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신] 120220 라디오 - 인생의 슬럼프, 고비를 지나고 있는 사람에게 해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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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0 박효신 주맘

00:00 사연소개
02:01 사연자에게 해주는 이야기
04:42 2000년 초(2~3월로 추정) 기사

2009년 기사 출처 :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


안녕하세요 효신 씨
저는 올해로 13년 차에 접어든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13년, 그렇다고 제 나이가 엄청 많은 건 아니에요.
저는 81년생, 서른둘됐습니다.
고등학교 때 취업해서 지금까지 다니고 있거든요.

특별한 꿈을 향한 직업도 아니고
소위 말하는 간판 좋은 회사를 다닌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재미를 느껴서 일하는 것도 아니지만
생활은 해야 하는 거니까 그래도 나름 소소한 성취감을
느껴가면서 몇 번의 고비를 넘긴 끝에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지난겨울 즈음부터 일종의 슬럼프 같은 것이 찾아와서
여지껏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어요.
13년 동안 한 번도 쉼 없이 일해와서 일까요?
이래저래 지치도 하고 조금씩 회의를 느껴갈 때쯤
부서 이동이 있었고 지금 3개월 지났는데요,
주위에서 잘한다고 해줘도 제 맘엔 들지 않고
자신감도 사라져서 일하는 데에 잔뜩 겁을 먹고 있는 상태입니다.

가족들에게 하소연하고 싶은데
비슷한 시기에 큰언니는 암 투병을 시작했고
작은 언니네 사업까지 힘든 시기를 맞았어요.
제 상태가 그런 문제들보다 심각한 건 아니니까
말을 꺼낼 수도 없고 최근엔 엄마까지 건강에 문제가 생기셔서
회복 중인 상태라 어리광이나 투정을 부릴 수도 없네요
그래서 요즘 아침에 눈을 뜨면 출근할 때까지 "할 수 있다",
"멋지게 해낼 거다" 최면 아닌 최면을 걸기도 하는데요,
그랬더니 긍정적인 에너지가 조금씩 생겨나더군요.

그런데 슬럼프에 집안 문제까지 길어지니
자꾸 다짐들도 흐려지고 맘이 약해져요
얼마나 흘러야 이 고비가 지나갈까요?
저 그땐 잘 넘겼다고 웃을 수 있겠죠?

하시면서 익명으로 보내주셨는데요
아 진짜 참 어머니도..
집안이 참 전체적으로 되게 또 힘든 그런 시기가 왔나 봐요

제가 참 말하기가 조심스럽긴 하지만
슬럼프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상황이 이럴 때는 힘들어해도
일이 손에 잘 안 잡히는 것도
누구나 당연한 일이니까요

절대 내 마음이 뭐가 달라져서
그렇게 생각은 안 하셨으면 좋겠고요

긍정적인 에너지가 계속 생기면 좋은데
사람이 그렇죠.. 네

이게 저도 그랬어요
제가 비교할 얘기는 아니지만
저도 뭐 그렇게 오래된 얘기도 아니지만

한참 정말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살다가요
어느 날 세상이 무서운지 진짜 알게 됐을 때 막막하더라고요

그냥 주위에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사람, 가족이 있고 그래도
정말 그냥 세상에 혼자 툭 그냥 버려져
툭 떨어져 있는 느낌인 거예요

막 쳐다봐 주고 있고 얘기는 해주고 있고
내 옆에 있는 것 같긴 한데
참 그게 느껴지면서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거죠 저한테

그때는 진짜 막막했어요 인생을 참
'내가 이런 일을 하면서도 이런 순간이 오는구나'
이런 생각 하면서

예를 들어 막 그런 거 있죠
막 아는 지인분들하고 운동을 하면서 회비를 걷는데
어쩔 때는 게임비도 걷고 뭐 하면서 돈을 걷게 되는데

어느 날부터는 그것도 되게 부담스럽고 버거워서
그 자리를 거짓말하면서 막 피하기도 했었어요

뭐 끝나고 밥 한 번 먹는 자리도
정말 창피해서 말을 못 하겠는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다른 변명을 해놓고
혼자 편의점에서 우유랑 빵을 먹으면서
차 안에서 막 어쩔 땐 한참을 운 적도 있어요

근데 그게는 그때는 슬럼프고 뭐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너무 저도 막 길어지고 힘들었었는데

참 지나고 보면 제 인생에서 꼭 필요한 순간들이더라고요
그런 시간들이 있어서 나중에는 꼭 뭔가가

그림은, 내가 원하는 대로의 그런 그림은 아니더라도
여러분이 생각지도 못하게 돌아올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앞으로 계속 뭐 돌아오겠죠?

그런 생각으로, 작은 감사함으로 살면
조금 더 긍정적인 생각이 오래가지 않을까요?

작은 것에 더 감사하고 말처럼 쉽진 않지만
그렇게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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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갓 스무 살이 되는 어린 나이이지만 박효신에게서는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는 것 같다. 그를 알기 전 그의 음악을 먼저 알았던 사람들은 대부분 공감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20대 중·후반쯤은 된 듯한 보이스 칼라가 그를 5집정도 음반을 낸 중견 가수로 착각하기 쉽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진지한 내면의 세계를 드러내는 감정표현과 자기가 추구하는 음악을 자신의 스타일로 재해석 할 줄 아는 감각은, 성숙된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

그의 음악 스타일은 한마디로 말하면 흑인음악이다. 즐겨듣는 음악도, 추구하는 방향도 그것이다. 요즈음처럼 현란한 영상매체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에게 그는 깔끔하고 담백한, 그러면서 강한 느낌을 주는 흑백만을 고집한다.

초콜릿 바구니에 이것저것 여러 개를 담아서 화려함으로 감동시키기보다는 가장 심혈을 기울여서 고른 한 개로 훈훈한 감동을 주려는 듯...

박효신은 노래를 사랑한다. 여자친구보다도 더. 물론 지금 여자 친구가 없어서 그럴 수 있지만 그의 신념은 흔들림이 없다. "평생 노래를 위해 살겠다." 노래를 부를 때의 그 감성적인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강렬함이 베어 있는 것 같다. 이제 그는 막 출발하였다. 그 출발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어도 이젠 쉼 없이 달리고 싶단다. 이젠 아픔을 씻어 내릴 줄 아는 성숙함을 감싸 안았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표현해 본다. 진주의 속성을 가진 가수 박효신. 진주는 슬픔을 간직하고 있다고 하지만 오랜 시간동안의 아픔과 시련을 견뎌내며 빛을 발하는 보석 같은 존재.

한 순간의 화려함은 없지만 조개껍질 속에서 다듬어져온 탄탄함으로 오랫동안 은은하게 남아있는 아름다움이 있는 것. 그의 음악은 그런 것 같다.

깔끔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어느 모던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카페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질 듯한 검은색 의상을 입고 나타났다. 그의 음악 색깔을 나타내기라도 하듯. 이야기를 하는 동안 참 기분이 좋았다. 무나도 솔직하고 진지하게 대답해줬기 때문에...

박효신은 말한다. '내가 말하는 나는...'

저는 늘 기도합니다. 제가 살아 숨쉴 수 있는 그 순간까지 음악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에요. 누군가가 들어주시겠죠. 제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알아주신다면요.

초등학교 6학년에 부모님께서 이혼하셨을 때, 저는 처음으로 절망이라는 걸 느껴야 했습니다. 앞이 깜깜 했었죠. 하지만 다시 일어섰습니다. 늘 곁에서 저를 지켜주시는 어머니와 든든한 형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때 전 큰 꿈을 가졌던 것 같아요. 아니 컸다기보다는 소중한 것이라고 해야할까요. 이 다음에 성공해서 꼭 어머니께 효도해야겠다는... 그리고 또 하나, 가수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것 이 아닌 꼭 성취하겠다는 꿈을요.

강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인지 저에겐 어느 정도의 행운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 능력과는 무관한 뜻밖의 행운이 아니라 하나의 기회 말이죠.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우연찮게 알게된 여러 가요제(부천 청소년 가요제, YMCA 청소년 가요제, 제물포 가요제)에 참가하여 모두 대상을 받았습니다. 그 때 제 능력을 인정해 주신 제작자를 만나서 앨범 작업을 하게 되었죠. 오디션을 봐서 합격을 했고요.

그런데 전 또 다른 시련을 맞게 되었습니다. 앨범 작업이 거의 끝날 무렵에 기획사가 부도가 난 것이에요. 슬펐습니다. 남자는 강해야 하지만 눈물이 났습니다. 제 꿈이 휴지조각이 되어 날아가 버렸으니까요. 잠시 실의에 빠졌지만 정신을 차렸습니다. 아직 나이도 어리고 또 다른 기회를 잡으려는 의욕도 있었기 때문이죠.

두 번째 기회가 찾아오는 듯 했습니다. 다른 제작자가 제 앨범을 내고싶다고 했죠. 그런데 이번엔 사기를 당하고 말았어요. 돈을 뜯어내려는 협박에 시달렸습니다. 제게 왜 이런 시련이 닥치는지 왜 이렇게 큰 아픔을 주는지 이유도 알지 못한 채 모든 것을 원망했습니다. 그렇게 부르고 싶던 노래가 정말 싫어졌습니다. 가수가 되어야겠다는 꿈을 접을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지요. 꿈 한번 펼쳐보지 못하고 포기해야한다는 것이 가슴아팠지만 전 그때의 악몽을 잊고싶을 뿐이었습니다.

얼마간 잊고 지내다 보니 안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자꾸만 미련이 남는 건... 잊었다고 생각할 뿐 잊혀진 게 아닌 것이죠. 귓가에서 맴도는 악보 위의 음표들. 내 몸을 타고 들어와 살아 숨쉬는 그 선율들.

더 이상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냥 노래만 부를 수 있게 해 달라고요. 그것을 들어주기라도 하듯 이 앨범을 만들 수 있게 해주신 제작자를 우연히 만나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아는 형을 따라서 놀러간 연습실에서 아무 거리낌없이 노래를 불렀고 그때 마침 잠시 그곳에 들러서 제 노래를 들은 그 분께서 관심을 보였던 것이죠.

그렇게 해서 1년 6개월 동안 연습과 녹음작업이 이루어졌고 드디어 제 이름이 새겨진 첫 앨범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 앨범을 받아든 순간 꿈을 꾸는 것만 같았어요. 혹시 깨어나면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들 정도로요.

전 이제 너무 행복합니다. 노래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죠. 전 눈물이 많아요.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내려오면서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지요. 힘들었던 순간들이 필름처럼 지나가더라고요. 하지만 그 의미는 슬픔이 아닌 기쁨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젠 당당하게 서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너무 감격스러웠던 거여요. 전 약속 할겁니다. 저의 첫 사랑과도 같은 음악을 영원히 사랑하며 지켜나갈 거라고요.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꿋꿋이...



**박효신 프로필
1981년 12월 1일생. 177cm, 68kg. 고척 고등학교 졸업. 1999년 11월, 1집 타이틀곡 '해줄 수 없는 일'로 데뷔. 흑인음악을 즐겨들으며 R&B 스타일을 추구. 플라이 투더 스카이의 환희, 미나, 김현성 등의 신인가수들과 친하며 이기찬, 김조한, 이은미 선배를 좋아함. 어렸을 때부터 오락을 무지 좋아한 오락광. 라이브에서 인정받고 싶어 3∼4월쯤에 콘서트 계획. 신인으로서는 드물게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출연한 실력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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