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 보고드림] 노량 해전 이순신은 어떻게 싸웠나? feat 시간단위로 보고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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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8년 9월 18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었습니다.
처음은 생각보다 쉽게 조선을 뚫고 명나라로 가는듯했지만 이순신이라는 존재는 그를 절망시켰습니다.
임진왜란 7년 동안 그가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의 임종을 지켜보는 이들은 온통 반대파였고 그 가운데 어린 아들이 있었습니다.
"조...조선에서 철군하라...그..그리고 내 아들 히데요리를 잘 부탁한다."
정권을 이어갈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더 이상 이 무모한 싸움을 계속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남은 것은 오직 철수... 그나마의 병사들을 무사히 돌아오게 하여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세작들을 빈틈없이 파견했던 이순신은 히데요시의 죽음을 이미 알고 있었고 군의 철수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코 살려서 보낼 생각이 없었습니다.
"솥을 치우고 소를 잡는 등 왜적이 대대적인 철수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소! 그들을 바다 가운데로 몰아 공격한다면 가장 기묘한 계책이 될 것이오!"
이순신은 왜군들이 살아서 돌아간다면 언제든 재정비 후 다시 쳐들어올 것을 염려하였습니다.
하여 끝까지 싸워야 했습니다.
전쟁 막바지 일본군은 해안에 왜성을 쌓아 버티고 있었습니다. 사천 왜성에 시마즈 요시히로, 순천왜성에 고니시 유키나가, 울산왜성에 가토 기요마사가 그들입니다.
성은 꽤나 단단하여 조명 연합군이 여러 번 공격했지만 함락하지 못했습니다.
울산왜성은 30,000에 달하는 병력을 막아냈고 사천 왜성에서는 37,000명 순천왜성에서는 3,6000명의 병력이 스스로 물러나게 했습니다.
일본군 또한 성 밖으로 나올 여력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식량이었습니다. 안에서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바다에 이순신이 있는 한 보급도 어려웠습니다. 왜장들은 자신이 타는 말을 도축하여 주린 배를 채울 정도였으니 일반 병사들의 굶주림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이에 1598년 12월 초 순천의 고니시 유키나가는 뇌물을 써서라도 성을 빠져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선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에게 각각 뇌물을 보냈습니다.
"안전한 퇴각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다만 연락선만이라도 지날 수 있게 해 주신다면 그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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