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금대싸움(임진왜란 때 신립(申砬)이 왜군을 맞아 탄금대에서 벌인 싸움), 평양성싸움(임진왜란 때 조 ·명(朝明)연합군과 왜군과의 사이에 벌어졌던 공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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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금대싸움

임진왜란 때 신립(申砬)이 왜군을 맞아 탄금대에서 벌인 싸움


1592년(선조 25) 4월 왜군이 양산(梁山)·밀양(密陽)을 거쳐 북상(北上)하자 조정에서는 황급히 순변사(巡邊使) 이일(李鎰), 도순변사(都巡邊使) 신립 등을 보내어 왜군의 진로를 막게 하였으나 중과부적이었다. 신립은 험준한 조령(鳥嶺)의 지형을 이용하여 적을 무찌르려고 하였으나, 이일이 상주(尙州)에서 패배하자 충주(忠州)까지 퇴각하였다. 4월 26일 탄금대에 배수진을 치고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왜군과 끝까지 맞섰으나 결국은 패하고(28일) 강에 투신자살하였다. 신립의 배수진에 대해서는 후일 전략적인 논란의 대상이 되어 명나라 장군 이여송(李如松)도 조령의 험한 지세를 이용하지 않고 후퇴하여, 무모한 배수진을 친 행동을 탄식했다 한다.

@평양성싸움

임진왜란 때 조 ·명(朝明)연합군과 왜군과의 사이에 벌어졌던 공방전


1592년(선조 25) 5월 서울을 함락시킨 적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선봉은 6월 11일 평양에 무혈(無血) 입성하였다. 조선측의 요청으로 원군 3,000을 이끌고 온 명나라 부총병(副摠兵) 조승훈(祖承訓)은 7월 17일 밤 적의 계략에 빠져 평양성에 입성하였다가 매복한 적의 기습을 받고 사유(史儒)·대조변(戴朝弁) 등의 장수를 잃고 참패하여 겨우 잔병을 수습하여 퇴각하였다. 명나라의 군대를 격퇴하고도 추격하지 않는 왜군의 동태를 살핀 조선측은 적의 병세(兵勢)가 떨어진 것으로 판단하고 순안(順安)의 이원익(李元翼), 강동(江東)의 이일(李鎰), 강서(江西)의 김응서(金應瑞)·박명현(朴名賢), 대동강 수군(水軍)의 김억추(金億秋) 등이 평양 서윤(庶尹) 남부홍(南復興)이 모병한 2만 병력을 이끌고 8월 1일 4면에서 평양성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이 싸움도 일진일퇴만 거듭하였을 뿐 평양성을 공략하지 못하고 양측은 9월 1일부터 10월 20일까지 휴전하기로 합의하였다. 1592년 12월 말 압록강을 건너온 명나라 제독(提督) 이여송(李如松)의 4만 병력과 조선측 도원수(都元帥) 김명원(金命元) 휘하의 8,000병력, 승장(僧將) 휴정(休靜:西山大師)·유정(惟政:四溟堂)이 이끄는 2,200병력은 1월 6일 총공격을 감행하였다. 싸움은 주야 3일간 혈전을 거듭하여 4일째인 1월 9일, 적은 1만 5000의 병력 가운데 1만 명의 전사자를 버려 두고 퇴각하였다. 이로써 평양성은 실함된 지 7개월 만에 재탈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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