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리, 좋은 화분 (민음의 시 279,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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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자라지 않는 왼손을 가졌다

항상 무언가를 다짐하듯 불끈 쥔 모양처럼
절대 펴지지 않는 주먹이었다

모래알들이 나선을 그리며 빙빙 떠오르는 운동장에서
나는 내가 누군가에게
반대이거나 완벽이거나 기형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너를 처음 본 사람들이 없는 손가락에 대해 물었을 때
모두 잘렸다는 말과 다르게
담담하게 너는 말했지, 태어날 때부터 없었지

딱 한 번 그 손을 만진 적이 있다
손가락이 있어야 할 자리에 붉은 꽃봉오리가 피어 있었고
이미 무언가를 소중하게 움켜쥐고 놓질 않았다

손등과 손바닥을 구분하는 태도가 무의미한 자리만이
고운 흙을 품을 수 있다는 듯

죽은 시간에 유약을 발라 분갈이를 하는 자

그러니 없는 지문은 잘 심어 두었다고 하자
슬픔의 마디들을 부러뜨려 식물을 키울 토대를 만들었다고 하자

겨울에 너는 눈뭉치 같은 왼손을 더 자주 주머니에 찔러 넣겠지만
그 사이

부르지 않아도 태어나는 이름이 있다

좋은 화분, 이기리 (민음의 시 279,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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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5일의 글은 이기리 시인의 ‘좋은 화분’ 입니다. 저는 2022년도에 나온 시인의 ‘젖은 풍경은 잘 말리기’를 더 잘 읽었는데요, 팬데믹 시국의 시작이었던 2020년도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이며 젊은 시인의 첫 시집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겹쳐져 괜히 더 애정을 쏟아 붓고 눈을 크게 뜨고 책을 읽게 하는 것 같아요.
학창시절을 기억하면, 빈 말로도 ‘좋았다’고 말할 수 없는 분이 또 있을까요? 저는 학창시절을 좋게 기억할 수가 없는데요, 그래서 이 시집의 폭력적인 운동장과 아픈 교정이 너무나 애틋하고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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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좋은시 #책읽기 #좋은글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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