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18:1-16] 히스기야의 개혁과 위기

Описание к видео [왕하 18:1-16] 히스기야의 개혁과 위기

[배경이해]
열왕기하 18장부터 25장은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한 이후 남유다의 역사와 그 멸망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북이스라엘이 사라진 후 남유다가 어떤 운명을 맞이하는지, 그리고 유다의 왕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떻게 지키거나 어기는지를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18장부터 시작되는 이 기록은 남유다의 여덟 왕 중에서도 특별히 선한 왕으로 평가받는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통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 두 왕은 유다의 영적 쇄신을 위한 종교 개혁을 주도했으며, 우상 숭배를 척결하고 여호와의 율법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18:1-12] 히스기야의 선한 통치
1 이스라엘의 엘라 왕의 아들 호세아 제 삼년에,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유다 왕이 되었다.
2 그가 왕이 되었을 때에, 그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스물아홉 해 동안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 아비는 스가랴의 딸이다.
3 그는 조상 다윗이 한 모든 것을 그대로 본받아, 주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였다.
4 그는 산당을 헐어 버렸고, 돌기둥들을 부수었으며, 아세라 목상을 찍어 버렸다. 그는 또한 모세가 만든 구리 뱀도 산산조각으로 깨뜨려 버렸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 때까지도 느후스단이라고 부르는 그 구리 뱀에게 분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5 그는 주님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을 신뢰하였는데, 유다 왕 가운데는 전에도 후에도 그만한 왕이 없었다.
6 그는 주님에게만 매달려, 주님을 배반하는 일이 없이,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들을 준수하였다.
7 어디를 가든지, 주님께서 그와 같이 계시므로, 그는 늘 성공하였다. 그는 앗시리아 왕에게 반기를 들고, 그를 섬기지 않았다.
8 그는 가사와 그 전 경계선까지, 또 망대로부터 요새화된 성읍에 이르기까지, 블레셋을 모두 쳐부수었다.
9 히스기야 왕 제 사년 곧 이스라엘의 엘라의 아들 호세아 왕 제 칠년에, 앗시리아의 살만에셀 왕이 사마리아를 포위하여,
10 세 해 만에 그 도성을 함락시켰다. 곧 히스기야 제 육년과, 이스라엘의 호세아 왕 제 구년에 그들이 사마리아를 함락시킨 것이다.
11 앗시리아 왕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앗시리아로 사로잡아 가서, 그들을 할라와 고산 강 가의 하볼과 메대의 여러 성읍에 이주시켰다.
12 이렇게 된 것은, 그들이 자기들의 하나님이신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그의 언약을 깨뜨렸으며, 주님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순종하지도 않고 실천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히스기야는 25세에 유다 왕이 되어 29년간 통치합니다. 그의 아버지 아하스 왕이 우상 숭배에 빠지고 앗수르에 의지했던 것과는 달리, 히스기야는 다윗을 본받아 주님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행합니다. 특히 히스기야는 남유다 전역에서 철저한 종교 개혁을 단행하는데, 이는 그가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신뢰와 순종을 나타내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는 산당을 허물고 돌기둥과 아세라 목상 등 이방 신을 숭배하는 모든 흔적을 제거했습니다. 또한, 모세의 불뱀 사건과 연관된 구리 뱀을 파괴했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이 그 구리 뱀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히스기야는 유다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신실하고 성실한 왕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가 이러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주신 계명들을 온전히 준수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히스기야와 함께하시며, 그에게 형통함을 주십니다. 이로 인해 히스기야는 그의 아버지 아하스 왕이 앗수르 왕에게 의지했던 것과 달리, 앗수르 왕에게 저항하고 그를 섬기지 않았습니다. 히스기야는 나아가 블레셋을 정복하여 유다의 영향력을 확장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군사적 성공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그분을 신뢰한 결과로 나타난 것입니다.
반면, 9-12절은 히스기야 시대에 북이스라엘에 일어난 일을 소개하며, 그의 종교 개혁과 대비됩니다. 북이스라엘은 히스기야와 달리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우상 숭배를 지속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에게 임하게 됩니다. 북이스라엘의 호세아 왕 제7년에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를 공격하여 3년 만에 그 성을 함락시켰고, 히스기야 왕 제6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앗시리아에 의해 포로로 끌려가고 맙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역사적 패배가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여호와의 언약과 모세를 통해 명령한 모든 것을 범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18:13-16] 히스기야의 한계
13 히스기야 왕 제 십사년에 앗시리아의 산헤립 왕이 올라와서, 요새화된 유다의 모든 성읍을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14 그래서 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라기스에 와 있는 앗시리아왕에게 전령을 보내어 말하였다. "우리가 잘못하였습니다. 철수만 해주시면,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앗시리아 왕은 유다의 히스기야 왕에게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요구하였다.
15 그리하여 히스기야는 주님의 성전과 왕궁의 보물 창고에 있는 은을 있는 대로 다 내주었다.
16 그 때에 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주님의 성전 문과 기둥에 자신이 직접 입힌 금을 모두 벗겨서, 앗시리아 왕에게 주었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은 그 이후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던 앗시리아는 8년 후 다시금 남유다를 침략하여 그들의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하나씩 점령해 버립니다. 이때 앗시리아 왕 산헤립은 유다의 주요 요새 도시인 라기스까지 정복하며 유다를 압박했습니다.
이에 히스기야는 앗시리아의 압도적인 군사력 앞에서 결국 항복을 결정하게 됩니다. 그는 앗시리아 왕에게 조공을 바치겠다고 약속하며, 그 대가로 막대한 양의 은과 금을 요구받습니다. 히스기야는 이를 마련하기 위해 성전과 왕궁의 모든 은을 내어주고, 심지어 성전 문과 기둥에 입혀졌던 금까지 모두 벗겨내어 앗시리아 왕에게 바칩니다. 이는 하나님께 드려진 성전의 거룩함을 훼손하는 행위로, 히스기야가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 몰렸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장면은 앞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앗시리아에 저항했던 히스기야가 이제는 세상의 힘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시험에 실패한 모습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당시 앗시리아는 고대 근동을 지배하던 가장 강력한 제국이었으며, 유다를 보호해야 할 왕으로서 히스기야는 정치적·군사적 현실과 신앙 사이에서 갈등하는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앗시리아의 위협 앞에 자신의 신앙과 성전의 자원을 희생하여 백성을 지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오늘 묵상]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그렇게 의지하던 왕이었지만, 앗시리아의 압도적인 위협 속에서 결국 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앗시리아 왕 산헤립에게 항복하고 막대한 조공을 바치며, 성전의 금까지 벗겨내는 선택을 했습니다. 이로써 신앙적으로 굳건했던 그가 현실 앞에서 결국 신앙을 타협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깊은 교훈을 줍니다. 우리 역시 삶의 여러 위기와 압도적인 현실 앞에서 신앙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할 때가 많습니다. 마치 눈앞의 어려움이 너무 커서 신앙이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은 현실과 신앙의 갈등 속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현실과 배치되는 선택을 하는 것이 당장에는 더 나아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타협하는 것이라면, 결국 그 선택은 우리에게 더 큰 손해와 상처로 돌아옵니다. 히스기야도 조공을 바쳐 앗수르의 위협을 일시적으로 해결하는 듯했지만, 이후에도 산헤립의 위협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는 우리가 신앙의 길에서 벗어날 때 그 결과가 진정한 평안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돌아와 다시 신앙의 길을 걷기를 기다리십니다. 따라서 지금 당장의 현실에 눌려 신앙을 타협하고 있다면, 이 순간이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 믿음의 용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회복의 기회를 붙들 수 있어야 합니다.

#매일성경 #히스기야 #산헤립

Комментарии

Информация по комментариям в разработк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