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 델타포스가 무너진 날".. 미국과 이란의 악연도 시작됐다ㅣ확률의 승부사들 ep.1

Описание к видео "세계 최강 델타포스가 무너진 날".. 미국과 이란의 악연도 시작됐다ㅣ확률의 승부사들 ep.1

세계 최강이라 불리던 미국 제1의 특수부대 델타포스는 왜 이란에게 무너졌을까? 벤처캐피털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 권오상 대표와 함께 하는 확률 경영의 역사!

==
때는 1980년 4월 24일, 여덟 대의 시스탤리온이 이란 영공으로 진입했습니다. 지난해 발생한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으로 대사관에 억류되어 있던 직원과 가족들을 구출하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작전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1급 특수부대 델타포스까지 투입되었지만, 대사관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채 끝이 나고 만 거죠. 세계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던 미국은 대체 왜 실패한 걸까요?

지금은 다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야기이지만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이란은 미국의 주요 동맹국 중 하나였습니다. 소련의 방공망을 도발하고 시험하는 작전이 이란의 공군 기지를 기반으로 펼쳐졌고요. 당시 가장 최신의 전투기였던 F-14 톰캣을 구매하는 것을 미국이 유일하게 허용한 나라가 이란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미국은 1967년부터 무기 등급으로 농축된 우라늄도 이란에 제공했어요. 유사시에 이란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만들기 위해서였죠.

문제는 1977년에 시작됐습니다. 당시 이란을 통치하고 있던 모함마드 레자 팔라비에 대한 반대 시민운동이 일어난 겁니다. 이듬해인 1978년, 이 운동은 전국전인 시위와 파업으로 확대되었고, 결국에는 유혈사태까지 벌어지게 됩니다. 팔라비는 1979년 1월, 새로운 총리를 임명하고 이란을 떠났는데요. 그로부터 얼마 뒤, 새로운 총리를 지지하는 세력과 이슬람 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를 지지하는 세력 사이에 전투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약 열흘간 이어진 전투의 승자는 호메이니였죠.

사건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암 말기 판정을 받은 팔라비가 치료를 위해 미국에 입국했는데요. 이를 미국의 또 다른 공작이라고 믿은 이란인들이 대사관을 점거하는 사태가 벌어진 겁니다. 영원한 우방일 줄 알았던 두 나라의 관계가 틀어지는 건 한순간이었죠.

초기에 미국은 침착하게 대응했습니다. 섣부르게 움직이기보다는 인질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달라는 ‘인도주의’에 호소했죠. 실제로 성과도 있었습니다. 이란이 전격적으로 13명의 인질을 석방한 거죠. 덕분에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의 지지율이 60% 이상으로 치솟기도 했습니다. 모든 게 잘 풀릴 것 같았어요.

하지만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이란이 해가 바뀌어도 남은 인질들을 풀어주지 않자 카터의 지지율이 점차 떨어지기 시작했거든요. 그해 카터는 미국 대통령 재선에 도전하고 있었습니다. 선거 전, 강력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구축하기로 마음먹은 카터는 1980년 공수 구출 작전을 명령했습니다. 이른바 독수리 발톱 작전이었죠.

독수리 발톱 작전의 난이도가 높은 건 분명 사실이었지만, 역사적으로 이런 작전의 성공사례가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1943년 이탈리아 중부의 바위산에 갇혀 있던 무솔리니를 독일군이 꺼내온 그란사소 습격, 1977년 소말리아의 모가디슈 공항에서 벌어진 인질 구출 작전 등이 대표적인 예이죠.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한 미국이 공수작전을 시도한다는 건 상상 못할 일도, 실패를 생각할 일도 아니었습니다.

자, 이제 인질을 구출할 시간입니다. 공수작전을 통해 인질을 구출하기 위해선 우선 세 가지 선결 조건이 해결되어야 했습니다. 우선 인질이 잡혀 있는 정확한 위치를 알아야 했고, 구조 대원과 구출한 인질을 수송할 이동수단이 준비되어야 했으며, 실제 작전을 수행할 특수부대가 있어야 했죠. 미국 입장에선 셋 다 충분히 해결 가능한 문제였어요. 이미 다양한 루트를 통해 인질로 붙잡힌 사람들이 대사관의 어느 건물에 있는지 모두 확인한 상태였고, 특수부대를 실어 나를 헬리콥터와 항공기의 수도 충분했죠. 게다가 3년 전인 1977년, 미국의 1급 특수부대로 손꼽히는 델타포스도 만들어진 상태였습니다.

미국은 작전을 수행할 이동수단으로 RH-53 시스탤리온 헬리콥터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완전 무장한 델타포스 93명, 그들의 임무를 보조할 인원 54명, 구출할 인질 53명 등 총 200명의 사람이 나눠 타기 위해선 6대의 시스탤리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했죠. 하지만 딱 6대만 투입하기는 꺼림칙했어요. 그동안의 경험상 실제 작전 수행 과정에서 헬리콥터가 정상 작동할 확률이 75퍼센트 정도였거든요. 미국은 이를 감안해 총 8대의 헬리콥터를 투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어요. 한 대는 주 회전 날개에 금이 가 쓸 수 없게 돼버렸고, 다른 한 대는 거센 모래 폭풍을 맞아 계기가 모두 나가는 바람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마침내 유압 계통의 누유가 발생한 헬리콥터도 생겨버렸습니다. 이제 남은 헬리콥터는 5대. 결국 최강을 자랑하던 델타포스는 힘 한번 써보지도 못한 채 작전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돌아오는 길에 수송기와 시스탤리온이 부딪혀 여러 명이 죽거나 다치는 일까지 벌어졌죠.

그런데 사실 이건 미국이 숫자 계산 하나 제대로 못해서 생긴 문제였어요. 가령, 미군이 7대의 시스탤리온을 투입했다고 생각해보죠. 헬리콥터가 6대 이상 작동할 상황은 7대가 모두 작동할 시나리오와 6대가 작동하고 1대가 고장 날 시나리오로 총 두 가지입니다. 7대가 모두 작동 할 확률은 0.75의 7제곱으로 13퍼센트이고, 6대만 작동할 확률은 0.75의 6제곱 곱하기 0.25 곱하기 7로 31퍼센트이죠. 시스탤리온이 6대 이상 작동할 확률은 둘을 합한 44퍼센트이고요.

같은 방식으로 미군이 8대의 시스탤리온을 투입했을 때 시스탤리온이 6대 이상 작동할 확률을 계산해보면, 그 확률은 약 68퍼센트에 불과합니다. 다시 말해, 이 작전은 3번 중 1번은 실패할 운명이었던 겁니다. 참고로 시스탤리온 8대가 아닌 10대를 투입했다면 92퍼센트, 12대를 투입했다면 99퍼센트까지 성공 확률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미국 해군은 12대도 아닌 총 30대의 시스탤리온을 가지고 있었고요.

이 사건은 몇 가지 여파를 남겼습니다. 우선 다음 날 사막에 남겨진 시스탤리온과 허큘리스의 잔해를 발견한 이란은 사태를 파악한 뒤 분노와 기쁨을 동시에 표출했습니다. 특히 호메이니는 “알라께서 모래바람을 보내셨다”며 가뜩이나 미국에 반감 가득한 이란인들을 부추겼죠. 고장 나는 바람에 미군이 놓고 간 시 스탤리온도 이란 차지였습니다. 모래 바람이 신의 선물이었다면 멀쩡한 시 스탤리온은 미국의 선물이었죠.

하지만 더 큰 파장은 미국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이 알려진 뒤 지지율이 급격히 하락한 카터가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한 거죠.

Комментарии

Информация по комментариям в разработк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