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역사스페셜 – 대가야 최후의 왕자 월광은 어디로 갔나 / KBS 20010421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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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가야의 마지막 왕자, 월광은 어디로 갔나
신라 패망후 금강산에 들어가 풀뿌리를 연명하며 살았던 마의 태자가 신라의 마지막 왕자라면 대가야 패망 후 가야산에서 말년을 보냈던 월광태자는 대가야의 마지막 왕자이다 그 월광태자의 대가야는 과연 어떤 나라였을까?
몇 개의 작은 나라들이 연맹체를 이루고 있던 가야사에서 김수로왕의 금관가야와 함께 강성했던 나라 대가야. 6가야 중 금관가야가 전기의 맹주였다면 대가야는 후기의 맹주로서 위세를 떨쳤다. 그동안 기록된 것이 거의 없어 잘 알려진 바는 없지만 계속되는 대가야 유물의 발굴로 하나씩 그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지난 1997년 고령의 지산동 고분에서는 놀랄 한만 발굴이 이뤄졌다.
그것은 바로 대가야의 고령 지산동 44호분의 발굴이다.
대가야가 대단한 세력을 가진 고대왕국이었음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35구의 유골이 발견된 것이다. 그 유골들은 금제품을 착용한 상태로 발굴되어 순장된 주인공들이 꽤 높은 신분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강력한 왕권중심사회로 발전하던 대가야는 6세기 중엽 신라에 멸망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마는데... 그 후 월광태자는 가야산 자락에 절을 짓고 그 한 켠에서 승려로 쓸쓸한 말년을 보낸다. 왜 월광은 대가야 마지막 왕자에서 승려로 여생을 보냈던 것일까?
역사스페셜에서는 진흥왕 순수비, 단양적성비, 해인사 등 아직도 남아있는 월광태자의 자취를 추적, 분석해 소설 같은 그의 행적을 알아본다. 또한 이를 축으로 신라에 투항한 김해의 금관가야와는 달리 끝까지 맞서싸운 대가야의 실체와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대가야 왕족의 후예들에 대해 집중조명한다.

◼︎ 지산동 고분(44호분)에서 발견된 35구 유골의 비밀
경북 고령의 지산동은 고분이 밀집되있는 지역이다. 그 가운데 44호분은 외형의 직경이 25~27미터, 높이가 6미터에 달하는 봉토분이다. 금제품을 착용한 35구의 인골이 발견됐다. 현재까지 발굴된 순장무덤중 최대 규모로 대가야가 강력한 중앙집권사회였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단서다. 우륵의 가야금, 갑옷·환두대도를 제작했던 철의 왕국으로서 기억되는 대가야의 고령 지산동 44호분을 통해 대가야의 역사는 새롭게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 추적! 가야산 해인사에 깃든 대가야 창건설화
지금도 가야산의 해인사 안에는 대가야의 시조신을 모신 사당인 정견천왕사가있다. 정견은 가야의 산신인데 동국여지증람에 보면 대가야의 유래를 알 수 있다.
가야산신 정견모주가 천신 이비하지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는데 대가야왕 뇌질주일과 금관국 뇌질청예였으며 뇌질주일은 이진아시왕의 별칭이다.
즉 가야산신과 천신사이의 아들이 대가야의 시조 이진아시왕이고 가야산은 대가야의 신이 살고 있는 성산이란 것이다. 그로부터 500여 년 후 대가야의 마지막 태자 월광은 불교에 입문하고 가야산의 월광사에서 불운한 말년을 보낸다.

◼︎ 비운의 마지막 왕자, 월광의 역사는 대가야의 역사
역사는 강자의 편이다. 신라에 의해 패배의 역사를 가진 대가야는 그런 이유로 체계적으로 정리된 왕의 계보가 없다. 단 삼국사기와 일본서기 등에 단편적으로 보이는 왕명(王名)으로 취재진은 대가야왕의 계보를 조심스럽게 복원해볼 수 있었다. 결과 월광의 모계는 신라인이었음이 밝혀졌는데.. 대가야와 신라의 결혼동맹으로 월광태자의 계보가 만들어졌는데 거슬러 올라가면 대가야국 월광은 가야시조인 산신 정견의 10대손이며 아버지는 이뇌왕으로 신라에 구혼하여 이지배의 딸을 맞아 태자를 낳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가야 마지막 태자 월광이 마지막 왕 도설지임을 알려준다. 월광 어머니의 나라 신라는 대가야 복속을 위해 공격한다. 내부의 친백제 세력과의 정치적 혼란으로 월광은 신라로 망명하며 그 이름은 단양적성비에도 보인다. 그 후 정치적 목적으로 맺은 백제와 신라의 결혼동맹은 관산성 전투를 마지막으로 모두 깨지고 만다.

◼︎ 대가야 최후의 전투, 관산성 전투 그 후의 이야기
554년 백제와의 동맹으로 대가야는 오랜 동맹관계에 있었던 신라와 마지막 대접전을 펼친다. 그러나 그 결과는 대가야와 백제의 대패로 났으며 대가야는 몰락의 길을 걷는다. 그 후 사다함을 필두로 가야토벌에 나선 신라의 보복은 대가야 일대에 피바람을 일으켰고 결국 대가야는 최후를 맞는다. 그 후 민심수습을 위해 대가야의 허수아비 왕으로 월광을 세운다.
대가야 마지막 왕 월광는 결국 대가야의 근원인 가야산에 조그만 절을 짓고 승려로 쓸쓸한 여생을 보낸다. 그와 더불어 패배한 나라 대가야도 잊혀졌다.
대가야 마지막 왕자 월광을 통해서 오랜 침묵을 지켰던 고대왕국 대가야의 참모습을 알아본다.

역사스페셜 113회 – 대가야 최후의 왕자 월광은 어디로 갔나 (2001.4.21.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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