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순 수녀의 시편묵상ㅣ제11강 시편 73편 당신과 함께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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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강 시편 73편 당신과 함께라면


"정녕 하느님은 좋으신 분이시다, 올바른 이에게!
하느님은 좋으신 분이시다, 마음이 깨끗한 이들에게!
그러나 나는 하마터면 발이 미끄러지고
걸음을 헛디딜 뻔하였으니
내가 어리석은 자들을 시새우고
악인들의 평안함을 보았기 때문이네." (1-3절)

시편 73편은 교훈 시편 또는 지혜 시편에 속합니다. 이 시편의 시인은 악인들이 평안을 누리고 의인들이 고통을 받는 사회의 모순을 보면서 자신의 내적 신앙 체험을 자서전적 고백 형식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올바르고 마음을 깨끗하게 지키며 살아왔으나 한 순간 발이 미끄러지고 걸음을 헛디딜 뻔했다고 고백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어리석은 자들을 시새우고 악인들의 평안함을 부러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악인들이 아무런 고통이나 괴로움도 없이 번영하고, 마음을 깨끗이 보존한 자신이 오히려 고통 받는 현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하느님을 저버리고 하느님을 외면하며 하느님 없이 사는 사람들, 심지어 하느님을 모독하는 자들이 온갖 세상의 복을 누리며, 사람들도 그들의 말을 받아들인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힙니다. 그는 자신이 '여태까지 헛되이 살아왔구나'하고 생각하면서 신앙에 대해 심각한 회의에 빠집니다. 욥처럼 그도 악인들의 성공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참조 : 욥 21, 7 이하) 그래서 "어찌하여 악인들의 길은 번성하고 배신자들은 모두 성공하여 편히 살기만 합니까?"(예레 12, 1)라고 하는 예레미야처럼 탄식합니다. 그러나 그는 신앙에 대한 회의와 배신하고픈 유혹을 받지만 성전을 찾아가 기도함으로써 깨달음을 얻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하느님은 제 마음의 반석'이라고 장엄하게 선포하고 다시 하느님께 가까이 있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릅니다.

"하느님은 올바르고 마음이 깨끗한 사람에게 좋으시다."(1절)라는 신앙의 명제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하마터면 발이 미끄러지고 걸음을 헛디딜 뻔하였다고 말합니다.(2절) '발'과 '걸음'은 '시인 자신'과 '인생'을 가리킵니다. 곧, 발만 미끄러지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인생 전체가 위기를 맞이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어리석은 자들을 시새우고 악인들의 평안함을 보았기 때문이네."(3절)라고 합니다. "시새우다"는 동사는 '자신의 것이 아닌 것에 대하여 마음 속에 불이 나며 부러워하는 감정'을 말합니다. "보다"라는 동사는 종종 시기심을 가지고 보는 것을 뜻할 수 있습니다. (아가 1, 6) '시기심'은 하느님을 바라보지 않고 인간적 집착에 빠지는 마음의 감정입니다. 시기심은 사람을 눈멀게 하여 발걸음을 걸려 넘어지게 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신앙의 가르침을 의심하게 됩니다.

시인은 배신과 믿음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거의 배신할 지경에 이르렀음을 고백합니다. (15절) 그러나 그렇게 한다면, 그는 '하느님 자녀들의 모임'을 배신하게 됨을 깨닫습니다. 그는 신앙의 위기를 통해서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 일원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의식을 갖게 됩니다. 때로는 공동체가 짐스럽기도 하지만 믿음의 공동체를 의식한다는 것은 새로운 전환의 계기를 마련해 주고 흔들리는 신앙을 지켜주기도 합니다. 신앙은 공동체의 관계 안에서 더욱 다져지고 성장되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그러나 마침내 하느님의 성전에 들어가 그들의 종말을 깨달았습니다."(17절)라고 합니다. 깨달음이란 시인 개인의 하느님 체험이며 '마음 변화'입니다. 시기로 가득 찬 그의 마음을 비우는 데서 그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의 비워진 마음 안에 하느님께서 자리하시게 됩니다. 그래서 '악인들의 종말을 깨달았다'고 하는 말은 악인들이 사라져버리는 환시를 본 게 아니라 시인에게 '악인들의 운명'을 하느님께 맡길 수 있는 아량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악인들의 종말'이란 그들이 누리던 물질적인 것들의 허무함을 의미합니다.

깨달음을 얻은 시인은 '영적 정상'에 도달합니다. "저를 위하여 누가 하늘에 계십니까? 당신과 함께라면 이 세상에서 바랄 것이 없습니다."(25절)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하느님과 견줄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분과 함께라면 이 세상에서 다른 바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늘과 세상 곧, 우주에서 그의 유일한 소유는 하느님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있으면 악인의 번영도 자신의 고통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느님과의 친교가 그에게 가장 소중합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때론 우리에게 힘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더욱이 충실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희생과 고독을 감수해야 함이 현실입니다. 과거 이스라엘에서 의인들은 많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주님께 충실했던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들의 신앙도 많은 단련을 받아 순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열렬히 행복을 추구하면서 '정직하게 살면 하느님의 복을 받고, 악하게 살면 벌을 받는다'라는 단순한 상선벌악의 원리를 삶의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오늘날도 그 이론은 자체의 한계점이 있긴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의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실한 신자에게 갑작스런 불행이 닥치면, 그는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하며 살았는데 왜 하느님께서 이런 고통을 주시느냐고 울부짖습니다. 성경 시편의 정신에 따르면 의인은 행복해야 하고 악인은 멸망해야 마땅합니다. (참조 : 시편 1, 1.6) 게다가 하느님은 의인을 곤경에서 보호하는 분이십니다. (시편 32, 7) 그러나 현실은 반드시 원리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이론과 실제 삶 사이에서 크게 갈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편 73편은 이런 우리의 현실을 표현하며 신앙의 갈등을 겪으면서도 하느님을 찾으려는 시인의 깊은 '영적 투쟁'을 보여줍니다.

"저를 위하여 누가 하늘에 계십니까? 당신과 함께라면 이 세상에서 바랄 것이 없습니다." (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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