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 대한 모든 설명 ㅣ 모든 의심에 대한 모든 타파
알파 : 세계는 의식이고 자각입니다.
오메가 :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알파 : 일체를 차분하게 하고 귀와 가슴을 열고 집중하기 바랍니다.
세계가 있고 또 의식이 있어서 그 둘이 같다.가 결코 결코 아닙니다.
세계는 없다. 의식 자각만 있다. 입니다.
오메가 : 온 세상이 지금 이렇게 시퍼렇게 있는데 왜 없다고 합니까?
알파 : 예 있습니다. 지금 시퍼렇게 있습니다.
다만 시퍼렇게 있는 것은 세계가 아니라 의식입니다.
오메가 : 아니 그러면 사람 원숭이 강아지 나무 돌멩이 바다 별 DNA 분자 원자 에너지 공간 시간 등등 이들은 다 무엇이란 말입니까?
알파 : 이름과 모양입니다.
오메가 : 이름과 모양은 또 무엇입니까?
알파 : 이름과 모양은 항상 변하고 또 나타난 후 반드시 사라지는 무엇입니다.
그런 이유로 세계는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오메가 : 이름과 모양은 왜 나타나고 사라지고 합니까?
알파 : 변치 않고 보이지 않고 나고 죽지 않는 단일의식은, 변하고 보이고 나고 죽는 이름과 모양으로서 자기를 나타내고 자기를 체험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자기체험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단일의식은 일인다역의 한바탕 연극을 통해서 자기를 경험합니다.
오메가 : 단일의식은 가만히 있지 않고 왜 굳이 그런 연극을 통해서 자기를 체험해야만 합니까?
알파 : 단일의식은 사무치는 사랑 외 다른 것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메가 : 그렇다면 사랑이 사랑을 체험한다는 것인데, 왜 삶은 이리도 불안 고통 공포로 뒤덮여 있는 것입니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분명하게 말을 해주기 바랍니다.
알파 :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논리 필연적 이유이고 다른 하나는 근본 이유입니다.
오메가 : 무엇이 논리 필연적 이유입니까?
알파 : 평안 즐거움 해방감을 구하는 바로 그 이유로 인해서 불안 고통 공포는 논리 필연적으로 있게 됩니다.
선택지는 둘 다 받거나 혹은 둘 다 받지 않거나 뿐입니다.
어느 한쪽만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둘 다 받든 둘 다 안 받든, 어느 쪽을 선택하든 동일 지점에 도달합니다.
오메가 : 무엇이 근본 이유입니까?
알파 : 단일의식은 자기체험을 사랑하여, 일인다역 연극을 고안했고, 수많은 배역 마다마다 몰입한 나머지, 자기가 무엇인지를 잠시 잊었기 때문입니다.
오메가 : 망각에서 벗어나 기억을 되찾으면 불안 고통 공포가 사라지고 자유와 평안만이 가득하게 됩니까?
알파 : 그런 희망과 생각은 앞서 말한 필연적 오류입니다.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동시에 일체 모든 것이 바뀌게 됩니다.
겉모습은 그대로일지언정, 그 알맹이 그 의미 내용은, 하늘과 땅이 뒤바뀌듯 안과 밖이 뒤바뀌듯 온전히 반전(反轉)됩니다.
배역은 맡겨진 역할을 이전에 하던 모습대로 수행합니다.
동시에 이제는 기꺼이 어둠과 빛 모두를, 생명이 기뻐 춤추는 축제의 마당에 초대합니다.
오메가 : 망각에서 벗어나 본래 기억을 되찾는 일이 있습니까?
알파 : 그런 일은 언제 어디서든 매 순간 일어납니다.
오메가 : 그런 일은 어떻게 일어납니까? 그 원인과 방법은 무엇입니까?
알파 : 몰랐던 것을 알게 됨이 아니라, 본래 알던 것을 알게 되는 것이므로 특별한 원인과 방법은 없습니다.
그저 다정하게 들려오는 ‘자기 속삭임’에 반응해서 알던 것을 알기로 선택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자기자각이 전부입니다.
오메가 : ‘깨달은 사람’이나 ‘선각자’, ‘성인’, ‘현자’, ‘도사’ 등등 이름 여하를 떠나서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혀서 몰랐던 진실을 알게 되는 일이 있지 않습니까?
알파 : ‘깨달은 사람’, ‘선각자’, ‘성인’, ‘현자’, ‘도사’ 등등 ‘다른 사람’,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런 것은 일인다역의 연극에 등장하는 임시 가상적 배역입니다.
“그렇다고 하자”라며 설정한 배역입니다.
배역은 배역이지 실제로는 없습니다.
실제로 있는 것은 1인 연기자 단일의식입니다.
실제로 있는 것은 1인 연기자 단일자각입니다.
실제로 있는 것은 1인 연기자 단일깨달음입니다.
배역 서로 간에 교섭 관계하는 모습을 취하든 배역 단독 모습을 취하든, 그 어떤 겉모습이든지 불문하고, 실제로는 단일의식이 단일의식에게 속삭이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든, 사람과 나무 사이든, 생물과 무생물 사이든, 무생물과 생물사이든, 그 어떤 겉모습과도 상관없이, 실제로는 단일의식이 단일의식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안과 밖은 다른 무엇이 아닙니다.
영원토록 자기자각 홀로 있습니다.
오메가 : 사실이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도, 진실을 까맣게 모르는, 그래서 깨닫지 못한, 그래서 고통에 신음하는 오메가라는 사람이, 진실을 아는, 그래서 깨달은, 그래서 자유로운 알파라는 사람과 서로 말을 주고받고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네요?!
알파 : 지금 자각이 사람인 오메가의 입을 통해서, 자각이 자각의 입을 통해서 자각을 드러냈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오메가 : 그러면 우리의 문답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질문과 답변이라는 모습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각의 자문자답, 자각의 자기자각이라는 것이네요?!
알파 : 지금 자각이 사람의 입으로, 자각이 자각의 입으로 진실을 말하였습니다.
지금 자각이 자기 배역을 통해서 자기를 자각하였습니다.
오메가 : 그렇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을 감출 수 없습니다.
진실을 듣고 싶지만, 진리를 알고 싶지만, 삶과 죽음을 해결하고 싶지만, 그래서 삶과 죽음에 자유롭고 싶지만, 경제적, 신체적, 정신적, 환경적, 성격적 장애로 인하여 진실의 속삭임을 듣지 못하는 운명에 처한 사람들은 어떻게 구제받을 수 있습니까?
가령 궁벽하고 척박한 오지 환경에서 태어나 평생을 오로지 생계를 위한 노동에만 종사하느라 진실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들을 기회조차 못 가진 채 죽을 운명인 사람들을 생각하면 연민이 복받치고 스산한 슬픔이 가슴에 사무칩니다. 또 그런 척박한 환경은 아닐지라도 아예 진실에 대해서는 눈곱만치 관심도 없이 온갖 야비한 짓을 도맡아 하면서 이 세상에서 위선적이고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까?
알파 : 지금 자각은 잠시 다시 오메가라는 사람 배역으로 몰입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진실을 듣고 기억한 이상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자각이 자각에게 답변합니다.
‘깨달은 사람’, ‘성스러운 사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진실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들을 기회조차 못 가진 채 죽을 운명인 사람’, ‘진실에 대해서는 눈곱만치 관심도 없이 온갖 야비한 짓을 도맡아 하면서 이 세상에서 위선적이고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사람’,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실제 있는 것은 온갖 이름과 모습의 배역을 연기하는 단일자각입니다.
단일자각은 그 배역을 연기하고 싶다는 최초의 선택을 유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진실의 속삭임은 척박한 오지든 야비한 위선자든 묻지 않고 크게 메아리치며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영원한 지금 이 순간에 말입니다.
다만 듣지 않는 선택, 선택하지 않는 선택이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입니다.
속박될 자유, 몰입할 자유가 없는 자유는 자유조차 아니기 때문입니다.
언제든 순간 안에서, 그 어떤 배역 몰입 안에서도, ‘진실의 속삭임을 듣는다’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로 있도록 그냥 놓아두기 바랍니다.
아무런 문제도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오메가라는 배역입니다.
“모든 배역을 다 구제하고 났더니, 한 배역도 구제받은 바가 없다”라는 진실이 눈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처음부터 속박도 없었고 구제도 없었던 것입니다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처음부터 실제로 있었던 것은,
온전한 자유
온전한 자각
온전한 깨달음
온전한 사랑
만이 홀로 있었습니다.
이 세상 전부 우리 모두 바로 그것입니다.
오메가 : 죽음은 무엇입니까?
알파 : 자각께서 자각을 통해서 자각으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메가 : 죽음 그런 것은 없습니다.
죽음의 공포 그런 것도 없습니다.
사람의 죽음은 그저 배역의 역할이 다 마쳐 진 것입니다.
배역은 잠시 배역이므로 죽을 수 없습니다.
배역이 어찌 죽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상상입니다.
단일자각은 시작 없는 시작부터 끝없는 끝까지 홀로 “있습니다”
단일자각은 난 적이 없으므로 죽은 적도 없습니다.
자각은 삶도 모르고 죽음도 모릅니다.
자각은 천진하고 영원한 생명입니다.
연기자에게도, 배역에게도, 그 어디에도 죽음은 없습니다.
삶과 죽음은 단일의식이 펼치는 장엄하고 화려한 생명 축제의 장에 초대된 배역입니다.
의식자각은 삶과 죽음이라는 이름과 모양이 아닌, 전혀 다른 모습의 이야기를 꺼내 우리에게 들려줄지도 모릅니다.
의식자각은 삶과 죽음의 모습이 아닌, 전혀 다른 방식의 이야기를 꺼내 자기 자신에게 들려줄지도 모릅니다.
오메가 : 자각이 자각에게, 알파께 오메가가 깊고 깊은 감사의 절을 올립니다.
Информация по комментариям в разработк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