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가 궁금하면 제일 먼저 가보세요! 국립김해박물관

Описание к видео 가야가 궁금하면 제일 먼저 가보세요! 국립김해박물관

참고자료 : 국립김해박물관 홈페이지

00:20:37 금동관, 5세기, 부산 복천동
00:20:52 가야 귀걸이, 관, 허리띠
00:21:23 가야 목걸이, 팔찌, 발찌
00:21:28
00:21:30 질박하고 검소한 가야 사람들의 삶.


00:22:24 가야 도성과 궁성의 모습이 드러나다.

00:23:15 땅을 일구고 수확하다.

00:23:51 물고기를 잡고 조개를 캐다.

00:24:06 조개더미 (패총).

00:24:50
00:24:53 가야 토기. 가야 토기를 만드는 기술은 일본의 고대 토기인 스에키가 만들어지는 데 영향을 주었습니다.
00:25:00 인고의 시간으로 만들어 낸 가야토기(항아리, 함안 말이산)

00:25:42 형태도 무늬도 가지각색.

00:25:57 따로 또 같이.

00:26:14 무덤에 껴묻은 토기들
00:26:19 쇠를 부려 희망과 미래를 담다.

00:27:18 활시위를 당기다.

00:27:47 무기, 나라를 지키고 권위를 드러내다.

00:28:09 배모양 토기, 창원 현동, 길이 14.6cm
00:28:26 배모양 토기, 김해 여래리, 길이 22.7cm
00:28:32 동아시아의 바다를 누빈 가야 배.

00:29:20 자율과 공존의 물길.
가야의 고분군에서는 중국을 비롯하여 북방 유목민, 왜(일본), 신라, 백제, 고구려 등과 교류한 흔적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김해 대성동·양동리 유적에서 나온 중국·왜의 물건과 로만 글라스는 금관가야가 국제적으로 교류했음을 보여 줍니다. 대가야 지역인 고령 지산동 유적에서는 챙 달린 투구 같은 일본계 금속 제품과 오키나와산 야광 조개로 만든 국자 등 5세기 무렵의 유물이 확인되었으며, 합천 옥전 무덤에서는 서역과 관련된 유리잔이 나왔습니다. 일본에서도 토기, 덩이쇠 등 철로 만든 가야계 유물이 다양하게 나와 가야 토기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스에키가 유행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본 규슈부터 긴키에 이르는 지역에서는 대가야계 금동관이나 금귀걸이, 금은제 말갖춤 등 5세기 무렵 이후 유물이
00:30:14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여러 가야가 주변 나라들과 외교적 관계를 활발히 맺었음을 말해 줍니다.
00:30:27 배모양 토기, 창원 현동, 길이 14.6cm
00:30:44 말도 용맹한 전사.
가야의 김해 대성동·양동리 유적에서는 4세기 무렵 쓰인 재갈과 발걸이, 5세기 무렵 쓰인 장식용 말갖춤을 볼 수 있습니다. 가야 유적에서 보이는 말의 갑옷과 투구는 당시 철기를 만드는 가야의 기술이 최고였음은 물론 가야가 주변 나라들과 전쟁을 치열하게 벌였음을 알려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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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1:17 가야 전사의 상징, 갑옷과 투구
가야의 갑옷은 처음에는 가죽이나 나무로 만들다가 쇠를 다루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철 갑옷도 만들었습니다. 갑옷은 철판 형태에 따라 판갑옷과 비늘갑옷으로 나뉘는데, 철판을 연결할 때는 못이나 가죽끈을 이용했습니다. 갑옷에는 장식도 했는데, 새나 고사리무늬로 장식된 갑옷은 주로 영남 지역에서 확인됩니다. 지금 남아 있는 갑옷의 무게는 4~5kg 정도이지만, 쇠가 녹슬기 전에는 더 무거웠을 것입니다. 머리를 보호하는 투구는 세로로 길게 자른 철판을 가죽끈이나 못으로 연결해 만들었으며, 윗부분은 깃털로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투구의 종류는 세로로 긴 철판을 엮어 만든 것에 반원 모양의 판을 얹은 투구, 앞쪽이 뾰족하게 튀어나온 투구, 모자 앞에 챙을 단 투구, 관모 모양의 판을 붙인 투구 등이 있습니다.
00:32:07 다른 나라의 낯선 향기가 머물다.
남해안 일대 뱃길을 따라 왜(일본)와 관련된 유물이 나오고, 일본에서는 가락국(대가야)의 귀걸이가 여러 곳에서 나왔습니다. 이는 왜와 가야 사람들이 꾸준히 오가며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특히 고대 일본의 토기인 하지키와 스에키는 우리나라 남부 지역에서 많이 확인됩니다. 스에키는 단단한 회청색 가야 토기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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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2:43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다.
상형 토기는 인물이나 동물 또는 물건의 모습을 본떠 만든 토기입니다. 오리·사슴·말과 같은 동물이나 집·배·수레·뿔 등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상을 생략·과장·추상화하여 만들었습니다. 몸통 속은 비어 있고 액체를 넣거나 따르도록 구멍이 나 있습니다. 무덤이나 의례 장소에서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일상에서 썼던 것이 아니라 죽은 이의 안식과 영혼의 승천 등 사후 세계에 대한 바람을 담은 의례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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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3:21 글과 기호를 사용하다.
종이를 발명하기 전 사람들은 나무나 대나무를 다듬어 종이처럼 썼습니다. 창원 다호리 유적에서 붓과 글자를 지울 때 쓰는 손칼이 나와 기원전 1세기 무렵에 이미 문자를 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변한이 중국과 교역할 때 문자가 더욱 중요했을 것입니다. 가야 유물에는 글자가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예로는 김해 양동리 유적의 청동 세발솥에 새겨진 ‘서구궁西口宮’, 합천 저포리 유적의 항아리에 새겨진 ‘하부사리리下部思利利’,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없는 긴목항아리에 새겨진 ‘대왕大王’, 산청 하촌리 유적의 토기에 새겨진 ‘이득지二得知’ 등이 있습니다. 이런 글자들은 가야의 정치·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입니다.
00:34:09 눈으로 한 번, 귀로 또 한 번.
잔 아랫부분에 흙구슬(흙으로 만든 방울알)이 들어 있어서 방울잔이라고 합니다. 먼저 구운 흙구슬을 넣어 잔을 만든 후 구웠습니다. 흔들 때마다 들리는 청아한 소리에 절로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을까요? 방울잔은 단순히 음료를 담아 마시는 용도보다는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맛을 즐기는 용도로 보입니다. 또한 무당들이 굿을 할 때 쓰는 방울처럼 티 없이 맑고 깨끗한 소리로 귀신을 쫓을 때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소리와 맛을 함께 즐긴 가야인의 멋이 느껴지지 않나요?
00:34:44 가야 사람들은 무엇을 먹었을까?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가야 사람들이 밭을 갈아 곡식을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변진조의 “땅이 기름져 오곡을 재배하기에 적합하다.”라는 기록도 당시 가야에서 농사를 많이 지었음을 보여 줍니다. 문헌 기록과 고고학 자료에서 가야 사람들이 오곡(쌀·보리·조·콩·기장)과 과일, 채소 등을 먹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야 사람들은 이 밖에 소·돼지를 비롯한 가축, 사냥한 멧돼지·사슴, 산이나 들에서 모은 밤·도토리, 강이나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조개 등도 먹었습니다. 가야의 집터에는 음식을 만드는 부뚜막이 있었으며, 부엌 신(조왕신)을 모셨다는 문헌 기록으로 보아 부엌이 집 안에서 가장 신성한 공간으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00:35:32 영혼의 전달자.
'삼국지' 위서 동이전 변진조의 기록을 보면 당시 사람들은 새가 죽은 사람의 영혼을 저승으로 안내한다고 믿었던 듯합니다. 새를 죽은 이의 영혼을 이끄는 전달자이자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신성한 존재로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새를 본떠 만든 토기를 죽은 이와 함께 무덤에 넣었습니다. 새 모양 토기는 속이 비어 있고 등과 꼬리 부분에는 구멍이 있어 액체를 넣거나 따를 수 있습니다. 새 모양 토기를 목 부분을 자르고 넣거나 머리 부분만 넣기도 한 것을 보면 새와 관련한 의례가 다양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00:36:10 의례는 집 안이나 집 주변, 농경지, 무덤, 산, 강, 바닷가 등 당시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에서 치러졌습니다. 가야 사람들은 흙 인형, 모양을 본떠 만든 작은 토기와 철제품, 점을 칠 때 쓰는 뼈 등을 의례에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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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6:34 집모양토기, 5세기, 창원 석동, 다락집의 형태
00:37:00 나가는 길에 영상실이 있습니다.
00:37:04 해상왕국, 소년의 꿈 이라는 영상인데요. 2배속으로 보시겠습니다.
00:38:55 영상보고 나왔습니다.
00:39:01 책을 보며 쉴 수 있는 공간이 나옵니다.
00:39:08 시각장애인을 위한 체험 모형도 있네요.
00:39:15 문화재 관련 책들입니다. 시간 많을때 있기 좋겠네요.
00:39:29 만남의 광장같은 카페도 있어요.
00:39:35 밖으로 나왔습니다.
00:39:41 긴 복도에 사진들이 있네요.
00:39:53 긴 복도를 지나 특별전을 보러 갑니다.
00:40:27 세계유산 백제, 세계유산 가야 라는 전시를 보러 왔습니다.
00:40:31
00:40:47 현수막이 아주 거창하네요. 기대가 됩니다.
00:40:56 세계유산 백제, 세계유산 가야 특별전 입장했습니다.
00:41:08 백제의 자연이라는 미디어아트인데, 뭔지 모르겠습니다.
00:41:46 백제 명품 속에서 살아난 백제의 문양. 이것도 미디어아트인데, 누워서 천장을 보도록 되어 있습니다. 문양을 보여주는건 알겠는데, 말하고 싶은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00:43:49 문양이 있는 백제기와 좀 전시되어 있구요.
00:44:04 백제역사유적지구 사진(영상도 사진이었음)이 전시되어 있네요.
00:44:36 설마 이게 끝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에 다시 들어가 봤으나 끝이었네요.
00:44:54 전시가 되게 황당하게 끝난다
00:44:57 여기가 거의 끝입니다
00:44:58 아 진짜요?
00:45:03 기대하세요
00:45:20 전시의 새로운 패러다임?
00:45:28 황당해하면서 관람을 마쳤습니다.
00:45:41
00:45:58 영상컨텐츠(미디어아트)라는게 잘 만들어 놓으면 재활용도 가능하고 여러군데에서도 쓸 수 있어서 괜찮은데.
00:46:07 대표적인 사례로 예전에 고궁박물관에서 '고궁연화'라는 전시회를 했었거든요? 경복궁의 사계절,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영상을 되게 잘 만들었어요. 그런건 두고두고 써먹을 수가 있거든요?
00:46:28 근데 저런 건 좀. 저걸 왜? 무슨 의미인지?
00:46:37 제일 모던한 형태로 만들어야 여기서도 쓰고 저기서도 쓰고 그러는 건데....
00:46:54 영상은 여기까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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