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한국사 I 07 일본, 남산에 조선신궁을 세워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조선 왕궁을 훼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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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서울의 상징인 남산에 조선 신궁을 세우고, 1000개가 넘는 신사를 세웠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신사참배 강요는 강도를 더해갔다. 참배를 거부하면 감옥에 갇히거나 고문을 당했다. 신사가 들어서던 시절, 조선의 궁궐들은 호된 고초를 겪어야 했다. 조선시대 왕들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창경궁은 2천 3백여 칸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궁궐이었다. 창경궁에는 임금이 정사를 보던 명정전, 임금을 모시는 나인들의 처소가 있었다. 신하들이 머물던 양화당과 왕비의 거처인 통명전 앞마당에도 아름다운 전각이 있었다. 그러나 1907년부터 일제는
창경궁 전각의 90퍼센트를 허물고 그 자리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었으며 이름도
창경원으로 바꿨다. 이후 70여 년 동안 창경궁은 벚꽃 구경의 메카로만 기억될 뿐
궁궐로서의 존재는 잊혀졌다. 일제가 이렇게 조선의 궁궐을 파괴한 것은 왕실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한국인들의 자부심에 상처를 입히기 위해서였다.
경복궁도 원래 다섯 걸음에 누각을, 열 걸음마다 전각을 만날 정도로 건물이 빽빽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때, 경회루와 근정전 등 주요 전각을 제외한 4000여 칸이 철거됐다.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을 허물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를 지은 것은 조선 황실의 흔적을 말살하려는 일제의 간악한 의도가 숨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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