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 한국사 321회] 울산성 전투 가토기요마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feat 진린이 사랑에 빠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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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난중일기에 의하면 31척, 소 요시토시의 보고에 의하면 100척의 함선이 침몰, 반파된 전선도 100여 척으로 수천 명의 군사들이 죽거나 다쳤다.
반면 조선수군은 전사자 10명 부상자 3명이었다.
이것이 13척의 배로 333척의 왜적을 물리친 명량해전이다.
또다시 이순신에게 대패한 일본수군은 남해, 서해를 통한 진격이 좌절되었고 육군은 또다시 보급에 큰 차질이 생겼다.
그리고...
전쟁의 원흉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몸져누워 임종을 앞두었다.
"이 늙은이가 눈물로 호소하네... 내 아들 히데요리를 잘 부탁하네..
그리고 조선에 있는 우리 군사들은 모두 철군하.... 라...!"
기다리고 기다렸던 말이었다. 조선은 물론 일본도 더 이상의 전쟁을 원치 않았다.
정유재란 이후 일본은 전라도를 장악하고 수륙양공책으로 한반도를 집어삼킬 계획이었으나
이순신에 의해 좌절되며 더 이상 진군할 수 없었다.
이에 해안가의 여러 왜성으로 들어가 농성했지만 이순신이 다시 바다를 장악했으니 보급이 문제였다.
그렇다고 육로로 돌파하기에는 조명연합군이 기다리고 있어 힘이 부족하였다.
다 때려치우고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었으니 그러지도 못했다.
모두가 원치 않았던 이 전쟁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어야 끝낼 수 있었다.
그런데 히데요시가 정말로 죽었다.
그것도 철군하라는 명을 내리면서... 일본군은 더 이상 싸울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철군 준비를 서둘렀다.
하지만 조선 입장에서는 곱게 보내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그들의 칼날에 희생되었던가?
생명이란 생명은 무조건 죽였고 그 증거로 코를 베어가 상금을 받는 후안무치한 자들이었다.
이제 목표는 뚜렷하게 나누어졌다.
일본은 최대한 피해 없이 떠나는 것... 조선은 최대한 복수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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