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 한옥 정세권 Bukchon, Hanok, Jeong Se-g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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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관광객들이 서울 5대 궁궐과 함께 가장 많이 찾는 곳인 북촌과, 아름다운 한옥, 그리고 한옥집단지구 건설로 항일독립운동을 했던 정세권 선생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입니다.
국내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북촌, 인사동, 익선동 등 서울 한옥의 상당수는 정세권 선생이 건축했습니다.
주택난이 심화된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일본식 집을 지어 거주지를 확대하려고 하자 정세권 선생은 조선 고유의 주거 양식을 지키기 위해 도시형 중산층 한옥인 ‘조선집’을 건설해서 보급했습니다.
일제 때 몰락한 왕족, 친족, 양반들의 규모가 큰 전통 한옥을 사들여 필지를 쪼개 그 안에 ‘ㄷ자’나 ‘ㅁ자’의 도시형 한옥들을 넣었습니다.
필지 가운데에 마당을 두고 안채, 사랑채, 행랑채 등이 담장 안에 모여 있는 큰 집인 중정식 전통한옥 대신에, 가운데에 마당을 두지 않고 건물을 놓은 중당식 작은 한옥들을 지었습니다.
도시형 한옥들은 근대식 주택과 같이 건물에 진입하면 현관을 통해 거실로 들어서는 방식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또 기둥과 보에는 얇은 규격의 목재를 쓰고, 비용이 많이 드는 전통한옥의 서까래 등 처마도 규격화된 목재로 짧게 만들고, 대신 함석을 써서 차양과 홈통을 두어 빗물이 새는 것을 막았습니다.
문과 창호는 화려한 문양으로 장식해서 유리를 끼워서 만들었습니다.
정세권 선생은 이런 방식으로 매년 300여 가구의 중산층 한옥을 대량으로 신축해서 공급했습니다.
그리고 표준 개량한옥 설계도를 완성하고, 주거 환경을 개선해 삶의 질을 높였습니다.
또 중류 이하의 계층을 위해 주택을 연부와 월부로 판매하고 전월세를 낮춰 받았습니다.
이렇게 조성된 서울 한옥집단지구에서 조선인들은 민족 고유의 일상생활을 지켜내고 민족문화를 유지,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한국 최초의 근대적 부동산 디벨로퍼였던 정세권 선생은 일제강점기 최대 독립운동 단체인 신간회, 3·1운동 이후 가장 광범위한 민족주의 운동이자 경제적 실력 양성 운동인 조선물산장려운동, 한글로 언어 항일독립투쟁을 했던 조선어학회에도 참여하고 회관을 기증하는 등 재정을 지원했습니다.
조선어학회는 정세권 선생이 제공한 회관에서 『조선말 큰 사전』 편찬 사업을 계속해서 16만 개에 달하는 우리말 어휘의 뜻풀이를 완료하였고, 출판사에 넘겨 조판까지 마쳤습니다.
일제가 조선어학회 회원과 관련 인물들을 검거하고 재판에 회부해 탄압하는 조선어학회 사건을 일으키자 정세권 선생도 고문을 당하고, 재산을 몰수당했습니다. 일제는 정세권 선생의 건축 면허증도 박탈했습니다.
북촌, 인사동, 익선동 등을 방문하는 방문객들이 정세권 선생이 왜 한옥집단지구를 개발했는지, 자신이 번 돈을 왜, 그리고 어떻게 민족문화와 독립운동을 위해 썼는지를 되새기면 서울 한옥 집단지구의 아름다움은 더욱 크게 다가올 것입니다.

북촌 # 한옥 # 정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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