보좌 앞에서 생명책과 행위록에 따라 심판을 받습니다. 이는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마지막 날에 다시 살아나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양과 염소의 차이: 고집과 순종
주님이 양과 염소를 구분하신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염소는 고집이 세고 자기 주관이 강합니다. 영적으로 깨져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자아가 깨져야 합니다. 헌금이나 금식은 할 수 있어도, 자기 고집을 꺾고 자아를 파쇄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양은 배려할 줄 알고 우는 자와 함께 울어줄 줄 압니다. 여호수아서 14장에서 가나안 땅을 분배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비뽑기 결과에 모두 승복했던 것처럼, 양은 하나님의 뜻과 공동체의 결정에 순종합니다. 한국 교회는 자기 의견을 관철하려 하기에 주님이 부재할 때가 많습니다.
결론: 양의 삶을 살아가자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양입니까, 염소입니까? 고집과 자아가 살아있으면 인생이 영통하지 못하고 계속 부딪힙니다. 우리의 믿음은 남을 보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일대일의 관계입니다. 충만한 공동체에 있다고 해서 자신이 충만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나는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다고 인정하고, 내 생명을 다할 만큼 성령님을 갈망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성령님은 인색하신 분이 아니라, 구하는 자에게 선물로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 충만을 받아 무기력한 신앙이 강해지고, 확신 없는 신앙이 확신 가운데 서며, 흔들리는 신앙이 굳게 서서, 남은 여생 주를 위해 멋지게 달려가는 삶을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고집과 자아를 버리고 착한 열매, 선한 열매를 맺어 마지막 심판 날 오른편의 양으로 서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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