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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근(1918년~1996년)

17세 되던 해에 동편제 판소리 명창 김정문 문하에서 소리를 배운 강도근은 흥보가 중 ‘제비 후리는 대목’이 특기이다. 20세 때 상경하여 조선성악연구회에서 당대 최고 명창의 한사람인 송만갑 선생에게 판소리 다섯마당을 두루 배웠고, 25세 때에 구례로 가서 박봉술의 형 박봉채(朴奉彩)에게 판소리를 지도받았다. 지리산 쌍계사 일대에서 7년여 동안 혼자 공부한 후 하동으로 유성준을 찾아가 판소리 수궁가를 배웠다.

해방을 전후해서 동일창극단·조선창극단·호남창극단 등을 전전하였으며 해방 후에는 목포·이리·여수·순천 등지의 국악원에서 창악 강사를 지냈다. 1973년 이후 남원국악원을 창립하여 강사를 지냈고, 틈만 나면 선유폭포 등 지리산 등지를 다니며 연습을 한 노력파였다.

조선시대 명창으로 추앙되던 송만갑의 판소리 전통을 이어받아 동편제 소리를 고수해 오던 그는 환갑을 넘겨 60대 중반에서야 판소리계에 이름을 내기 시작한 은둔의 예술인이기도 했다.

그는 돈이나 명예에 초연한 고집스러운 소리꾼으로, 타계하기 직전까지 농사꾼임을 자처하며 고향 남원에서 농사를 지어온 것으로 유명하다. 강도근 후계자 양성소를 설립, 동편제 소리의 맥을 이어온 판소리 동편제의 마지막 대가이다. 안숙선(국립창극단장)은 초기에 그가 길러낸 제자 중의 한 사람이다.

1953년 부산 전국판소리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 1981년 한국국악협회 국악공로상, 1985년남원시민의 장 문화장, 1986년 KBS국악대상, 1992년 동리대상 등을 수상하였다.

198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았다. 자그마한 키에 다부진 모습으로 약간 쉰 듯하면서도 청청한 수리성과 가늘고 단단한 상청을 이루는 성음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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