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HD역사스페셜 – 일본은 왜 백제부흥전쟁에 사활을 걸었나 / KBS 20051014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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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강구전쟁, 동아시아 모든 세력이 충돌한 최초의 국제대전!
백제는 660년 13만 나당연합군(신라와 당의 연합)의 침공으로 멸망한다.
그러나 백제부흥운동의 활발한 전개로, 곧이어 주류성을 수도로 하는 ‘백제부흥국’을 다시 세우게 된다. 이에 신라와 당은 2차 연합군을 결성, 백제를 완전히 멸망시킬 준비를 한다. 바로 이 백제부흥세력과 나당연합군이 663년 한반도 서남해 백강(지금의 동진강)에서 맞붙은 전쟁을 ‘백강구 전쟁’이라 한다. 일본(왜)은 이 전쟁에서 백제부흥군을 위해 대규모 파병을 강행했다.

- 왜, 백강구 전쟁에 국가의 명운을 걸다
2년 반의 준비기간과 1,000척의 전함, 2만7천명의 병력 파병! 왜의 파병 준비과정이나 규모를 보면 단순한 군사 원조 이상이다. 게다가 당시 일본은 완전히 통일되지 않은 상황, 그럼에도 천황은 660년 백제가 군사 지원을 요청하자, 즉각적으로 모병에 나섰다. 천황은 파병 준비를 위해 항구인 난파궁으로 옮기고 직접 후쿠오카까지 오가며 파병 준비를 독려했다.
이렇게 총력을 다해 준비한 지 2년 5개월 만에 1,000척의 배와 2만7천 명의 군사가 백제로 출발했다. 당시 일본 인구가 500만임을 감안할 때,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규모 파병이었다.

- 참전의 주체는 백제계 도래인?
일본이 파병한 이유를 두고, 한일 역사학계는 극명한 해석의 대립을 보인다.
일본 사학계는 이 전쟁을 침략 사관의 논거로 삼기도 하는데...
일본 오카야마현 길비군에는 제명천황이 백강구 전쟁 모병 시 병사 2만7천명을 얻었다 해서 붙여진 ‘니만향’이라는 마을이 있다. 이곳 신사에는 백제식 유물과 축성술을 엿볼 수 있는 등 백제 도래인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게다가 8세기까지 일본 인구 70~80%가 한반도 도래계라는 논문이 일본인에 의해 발표됐다.
그렇다면 파병은 백제 도래인들의 조국구원전쟁이란 말인가? 현지취재를 통해 파병 주체의 성격을 파헤친다.

- 백제파병에 적극적으로 나선 천황가
백제의 파병 요청을 받을 당시 제명 천황은 60대 중반을 훨씬 넘긴 여왕이었다.
당시 국내의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제명천황’은 강한 의지로 파병을 준비했다. 그리고 제명천황이 죽자, 아들 천지천황이 어머니의 뜻을 이어 파병을 이루어냈다. 한편 제명천황의 남편인 서명천황은 일본서기에 따르면 백제궁과 백제대사를 지었고, 고대 일본의 주요 성씨들의 출신을 분석한 책에는 서명천황의 할아버지인 민달천황이 백제왕이라고 전한다. 천황은 과연 백제인일까?
백제와 일본 천황가의 관계, 그 진실을 추적한다.

HD역사스페셜 23회 – 일본은 왜 백제부흥전쟁에 사활을 걸었나 (2005.10.14.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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