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사] 조국과 자유를 사랑한 롤랑부인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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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는 분열

1793년으로 접어들면서 프랑스 대혁명은 야생마처럼 맹목적으로 앞으로 달려갔는데 보수적인 지롱드파는 고삐를 늦추고 싶었고 자코뱅파는 더 빨리 달리게 하고 싶었습니다.
양측은 외부 침략 세력에 맞서 잠시 분열을 멈추고 함께 싸웠지만 연합은 잠시뿐으로 전쟁으로 뭉친 그들은 다시 전쟁으로 갈라졌습니다.
루이 16세가 처형당했다는 소식이 전 유럽을 뒤흔들었는데 영국이 제일 먼저 프랑스 대사를 추방해 외교 분쟁을 일으켰고 1793년 2월, 프랑스 국민공회는 영국과 네덜란드에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영국은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에스파냐, 포르투갈 등과 함께 반프랑스 동맹을 조직했는데 프랑스는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와 대치하는 상황에 놓여 상황이 상당히 좋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국내의 경제 위기와 계속되는 반란, 농민 봉기로 공화국은 거의 붕괴 위기에 직면했으며 지롱드파와 자코뱅파의 싸움도 날로 격화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1793년 4월, 지롱드파에 속한 프랑스 장교 뒤무리에(Dumouriez)가 전쟁에서 패한 후 적군에 투항하자 자코뱅파는 이를 빌미로 지롱드파를 비난했습니다.
뒤무리에와 관련된 모든 사람을 재판에 회부할 것을 요구했는데 지롱드파가 장악한 국민공회가 자코뱅파와 첨예하게 대립하자 즉시 조사단이 조직되었습니다.
그리고 음모와 반란 혐의로 파리공사의 지도자 에베르(Jacques Hébert)를 체포했는데 분노한 자코뱅파는 조사단 해산과 지롱드파의 체포, 빵 가격 제한 시행 등을 강력하게 요구했습니다.
또한 국민자위군과 노동자들을 조직하여 국민공회를 포위했으며 전 도시를 수색했고 지롱드파의 주요 지도자들을 속속 체포했는데 유명한 롤랑 부인도 이때 체포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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