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한 갈피를 넘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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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에 살며 들숨 같은 일상을 시로 날숨하는
글을 써야 사는 여자, 나목 임현숙 시인의 창작 시낭송입니다.

세월의 한 갈피를 넘기며

임현숙


발걸음이 허둥거린다
십이월이다
욕망의 깃털을 다 떨군 나무가
성자의 눈초리로 깃털 무성한 사람을 바라본다

나무처럼 살고 싶었으나 삶의 꼭두각시였던 나
빗장 걸린 일상의 쳇바퀴에 배설물이 그득하다
오래 묵어도 삭지 않는 것들은
왜 고약한 냄새가 나는 걸까
쪼그라진 심장에 더께더께 얼룩진 상흔
인연의 숲에서 긁히고 베인 심장을 치료한 것은
지극히 사소한 것이었다
귓불 적시는 빗방울 소리라던가
한 줄의 시구에서 아롱지던 햇살꽃
그리고
그냥 생각나서 걸었다는 누구의 전화 같은
스쳐 가는 것들이 수호천사였다
고맙구나 내 곁을 스치는 것이여
어쩌면 내일엔
닿지 않는 것을 탐하던 붉은 깃털을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갈지자 그리던 신발 콧등 나란히
세월의 한 갈피를 넘기며
뒤안길로 점점이 흩어지는 붉은 깃털들.

-림(2024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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